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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주의4

《징비록》의 이순신 로직 logic 조선군이 궤멸한 상황에서 오직 이순신이 있었기에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도 동의) 그의 군사적 활동은 영웅적이었다. (나도 동의) 그런 이순신을 누가 등용했어? 나야 나...나 류성룡이야 이런 영웅의 등장에는 곡절이 있어야 한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재미없자나? 서애가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자 "내가 순신을 천거하였더니 정읍현감에서 수사(水使)로, 차례를 뛰어넘어 임명되어서, 사람들이 혹시 그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내 말 맞지??? (2015. 3. 5) *** 이것이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아니 가장 큰 목적이다. 이렇게 해서 서애는 임진왜란 책임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징비록》이 참회록이 아니라 변명록이 된 가장 큰 줄기가 바로 이순신이.. 2021. 3. 5.
김성일 변호와 이순신 열전의 교집합 《징비록》 드라마 징비록 몇 번보다 짜증나서 책 《징비록懲毖錄》 다시 꺼내들었다. 《징비록》을 읽는 키워드는 간단하다. 첫째 황윤길 김성일 사건 둘째 이순신 이 두 키워드가 빚어낸 교집합이 《징비록》 이다. 서애는 정세 판단 잘못해 패가 망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전쟁의 모든 책임이 그한테 귀결한다. 《징비록》 엔 이를 둘러싼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런 서애에게 서광이 비쳤으니 그것이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 없었으면 서애는 멸문지화였다. (2015. 3. 1) *** 실제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염려는 없다는 학봉 김성일은 임란이 발발하자 곧바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다가 류성룡이 적극 구원함으로써 극적으로 살아나 전장에서 죽음으로써 멸문지화를 면했다. 《징비록》 은 반성문이 아니라.. 2021. 3. 1.
《난중일기》 vs. 《징비록》 《난중일기亂中日記》엔 임진왜란이 없다. 왜적과 쌈질했단 말은 가끔, 아주 가끔 보이지만 임란에 관한 직접 증언은 없다. 《난중일기》는 서애西厓 찬양록이다. 서애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질펀한 스펀지를 밟았을 때 스며나는 물만 같다. 《난중일기》엔 서애의 반대편에 위치한 자들에 대한 비난이 자리한다. 그래서일까? 서애도 답례를 해야 했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고향 안동으로 내려간 서애는 책 하나를 쓴다. 《징비록懲毖錄》이다. 징비懲毖..지난 일을 경계하고 앞날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서애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다 했다. 하지만 이에는 그 자신의 실책은 전연 없다. 오직 나는 국가와 왕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간적들 때문에 나라가 누란에 처했다 했다. 이 간적의 중심에는 죽고 없는 율곡도 있다. 그의 칼날에 .. 2020. 10. 14.
다산은 당파주의로 환원해서 읽어야 한다 July 23, 2015 at 1:04 AM에 '다산학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SNS에 게재한 글을 약간 손본다. 내가 일전에 임진왜란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각본으로 삼는 절대 근거가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과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두 가지라 했거니와, 이에서 비롯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들 두 저술이 철저히 당파성에 뿌리를 박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를 토대로 하는 드라마 영화는 철저히 류성룡과 이순신을 절대善으로 그리며, 정치상에서 이들과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악인의 화신처럼 그리기 마련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5)....이 문제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가 빈발한다. 다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모든 드라마나 책, 심지어 학술서적이라는 것도 볼짝시면 열에..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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