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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7

주지스님이 지켜보고 있다!(광교산 서봉사) 용인 광교산에 위치한 서봉사지는 고려~조선에 걸쳐 운영된 사찰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인근에서 보기드문 비교적 큰 규모이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 현오국사탑비가 있는 곳이지만, 다른 절터에 비하면 명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다녀가 본 사람은 이곳이 풍광이 매우 좋은 명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으면 좋아서 터지면 억울해서 찾는 광교산 서봉사지용인 광교산 서봉사지 발굴현장이다. 2013. 8. 26 이니 7년 전이라 당시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막 발굴에 들어간 시점 아니었나 한다, 발굴전부터 현장엔 탑 부ㅐ가 늘려있었다. 탑은 복원해야 하historylibrary.net 서봉사지는 6단 정도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전형적인 산지가람으로, 3단에 조선시대 금당지를 비롯해 요사채 .. 2023. 4. 26.
겨울나기 준비하는 용인 서봉사지 12월, 이것저것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이다. 용인 서봉사지는 내년에 다시 본격적인 정비를 추진하기 위해 겨울나기 준비중이다. 발굴 중 3단에서 발견된 여러 석조물들을 그동안 묻어서 보존해놨다가 이번에 1단으로 올려 자리를 잡아 놨다. 그동안 답답했을 텐데, 햇빛을 받은 돌들이 제 빛을 내고 있다. 아랫단들은 잘 덮어놓고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번 겨울까지만 잘 버텨내주길. 2021. 12. 17.
광교산 파고든 연록 봄 더딘 줄만 알았던 봄이 성금성큼 코끼리 걸음으로 치달리고 코뿔소 걸음으로 돌진터니 마침내 광교산 중턱을 뚫었다. 그 기세에 놀란 지난 가을 밤송이 이제는 바스라지는 소리를 낸다. 그래도 밤송이는 여전히 따갑지만, 그때에 견주어서야 지금은 침 아니겠는가? 2021. 3. 17.
바람피기 좋은 곳이라 추천한 광교산 서봉사지 이 용인 서봉사지는 내가 실은 안지 얼마되지 않는다. 대략 5년 안쪽일 것이다. 그때 무심코 용인 일대 답사표를 짜다간 현오국사비라는 보물이 이곳에 있다기에 올랐다가 반하고 만 곳이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던 시절엔 저 밑 동네 어느 아파트에 토지공사 건설업자 김충배가 살고 있었다. 내가 현장에 올랐을 적에 저 밑에서 김 차장이 헐레벌떡 달려 올라왔다. 그땐 발굴 전이었다. 여타 명찰 자리가 뒷산이 웅장한 데 견주어 광교산 중턱에 자리한 이 서봉사지는 광교산 봉우리 중 하나로 쌍둥이를 방불하는 형제봉이 압권이다. 이후 틈나는 대로 나는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울적하면 울적해서 간헐로 이곳을 찾곤 한다. 그 계곡 밑에는 그런대로 소문난 카페가 있어 가끔 차 한잔 하곤 한다. 멀리 기차 타고 훌쩍 떠나는 여행.. 2020. 11. 17.
광교산의 또 다른 절터 : 성복동사지(성불사지) 광교산 서봉사지의 3단 금당지에 오르면 마주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형제봉이다. 이 금당지에서 바라보는 형제봉 풍광은 이곳이 명당일 수 밖에 없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형제봉 정상에서 서봉사지 반대편인 남동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도 비교적 큰 절터가 남아 있다. 성불사成佛寺라는 이름이 전해오기도 하지만, 기록이나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2010년 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 ‘성복동사지’라고 일컫는다. 2011년부터 이곳에 사찰을 복원하고 싶어하는 분이 계셨다. 불심이 매우 깊었던 그 분의 진정성을 믿고 도와드리고 싶었으나, 지정 문화재가 아닌 까닭에 발굴이나 복원까지 인연이 닿지 못했다. 3년 전쯤, 그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한참 기분이 이상했다. 며칠 전 작은 민원전.. 2020. 11. 12.
좋으면 좋아서 터지면 억울해서 찾는 광교산 서봉사지 용인 광교산 서봉사지 발굴현장이다. 2013. 8. 26 이니 7년 전이라 당시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막 발굴에 들어간 시점 아니었나 한다. 발굴전부터 현장엔 탑 부재가 늘려있었다. 탑은 복원해야 하나 문젠 본래 자리를 찾지 못해 골이 아프다. 저 자리에 그대로 세운데도 영 엉뚱한 자리라 고민이 많단 후문이 있다. 이런 식으로 부재가 널부러진 상태였다. 누군가 원반던지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통일신라 말기가 되면서 불교는 산문이라 할 만한 시대로 진입하는데 이 산문은 조선시대 이래 현대 한국사회에 익숙한 집성촌과 아주 흡사해서 강력한 종족집단을 형성하니 특정한 오야붕을 시조로 삼는 강고한 봉건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목 좋은 사찰들은 각자 나와바리가 있고 이 나와바리를 산문이라 하며 이 산문은 .. 2020.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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