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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71

팔만대장경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찍은 이규보 문집 《동국이상국집》 이규보 문집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集》은 현존하는 그 체제 골격이 다름 아닌 이규보 본인 뜻에 따랐으며, 나아가 그의 생전에 출판을 목전에 두었다는 점을 우선 주목할 만하다. 그 문집 앞에 붙은 그의 연보年譜에는 그의 아들 이함李涵이 쓴 서문이 있으니, 이로 보아 이 연보 또한 그의 생전, 혹은 늦어도 이규보 죽음 직후에는 이미 정리됐음을 본다. 이는 저 문집이 철저히 이미 이규보 당대에 후세를 위해 준비된 출판기획이라는 뜻이다. "함涵이 옛사람 문집과 연보를 보니 모두 연보 중에 그 저술한 본말과 이유를 소상히 적어 서로 참고가 되도록 하였으나 대개 옛사람 시집詩集이 꼭 저술한 연월을 표시하지는 않은다. (그럼에도 연원을 표시한 경우는) 무엇에 의거하여 소상하게 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가공家公(아.. 2023. 3. 2.
수건 뒤집어 쓰고 이규보한테 밥을 빈 여인 넌 비록 사인으로 태어났으나 / 汝雖生士族 밥 비니 이미 비천하게 되었다 / 丐食已云卑 다시 또 무엇이 더 부끄럽다고 / 更亦懷何恥 다 떨어진 두건 뒤집어 썼더냐 / 猶蒙破羃䍦 - 후집 권8, 고율시, "어떤 사인士人의 딸이 밥을 빌러 왔기에 밥을 주고 나서 시를 짓다" *** 편집자注*** 사인이란 조선시대로 말하면 양반쯤 된다. 집이 곤궁해져 거지가 된 모양이라 이규보 집에 밥 달라 왔지만 차마 쪽팔려 얼굴을 드러내지 못해 수건을 뒤집어 쓴 모양이다. 그 모습이 측은했는지 그 감상을 적었으니 그 딸과 그 집안은 요새 같음야 두 번 조리돌림당한 셈이니 이규보가 더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물론 백운거사는 그 사인과 딸을 몰명沒名했지만 당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2023. 3. 1.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이규보한테 쌀을 꾸는 백수 1주일 1이규보도 사실 벅차지만, 일요일이니 비축분 푼다 생각하고 하나 더 올려본다. 앞서도 여러 번 봤지만 우리의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형편은 그닥 넉넉지 못했다.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어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한탄하는 문구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고수는 많다. 오죽하면 주변머리없는 이규보에게까지 쌀을 꾸는 사람이 다 있었다. 동년同年이라고 하니 이규보와 같은 해 과거에 붙은 인물인가본데, 관직을 얻지 못한 백수 신세였던 모양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상대가 궁중에서 숙직을 서고 있는데 집도 아니고 그쪽으로 편지를 다 보냈겠는가. 당직근무 서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궁 밖을 나서려다 그 편지를 본 백운거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는지. 얼마 전까지 같은 처지였던 자신.. 2023. 2. 27.
이규보가 증언하는 이웃 기생집 화재 하늘에 닿은 불꽃 노을처럼 붉더니 / 連天赫焰劇霞丹 연기 속 미인 울음 어슴푸레 들리네 / 暗聽煙中哭翠鬟 무정한 화재는 어찌 그리 심했던가 / 回祿無情何大甚 화장대며 춤추는 집 모두 타버렸네 / 粧臺舞館總燒殘 - 후집 권5, 고율시, "이웃 기생집에 불이 나다隣妓家火" 2023. 2. 26.
관행이라는 이름의 편리, 개선이라는 이름의 불편 녹祿을 받는 생활을 한 지도 몇 해가 지났다. 그러다 보니 각종 행정사무를 해야만 한다. 한데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야 없지만, 예컨대 한 번 잘못 처리한 부분을 뒷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하고, 그걸 또 그대로 따라서 하고... 그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뒷사람으로서도 할 말은 있다. 앞사람이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이 일을 처리했고 오히려 이를 고쳤다가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며, 안 그래도 바쁜데 어구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무언가를 고치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임을 알면서도 하게 되고, 더러는 잘못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할 뿐이다. 물론 나 스스로.. 2023. 2. 26.
섣달그믐 밤새워 거나하게 걸쳐야는데 하필 능 제사 동원된 백운거사 당직근무를 서는 중이다. 밤 깊어 고요한데 문득 이규보 선생이 숙직 선 이야기가 에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몇 편 있었다. 그중 가장 연대가 이름직한 것을 골라 소개해본다. 엄밀히 말하면 숙직이라기보다는 잠 안자고 있던 데 가깝겠지만. 신령스러운 송악이 몹시 추운 줄 누가 걱정해 주랴 / 神岳苦寒誰更惜 ㆍ동지冬至 제사라 능에 묵을 때 송악松岳이 몹시 추웠다. 광릉에서 해 보내며 스스로 비웃는다 / 匡陵守歲自猶咍 푸른 관복입은 대축이라고 웃지를 말게나 / 靑衫大祝人休笑 매양 시 짓기 내기하면 내 시가 으뜸으로 돈단다 / 每賭新試一首廻 ㆍ낮은 벼슬에 있으면서 늘 축사(祝史, 제사 때 축문 읽는 관리)가 되었다. ㅡ 전집 권10, 고율시, "섣달 그믐밤 광릉匡陵에서 머무르면서 짓다" '광릉'은 어떤 왕이나 왕..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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