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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12

장화왕후 오씨, 질외사정 피임을 거부한 왕건의 여인 잘 알려진 것처럼 고려 태조의 후비는 29명이다(왕건이시여~). 그중 성씨, 본관,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에다가 어머니의 이름이 밝혀진 분은 둘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 한 분뿐이다. 장화왕후 오씨吳氏는 나주인羅州人이다. 할아버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으로,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아왔다. 오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에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 권88, 열전1, 후비1, 태조 후비 장화왕후 오씨 같이 실린 다른 태조의 후비들을 보면 본관과 아버지 정도만 언급되고, 더러는 성씨마저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분명 이들은 당대 내로라하는 세력의 여식들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나 는 한목소리로 오씨의 집안이 '측미側微'하다고 진술한다. 그 진술 뒤에는 그래가지고 태조가.. 2024. 1. 14.
오줌 싸서 고려 현종 낳은 경종비 청상과부 황보씨 (2) 난 장인, 당신은 사위 콜? 왕건은 877년 생이라, 훗날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개창하니, 이때가 918년, 마흔두살 때였다. 이렇다 할 건강 이상이 없는 한, 왕조를 개창하기에는 딱 좋은 나이라, 쉰여덟 송장되기 일보 직전에야 엎혀서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랑은 제반 조건이 아주 달랐다. 918년 마흔둘에 왕조를 개창한 왕건은 25년간 왕 노릇을 하다가 943년에 사망하니, 향년 67세였다. 이 역시 험한 꼴 안 보고 죽기에 딱 좋은 나이다. 왕건은 딱 좋은 시기에 딱 좋게끔 권력을 잡았고, 딱 좋은 시기에 비름빡 똥바르기 전에 죽었으니 이보다 더 운 좋은 개창주 있을까 싶다. 느닷없이 권력을 잡은 개창주들은 여자관계가 보통 복잡다기한데, 간단히 말해 말이 좋아 합종연횡이지, 이 합종연횡을 무엇으로 보장하겠는.. 2024. 1. 13.
청자 순화 4년명 호 靑磁淳和四年銘壺, 죽은 왕건을 위한 봉헌물 청자 순화 4년명 호 靑磁淳和四年銘壺 Jar with Inscription of "4th Year of Sunwha". Celadon 국보 제326호 National Treasure No.326 고려 993년 Goryeo 993 보물이었다가 2019년 5월 2일 국보로 승격했다.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점토로 만든 후 황록색 회유 계통 유약을 입힌 이 항아리에는 제작 시기와 용도를 알려주는 음각陰刻 명문銘文이 굽바닥에 있다. 한반도에 청자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던 10세기 고려시대 초기에 등장하는 가장 확실한 제작 연대를 갖춘 유물이라는 점에서 도자사 연구에서 그 중요성이 첫 손에 꼽힌다. 실제로 이 유물은 한반도에서 제작한 청자로는 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 완형 유물이다. 바닥 명문은 다음과 같다.. 2023. 7. 6.
[천안 천흥사論] (3) 왕건이 성거산 오색구름을 본 수헐원愁歇院 우리는 앞서 고려 태조 왕건이 지금의 위례산을 바라보고는 신이神異한 오색 구름이 위에 이는 모습을 보고는 신성한 기운이 노니는 곳이라 해서 그 산을 성거산聖居山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기록을 접했거니와 그 오색 구름을 본 장소를 신증新增에서 이르기를 직산현 서쪽 수헐원愁歇院이라 했다는 대목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곳에서 그가 동망 산상東望山上, 곧 동쪽으로 산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했으니, 곧 죽어도 수헐원이라는 데는 이 성거산(위례산)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어야 하며, 아울러 이곳에서 위례산이 보여야 한다. 이에 수월헌이 분포할 만한 대략의 범위를 지도에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위례산, 곧 성거산을 기준으로 수헐원이라고 동글배기 친 어드메쯤에 수헐원이 있었을 것이다. 더 범위를 좁힌다면 수월원은 원院이라는.. 2021. 5. 19.
새사랑 찾아 야반도주한 작제건 마누라 저민의 얼마전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개성에 소재하는 고려 온혜릉이라는 고려 태조 왕건의 할매 무덤인 온혜릉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타전했거니와, 그 소식을 인용하면서 나는 대체 그의 할매 무덤이라니? 더구나 그 할매 무덤을 온혜릉이라고 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심대한 의문을 표시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혹은 제왕운기, 혹은 기타 우수마발 고려시대 고려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서 그 어떤 그 조모 무덤 관련 흔적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온혜릉이란 어느날 느닷없이 출현한 귀신인가? 그런 의문 제기에 전라도 장성땅 행주기씨 호철 선생이 관련 문헌 기록을 디립다 긁어다 주었거니와, 보니 온혜릉이란 溫鞋陵이라 쓰고, 그것이 태조 왕건의 조모, 그러니깐 작제건作帝建하고 쿵쿵딱해서 장자 륭.. 2019. 7. 24.
작제건作帝建, 고려왕조의 뿌리 고려를 창업한 태조 왕건의 조부. 신라시대 말기를 산 인물이지만, 그 남은 행적이 신이神異로 일관해, 자세한 경력은 알기가 어렵다. 태조 2년(919)에 왕건이 선대 직계 조상들을 일괄 추존하면서 할아버지인 그를 의조 경강대왕懿祖景康大王이라 하고, 그 부인은 원창왕후元昌王后했다. 이로 보아 고려 건국 이전에 작제건은 죽고 없었음에 틀림없다. 帝王韻紀 > 帝王韻紀 卷下 > 本朝君王世系年代 >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本朝君王世系年代凡七百言.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惟我皇家系, 於此尤奇異. 唐肅潛龍時, 遊賞東山水. 禮彼八眞仙, 寄宿松山趾.唐書曰, “肅宗少封忠王.” 本朝學士洪瓘, 所撰世紀曰, “唐忠王, 遊松岳山, 禮八眞仙, 宿養子洞居士寶育家.” 則肅宗來遊明矣. 又按本紀, “龍王謂景康曰,.. 201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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