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훈구파와 사림파1 사림士林과 사림파士林派 사림士林이 《표준대국어사전》에는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라고 설명하였고 유림과 같은 말이라고 하였다. 또한 국사교과서 등에서 신물이 나게 대했던 사림파士林派는 “조선 초기에, 산림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의 한 파.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을 중심으로 하고 성종 때부터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종래의 관료들인 훈구파를 비판하여 사화에 희생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에 이르러서는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라고 설명하였다. ‘사림파’는 근대 역사학 연구의 성과 가운데 하나다. 훈구勳舊 대신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시기에는 그 대척점이 사림이었다. 그렇다면 그 공신들이 다 사라진 선조 이후에 사림의 대척점은 무엇이었을까? 율곡 이이는 이들을 유속流俗 또는 속류俗流라고 했다. 그러나 조선 전 시기를 통해.. 2020. 10. 1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