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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련2

거목 허백련 그늘에 가린 아우 허행면 목재 허행면(1905-1966)이란 화가가 있었다. 진도 출신 대화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아우로, 젊어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의재에게 그림을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에 두 차례 입선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어 화명을 날렸다. 이 그림은 그가 1958년에 운계라는 호의 소유자에게 그려주었던 것이다. '부귀옥당'이라 했으니 저 세 송이 풍성한 꽃은 모란인데, 거기에 괴석과 백목련(?)까지 섞어 그렸다. 언뜻 보면 의재 선생의 그림인가 싶을 정도로 화풍이 닮아 보인다(그림 보는 눈이 높지 않아서 차이를 잘 모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형의 필법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화가라 그런지 화제글씨ㅡ특히 '당'자의 처리가 퍽 감각적이다. 바탕이 .. 2023. 11. 8.
동풍이 따스히도 불어오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제법 가까운 옛날만 하더라도 동양화, 아니 한국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국전國展 동양화부 입선만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할 만큼 수요는 넘쳤고 그만큼 작품도 쏟아졌다. 그 수요의 정점에 있었던 몇몇 작가가 있었으니 청전靑田, 남농南農, 그리고 의재毅齋였다. 의재 허백련(許百鍊, 1891-1977). 그를 화가로만 아는 이가 많지만 기실 그는 사회운동가라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이 나라가 살 길은 농업에 있다 해서 광주농업기술학교를 세우고 무등산 자락에 춘설春雪이란 이름의 차밭을 가꾸었으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을 품고 국조國祖 단군을 기리는 사당을 세우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젊은 날 공산혁명을 꿈꿨던 지운遲耘 김철수(金綴洙, 1893-1986)와 평생 교분을 나눴던 것도 ..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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