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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결코 백제 무왕의 정비일 수 없는 신라 선화공주 익산 미륵사 서탑 해체과정에서 이 석탑 조성 내력을 기록한 백제 무왕시대 석탑 봉영사리기奉迎舍利記가 발견되기는 2009년 1월 14일이다. 그것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나는 결코, 때려죽여도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의 정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후궁이라고 주장했다.봉영사리기 출현과 더불어 내 예언은 어찌 되었는가? 내 말이 맞았다. 무왕 정비는 선화공주 아닌 걸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리 주장했던가? 나는 아다시피 《화랑세기》를 신라인 김대문이 남긴 것으로 보는 이른바 화랑세기 진본론자다. 그 화랑세기와 세트가 되는 남당 박창화 유품으로 사진으로 제시하는 족도族圖가 있다. 겉장에는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 쓴 글자를 표제처럼 삼는 이 족도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간에 얼키고설킨 혈연 관계를 사진으로..
남자들을 전전한 13세기 가마쿠라시대 천황의 어느 후궁 <13세기 가마쿠라시대 일본 궁정 어느 후궁의 고백>2014-08-26 16:59고후가쿠사인 니조의 자전적 이야기 《도와즈가타리》 완역(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성장해서는 아버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이렇게 자식을 잃었으니 슬픔을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연인과 헤어지는 아침에는 그의 여운을 그리워하며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기다리는 저녁에는 밤이 깊어감을 알리는 종소리에 울음소리를 죽이고, 기다리고 기다려 만난 다음에는 또 세상에 소문이 나는 것은 아닌가 괴로워한다."13세기 가마쿠라시대 유력 가문에서 태어나 네 살 이후 궁정에서 자라기 시작해 14세 때는 천황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上皇) 고후가쿠사인(後深草院)의 후궁이 되어 아들을 낳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