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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5

경기도박물관이 새로 개비한 조선시대 초상화 경기도박물관은 아마 조선시대 초상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이리라. 그런 까닭에 이 초상을 전매특허로 내세우는데, 근자 경기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조선시대 사대부들 초상 코너를 개비했다. 이 코너 대문은 다음과 같거니와 그 주요 전시작을 사진으로 감상한다. 경기인을 만나다 Meet GyeongGi People 초상화는 어느 특정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옛 조상들에게 초상화는 단지 기록이나 예술 작품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제작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정성을 다했으며, 완성 후에는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이 여겼다. 초상화는 다른 그림과 비교하여 실제와 똑같게 표현해야 하는 '사실성'이 매우 중요시되었다. 얼굴의 표정은 물론 흉터 점 수염 한 올까지 상세하게 그렸다. 또한 초상화는 걸모습뿐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이나 .. 2023. 8. 24.
심의深衣 걸친 허전許傳(1797~1886) 초상 2022. 8. 31.
증명사진이 없던 시대의 군적軍籍 군적軍籍이란 조선시대 군인들 명부다. 당시엔 증명사진이 있을리 만무하다. 초상화가 있으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건 돈 있는 놈들 얘기다. 더구나 초상화는 신주 대용이라 요즘 초상화나 증명사진과도 다르다. 이런 군적이 의외로 남은 실물이 거의 없어 서애가 소장품과 근자에 토지박물관에서 구입한 충청도 지역 자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사진은 서애가 소장품으로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진행 중인 징비록 특별전에 출품 중이다. 증명사진이 없으니 사람은 구별해야 겠고, 그리해서 생각해낸 고안苦案이 일일이 신체 특징을 글로 적는 것이다. 얼굴에 사마구가 있니, 피부색은 어떻니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징비록 특별전은 사진을 못찍게 하는데 자료 제공처인 서애가나 혹은 안동 국학진흥원 턱별 요청이 아니라면 촬영케 해야 한.. 2020. 9. 20.
[墓와 廟] (1) 고총고분 등장이 권력자 등장 지표? 《봉분封墳(mound)의 등장》 동아시아 세계에서 무덤에 완연한 봉분을 쓰기는 공자 시대에 비로소 시작한다. 이건 고고학 성과로 볼 때도 명백하다. 이른바 고총고분高塚古墳의 등장이 모조리 공자 이후다. 이걸 고고학에서는 권력자의 등장, 중앙집권 국가의 등장 지표로 보는 견해가 압도적이나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조상신 숭배의 패턴이 변화한데 지나지 않는다. 봉분이란 무엇인가? 표식이다. 공자 이전 무덤은 묘墓다. 초두[艹]를 부수자로 쓴 데서 보듯 봉분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있는둥 마는둥했다. 《예기》인가 어디에 공자의 말로써 보이지 않는가? 공자는 지 애비 무덤이 어딘 줄도 몰랐다. 분墳이 아니라 墓였기 때문이다. 겨우 애비 무덤 찾아내곤 비로소 봉분을 만드니 이렇게 해서 고총고분은 비로소 탄생한다. .. 2019. 11. 3.
표준영정·동상 심의, 이대로는 좋지 않다 이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12월17일(월)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가량 국립고궁박물관 1층 강당에서 개최한 ‘표준영정ㆍ동상 심의, 이대로 좋은가? - 제도 운영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 -’의 김태식 토론문이다. 토론집에 실린 문장은 이곳에 전재하면서 오자와 비문 등을 일부 손질했지만 논지는 그대로다.(2012.12.18)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함이 진정한 앎이다”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조선 세종시대 이른바 6진을 개척했다는 김종서(金宗瑞)는 기실 文班과 武班의 兩班 지식 테크노크랏이 지배계급을 형성한 조선사회에서는 철저히 文班이다. 이런 그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극이 국내에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거니와, 그런 드라마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물이 얼마 전에 타계한 탤..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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