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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2

황철黃鐵(1864~1930)의 글씨 예전에 한번 야조冶祖 황철(黃鐵, 1864~1930)이란 이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래 첨부 링크 참조) 그때 쓰기로, 개화기의 '풍운아'를 꼽으라면 포함될 만한 인물이라고 했더랬다. 그 삶의 궤적을 보나 남기고 간 작품을 보나, 그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거기 굳이 뭘 더 보태고 싶진 않지만, 기왕 쓴 김에 한 가지만 덧붙여본다. 황철은 만년엔 일본 친구 스나가 하지메(須永元, 1868~1942)에게 얹혀 살며 이따금 휘호揮毫를 하러 다닐 뿐이었다고 한다. 그의 글씨와 그림은 지금도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특히 글씨는 살짝 끌린 기가 엿보일 정도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행초行草가 대부분이다. 거칠고 호방하게 보이는 그의 글씨는 "구양순, 안진경을 배웠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데, 그.. 2024. 2. 21.
풍운아 황철黃鐵(1864~1930)의 글씨 두 장 1. '풍운아'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글쎄, 사전에서의 뜻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거칠고 굴곡진 인생을 산 이들을 가리켜 그렇게들 부르는 듯하다. 개화 바람이 불던 근대 한국엔 흥선대원군이나 김옥균처럼 유달리 그런 '풍운아'가 많았다. 이 글씨 주인 황철黃鐵(1864~1930)도 개중 하나라 할 만 하다. 2. 황철은 字가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라 했는데 주로 자를 호처럼 썼다. 서울 출생으로 부유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의 인생이 굽이치기 시작하기는 1882년, 집안이 소유한 광산에 사용할 독일제 채굴기계를 구입하려고 청에 건너가면서였다. 기계를 산 뒤에 그는 상하이에 머물면서 사진촬영술을 익히고 사진기계..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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