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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보4

경매競賣와 감정鑑定, 백년 전엔 외래어였다 얼마 전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국어 단어사전이 나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다. 10월쯤 되면 꼭 그런 외래어때문에 우리말이 오염되었다고 훈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글쎄, 외려 우리말의 어휘와 문법의 가능성이 보다 풍성해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윤치호가 '내가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한국어가 다채로워졌느냐 이 말이다. 1909년의 를 보면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어휘들을 '신래성어新來成語'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으면서 늘상 보고 쓰는 '경매'나 '감정' 같은 어휘도 일본에서 온 외래어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 편집자注 *** 필자가 주장하는 요지에 무슨 군더더기가 필요하겠는가? 한글수호.. 2023. 3. 26.
도장을 망실한 안중식, 변호사 개업한 변영만 - 1909년 대한민보 광고 1. 1909년 어느 날, 심전(안중식安中植) 선생이 물소뿔로 판 도장을 잃어버렸다. 누가 주워다가 어떤 그림에 찍고 "이거 심전 그림이오."하고 비싸게 팔았을는지도. 2. 1909년 어느 날, 산강재(변영만卞榮晩) 선생이 변호사 개업을 했다. 손님이 많았을지 적었을지. 2022. 9. 1.
일타강사 장지연 선생 일타강사 장지연 선생 다시 또 약간의 짬이 나서 를 뒤적거리던 중, 재밌는 광고를 하나 발견했다. 일요일 빼고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지리, 한문 두 과목을 강연하고 토론하려 하니 중등학교 이상, 뜻있는 학생들은 왼쪽의 주소로 찾아오라는 내용. 근데 그렇게 학생을 모으는 분이 '장지연'이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낙양의 종이값을 올렸던 위암 선생이 그로부터 4년 뒤, 1909년 무렵엔 이런 일을 하고 계셨던가 보다. 하기야 같은 교과서도 만들었던 분이니 강의는 퍽 들을 만 했으리라. 2021. 12. 3.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1909년 에 실린 관재 이도영(1884-1933)의 만평 한 자락이다. 이 땅에 '박물관'이 생길 때 대한제국 백성들의 여론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박물관이 우리 옛 물건을 모은다면서? 그로부터 100여 년 뒤, 가볍게 날아갔던 저것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후손들은 애를 쓰고 있다. *** 台植補 *** 이 기사가 난 시점이 1909년이니 제실박물관 출범 즈음이리라. 서유견문 보니 박물관 소개 항목이 있더라. 202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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