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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2

빡빡이와 장발족 80년대 장발이 유행한 가장 큰 이유는 두발 자율화였다. 자율화 때문이 아니라 자율화 이전 까까머리에 대한 억압 때문이었다. 왜 머리를 까까머리로 윽박해야 했는지 흔히 군사 문화 영향을 드나 나는 그걸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관행이었다. 왜 빡빡 밀게 했는지, 자율화 시대가 되니 종래의 억압에 대한 반발이 분출했다. 그리하여 다들 보란듯이 장발로 갔다. 엿먹으라였다. 한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저 두발 자율화와 교복 자율화는 유신정권 시작만큼 중요하다. 이 억압과 허용의 길항에서 또 하나 중대한 사건은 내가 군복무 시절 일어난 과외자율화다. 한국현대는 이런 제압과 규율이 빚어낸 교향곡이다. 그나저나 저 사진 속 순단이랑 동순이는 어데갔는지 모르겠다. (2018. 9. 25) 2020. 9. 25.
창밖의 여자를 쳐다보는 장발 조용필 앨범을 망실하는 까닭에 젊은시절 혹은 그 이전 어린시절 나 자신을 증언하는 도판이 거의 없어 다른 사람을 모델로 빌려온다. 조용필옹 이 LP가 정확히 어느 해에 나왔는지는 내가 조사치 못했으나, 70~80년대 그 어간임은 분명하다. 그 근거는 저 장발에 기인한다. 내 기억에 이 땅에서 남자들의 장발이 유행 저편으로 사라진 시점이 80년대말, 90년대 초 아닌가 하는데, 물론 그렇다 해서 완연히 종적을 감추었다는 말로 이해할 등신들은 없으리라 본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이름의 대세, 그것으로서의 장발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구시대 유물로 퇴장했다.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세는 장발이라, 그때 찍은 내 사진과 친구들 사진을 기억에서 휘말려 보면, 모조리 더벙머리라, 마당쇠만 같았다. 한데.. 201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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