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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19

거련(巨璉)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광개토왕본기 : 18년(408) 여름 4월에 왕자 거련(巨連)을 태자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즉위년 : 장수왕(長壽王)의 이름은 거련(巨連)이고 광개토왕 맏아들이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18년(472)에 사신을 위(魏)에 보내 조공하고 다음과 같은 표(表)를 올렸다. …중략…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련(璉)은 죄가 있어 나라가 스스로 으깨어지고[魚肉], 대신(大臣)과 힘센 귀족들을 죽이고 살해하기[戮殺]를 마지않아, 죄가 차고 악이 쌓여 백성들은 무너지고 흩어졌습니다. 이는 멸망시킬 수 있는 시기요 손을 쓸[假手] 때입니다. …현조(顯祖)는 [백제가] 궁벽하고 먼 곳에서 험난을 무릅쓰고 조공하였.. 2018. 3. 2.
조다(助多)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문자명왕(文咨明王)은 이름이 라운(羅運)이고 장수왕 손자다. 아버지는 왕자이며 고추대가인 조다(助多)인데, 조다가 일찍 죽자 장수왕이 궁중에서 기르면서 대손(大孫)으로 삼았다. 장수왕이 재위 79년 만에 죽자 이어 즉위했다. 2018. 2. 20.
장수왕(長壽王)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장수왕(長壽王)은 이름이 거련(巨連)이고 광개토왕 맏아들이다. 신체가 크고 기개가 호탕하며 뛰어났다. 광개토왕이 18년에 태자로 삼았으니 22년에 왕이 죽자 즉위했다. 원년(413)에 장사(長史) 고익(高翼)을 진(晉)나라에 보내 표(表)를 올리고, 붉은 무늬있는 흰 말을 바쳤다. 안제(安帝)가 왕을 고구려왕(高句麗王) 낙랑군공(樂浪郡公)에 봉했다. 2년(414) 가을 8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에 모여들었다. 겨울 10월에 왕이 사천(蛇川)의 들로 사냥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12월에 서울에 눈이 다섯 자나 내렸다. 7년(419) 여름 5월에 나라의 동쪽에 홍수가 나자 왕이 사신을 보내 위문했다.12년(424) 봄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예방했다. 왕.. 2018. 2. 20.
강왕(康王)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79년(491)…겨울 12월에 왕이 죽었다. 나이 98세였으며, 왕호를 장수왕이라고 하였다. 위나라 효문제(孝文帝)가 이것을 듣고, 흰 위모관(委貌冠)과 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를 표했으며, 알자(謁者) 복야(僕射) 이안상(李安上)을 보내 [왕을] 거기대장군 태부(太傅) 요동군 개국공 고구려왕으로 추증 책봉하고, 시호(諡號)를 강(康)이라고 하였다. 2018. 2. 20.
여노(餘奴)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68년(480) 여름 4월에 남제(南齊)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이 왕을 표기대장군으로 책봉했다. 왕은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남제에 조빙케 했는데, 위나라 광주(光州) 사람이 바다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위나라] 대궐로 보내니 위 고조가 왕에게 조서를 보내 책망했다. “[소]도성이 친히 그 임금을 죽이고 강남에서 [황제의] 칭호를 도용하였다. 짐은 망한 나라를 옛 땅에서 다시 일으켜, 끊긴 대를 유씨(劉氏)에게 잇게 하려 한다. [그런데] 경은 우리 국경을 넘어 외국과 교섭하고, 찬탈한 도적과 멀리 통교하니, 이것이 어찌 번신(蕃臣)이 절개를 지키는 의리하고 하겠느냐? 이제 한 번의 잘못으로 경의 이전의 정성을 덮을 수 없어 사신을 돌려보내니.. 2018. 2. 20.
연신(燕信)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장수왕본기 : 66년(478) 백제의 연신(燕信)이 항복해 왔다. 2018.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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