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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3

항해루沆瀣樓, 아래로 북한산 계곡물이 흐르는 2층 누각 《북한지北漢誌》는 조선왕조가 북한산성을 만들어 30년 동안 관리하다가, 다음에 오는 산성 관리자에게 그 내용을 소상히 적어 전달하고자 편찬한 지리지입니다. 북한지에는 앞머리에는 '북한도北漢圖'라는 그림이 있어 편찬 당시 북한산성 상황을 잘 알려줍니다. 북한지는 성능聖能 스님이 1745년에 인출印出했음이 밝혀져 있습니다. 제가 매양 궁금한 것은 북한산성을 만들 때 산성 안에서 제일 큰 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라는 점인데 수문水門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높이 16척에 너비 50척에 달한다고 합니다. 근데, 이 문이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수해로 날아가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단 이 북한도 그림에 벌써 수문이 그려져 있지 않고, 흘러가는 계류溪流만 표시되어 있으니깐요. 그럼, 애초에 만들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해.. 2023. 2. 13.
탕춘대성 홍지문弘智門 유래는? 홍지문에 대해서는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홍지문)'이라 편액을 써서 문루에 달았는데,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한북문漢北門이고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홍지문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영조 24년 3월에는 한북문 어제현판을 잘못 걸었다고 고쳐 걸라는 지시를 내리기 까지 합니다. 홍지문이라는 근거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래도 박정희시절 창작한 이름인 듯합니다. *** 홍지문은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한 탕춘대성에 난 성문이다.(김태식 補) 2019. 9. 29.
조선 숙종 임금이 읊은 북한산성시 6수 번역 : 기호철 ( 장성 독거노인) 임진년(1712, 숙종 38) 4월 10일에 숙종(肅宗)이 북한산성(北漢山城)에 행행(幸行)하여 성첩(城堞)을 두루 관람하고 천혜의 험준함에 감탄하며 시 6수를 지었다. 1. 전쟁에 대비해 마련한 새 산성에 행행하려새벽에 나선 남문엔 북과 나팔 울려퍼지네용맹한 기병 수천명 대오 나누어 호가하니훈훈한 바람에 해는 길어져 여름이 되었네 計深陰雨幸新城曉出南門鼓角嗚驍騎數千分扈蹕風熏日永屬朱明 2. 서문 초입에서 한번 고개 돌려 돌아보니기운솟고 뜻 웅장해져 내 근심 사라지네도성 지척에 금성탕지 같은 성 굳건한데어찌 우리 백성 지키는 서울을 버리겠소 西門初入一回頭氣壯心䧺寫我憂國都咫尺金湯固何棄吾民守漢州 3. 어렵사리 십리 가서 행궁 이르니 우뚝한 시단봉 바로 아래 동쪽이라 노적봉 꼭..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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