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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3

드넓은 초원 vs. 황금빛 나락 아일랜드 전반은 그 사뭇한 풍광이 뉴질랜드 비스무리해 드넓은 목초지가 발달해 소떼 양떼 천지라 단군조선 이래 언제나 땅이 없어 아우성인 우리네가 보기엔 탄성만 자아내거니와 그 자연풍광은 신내림 그것이라 이런 천복을 받은 땅이 어디 있냐는 찬탄에 침이 마를 날이 없다. 그 풍광을 뒤로하고 인천공항에 발을 디디면 그 드넓은 갯벌을 보노라면 그래 저들에겐 이런 갯벌이 있던가 하고는 피식 웃게 되거니와 저 황금빛 벌판은 그 자체가 인간이 빚은 한국의 가을날 들녘 아니겠는가? 남진이 노래한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은 실상 우리네와는 하등 인연 없는 헛소리라 미국 농촌 배경 드라마를 보고 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꿈꾼 저 넓은 목초지는 실은 온통 소똥 말똥 양똥이라 파리가 들끓기 마련이요 실상은 b.. 2019. 9. 2.
초원이라는 환상 제국 몽골 Mongolia (1) August 16th, 2009 *** 초원이 주는 환상이 있다. 그것은 목가일 수도 있고, 낭만일 수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실크로드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호명한다. 글쎄 저곳은 낭만일까?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이 그렇듯이 시기 질투 욕망이 솟음하는 그런 곳이지 청정 혹은 무구無垢는 아니다 하지만 포착하는 사진은 목가로 담지 않을 수 없었다. 2009년이니 벌써 10년 전이다. 또 얼마나 달라졌을라나? 2019. 7. 15.
피안彼岸으로서의 사막과 초원, 그리고 실크로드 나는 북방과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을 초원에 대한 열망이라고 본다. 그래서 걸핏하면 우리는 알타이 민족의 시원을 찾는답시며 바이칼 호수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서역 혹은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사막과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의 표출이라고 본다. 초원과 사막은 한국 문화권에는 없다. 그래서일까? 그런 우리에게 각인한 유목과 사막은 진취와 광활, 야성, 그리고 원시의 표상이다. 사막과 초원을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강인하다는 이미지로 우리는 각인했다. 그들이 실제로 그러한지 아닌지는 관심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늘 그러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표상들로써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사막과 초원에서 우리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려 했는지도, 혹 하려는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늘 사대..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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