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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계4

설총의 이른바 ‘화왕계’ 모란牡丹을 화왕花王이라고 한다. ‘꽃들의 임금’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고전문학에서 한 번쯤은 다루는, 그래서 누구나 들어본 ‘화왕계’가 유명하다. (삼국사기에 화왕계라는 명칭은 없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설총전’에 나오고, 동문선에 ‘풍왕서諷王書’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한국문집에도 몇몇 곳에 이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고전번역원DB에 검색어 ‘花王’을 넣어서 찾아보면 나온다. 이 작품은 고전문학 소설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러니 수능이라든지 공무원시험이라든지 임용고사라든지 등등에 반복하여 출제해도 무방할 정도의 작품이다. 내 판단으로는, 한참 뒤에 나온, ‘화왕전’이라든지 ‘화왕본기’라든지 ‘화사’라든지 하는 작품보다 문학성이 더 뛰어나다고 본다. (화왕전, 화사는.. 2024. 2. 11.
모란은 억울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수록한 신라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 이야기, 곧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를 보냈는데 그 모란 꽃에 나비가 없음을 알고는 그 모란씨가 발아한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임을 선덕이 알았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둘러싼 곡해 하나를 낳게 하거니와 이르기를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이니,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테 주어진 각종 모란은 꽃이 진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가 모란을 곡해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저 이야기 어디에도 모란은 본래 향기가 없는 꽃을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대신 이세민이 보낸 모란은 꽃이 향기가 없는 특수품종이라는 말을 강조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내친 김에 동아시아 역사를 보건.. 2020. 9. 7.
모란이라고 다 같은 모란이 아니다 화투 영향이긴 하나, 글자 그대로는 목단(牡丹)이라고도 읽는 모란이 낙양과 장안 중심 중원에 알려져 완상용으로 적극 재배되기 시작한 시점은 당 현종 개원(開元) 연간(713~741)을 올라가지 아니한다. 간단히 말해 모란은 개원 연간에 들어서야 비로소 중원에 알려져 재배되기 시작했으니, 각종 기록을 종합할 때 모란은 지금의 산서성을 중심으로 하는 건조 사막지대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모란 열풍은 더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 개원 연간에서 대략 반세기 혹은 백년이 지난 당(唐) 헌종(憲宗) 원화(元和) 연간(806~820)은 그야말로 모란의 전성시대였다. 이 무렵이면 이미 모란은 중원을 떠나 장강을 넘어 강남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시인들은 모란을 읊기에 여념이 없었다. 따라서 모란이 꽃중의 꽃 화왕(花王.. 2019. 4. 7.
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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