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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속收贖2

돈은 많고 볼 일, 곤장도 돈맛대로 조선 형벌은 그 형량이 대단히 가혹했다. 회초리 같은 것으로 볼기를 치는 태형笞刑, 장(杖)이나 곤(棍)으로 볼기를 치는 장형(杖刑), 징역형에 해당하는 도형徒刑, 멀리 귀양보내는 유배流配가 있었다. 물론 그 죄형이 강상죄(綱常罪)냐 잡범이냐에 따라 장(杖)이나 곤(棍)도 그 치수가 달라 세 등급이 있었다. 죄인에게는 속전贖錢을 받고 그 형을 감면하는 제도가 있었으니 수속收贖이라고 한다. 돈만 많다면 어지간한 범죄로 형벌은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또 조사할 때 죄인을 때리며 죄를 묻는데, 이를 형추刑推라고 한다. 이때에도 어지간한 죄를 지었다면 돈으로 고통을 면할 수도 있었다. 가벼운 범죄에 대해서는 수속보다는 저렴하게 ‘매품팔이’를 사서 대신 맞게 할 수도 있.. 2020. 10. 20.
동전 강제화 정책을 노래한 김우급의 시 동전을 사용하려고 먼저 시험 삼아 녹봉으로 나누어줌[用錢先試頒祿]김우급金友伋(1574~1643) 듣자니 조정에서는 동전 사용하려고백관에게 유달리 많이도 반사하다네지팡이 짚고 나가도 돈 한 푼이 없어나부끼는 주막 깃발도 자주 못보거늘 聞說朝廷用青銅, 百官頒賜也獨豐. 扶杖出門無一貫, 不堪頻望酒旗風. [해설] 동전을 유통 보급하기 위한 화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633년(인조 11)에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법화法貨로 주조, 유통하기로 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만력통보萬曆通寶를 본떠 만들었는데 세종조에 주조, 유통하던 조선통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팔분서八分書 조선통보로 주조하였다. 이 동전은 서울의 상평청常平廳에서 주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634년에는 안동·대구·개성 등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인물.. 2019.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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