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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4

삼각산 아래 양지바른 마을, 삼양동 내가 태어난 곳은 정릉동이고, 4살쯤 삼양동으로 이사와서 30여년을 살았다. 어릴때부터 쭉 살았던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용인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주소는 '미아동'을 썼는데, 지금은 행정동명도 삼양동이다. 미아동 보다 삼양동이 느낌이 훨씬 좋다. 삼양동은 '삼각산 아래 양지바른 마을'이란 뜻이라고 하니 옛날부터 살기 좋은 동네였을거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불상 중에 '서울 삼양동 출토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있는데, 아마도 북한산 자락 어딘가에서 출토된 것이 아닌가 한다. 북한산 자락 아래 있다보니, 동네이름보다는 '달동네'란 수식어가 더 많이 붙었던 것 같다. 어릴적엔 달동네라는 개념을 몰랐으니, 원래 길이 가파르고, 골목이 좁고, 계단이 많고, 동네는 .. 2022. 1. 1.
정도전이 삼봉三峰이라는 호를 사용한 내력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왜 삼봉三峰이라는 호를 쓰게 되었으며 그 삼봉이 어디 혹은 무엇인지는 기록마다 다르기는 하나 《삼봉집三峰集》 다음 기록이 가장 정확하겠다. 정사년(1377, 우왕3) 7월, 예例에 따라 고향으로 옮기고, 또 4년이 지난 뒤에 서울 밖에서는 마음대로 살게 허가되었다. 그래서 삼각산三角山 밑에 집을 짓고 글을 가르치니,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안】 공이 삼봉재三峯齋에서 글을 가르치니 사방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에 같은 고향 사람으로 재상宰相이 된 자가 공을 미워하여 그의 서재를 헐어버려, 공은 제생諸生들을 거느리고 부평부사富平府使 정의鄭義를 찾아가서 부평부 남촌南村에 자리를 잡았는데, 재상 왕모王某가 그곳에 별장을 짓겠다고 서재를 헐어버렸다. 공은 할 .. 2020. 12. 17.
도은陶隱이 삼봉三峯을 그리며 도은집陶隱集 제2권 / 시(詩) 삼봉의 은자를 생각하며〔憶三峯隱者〕 벼슬살이 십여 해 동안 사는 곳 숱하게 옮겼지 생계는 솜씨 졸렬하나 도를 꾀했으니 썩 가난하지는 않았소 고고해서 다른 이 등돌려도 때로 옛 벗은 생각은 나네 온종일 제자리에 멈춘 구름 아스라이 한강변에 떠 있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8 游宦十餘載。僑居遷次頻。營生雖甚拙。謀道未全貧。落落負餘子。時時思故人。停雲終日在。縹渺漢江濱。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이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생각하며 쓴 시라, 그리 절친한 둘은 조선왕조 개국을 두고서는 길이 갈라져 한 사람은 비명횡사했으니, 그렇게 살아남은 한 사람은.. 2020. 12. 16.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삼각산(三角山)〉 삼각산(三角山) 전(傳)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묶어세운 삼각산이 저 하늘을 꿰었으니 올라가면 북두성 견우성 딸 수 있으리 봉우리들 비와 구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만세토록 편안케 할 수 있다오 束聳三角貫太淸, 登臨可摘斗牛星. 非徒岳岫興雲雨, 能使東方萬世寧. [해설]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살 때 세종이 불러 삼각산으로 시를 지으라고 하자, 지었다고 전하는 시인데, 그의 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제신(李濟臣, 1536~1584)의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청강선생 시화(淸江先生詩話)〉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13 〈문장부(文章部) 6 동시(東詩)〉에 수록되어 전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는 김시습의 작품이.. 201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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