반응형 지방차별1 사투리 쓴다 차별한 조선시대 영조 7년 2월 24일 정시 전시 시권을 뽑는 자리의 대화이다. 영조가 이르기를, “김한철(金漢喆)은 비록 서산(瑞山)에 살기는 해도 어찌 그를 시골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방 유생은 부(賦)나 표(表)가 서울 유생만 못한데 지금 책문에서 또 입격한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할 만하다.” 하니, 박문수가 아뢰기를, “시골 유생의 문장에는 자연히 향음(鄕音)이 있으므로 표나 부에서 매번 낙방합니다. 이번에는 전시에서 대책(對策)을 만나 또 모두 낙방했으나 시골 유생들 사이에 억울하다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투리 쓰면 과거 합격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합격해도 어전에서 사투리 심하게 쓰면 시종신으로 쓰지도 않았다. 시골 양반 서울에 몇 년 유학하며 과거공부한 것은 이유가 있었.. 2020. 9. 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