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떠난지 벌써 10년, 그를 생각하며 곡한다
알렉산더로스 대왕 태생지요 그가 마케도니아 왕위에 즉위한 그리스 베르기나Vergina, 옛 이름 아이가이Aigai에 막 입성해 출출한 허기를 달래느라 식당에 들어가 돼지고기를 뜯고 있는데 느닷없는 카톡 전화, 것도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찍힌 연락처를 보니 언론계 선배요,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정재숙 누나라
이 누님 떠나기 전에는 장도長途라는 글자 적힌 봉투에 100달러짜리 지폐 담아주면서
잘 다녀오라 하면서 돈 떨어지면 언제고 연락하라 신신당부한 정감 많은 사람이라,
또 무슨 장난질을 치려고 영상통화꺼자? 했으니
오늘이 구분준 10주기 되는 날이라, 즐거운 파티를 벌이는 중이라 너스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추모식이라는 표현 굳이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함께 모인 사람들 면면을 보이며 직접 통화케 하는가 하면, 관련 파티 사진까지 잔뜩 찍어 카톡 송부한다.
구본준 씨에 얽힌 일은 이전에 내가 그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그 장소인 베네치아에서 갔을 적에 비교적 소상하게 정리한 적이 있거니와,
그 이야기는 그로 넘기기로 하고
무엇보다 그런 날을 잊지 않고 챙기는 재숙 선배가 새삼 고맙기 짝이 없다.
그가 떠난 그 마지막 여행에 재숙 선배는 동행했다. 그러니 그 망연함이야 다른 사람보다 더 크지 않겠는가?
저 양반 성정에 미루어 꼬박꼬박 본준 씨 기일을 챙겼을 사람이다.
반복이 되겠지만, 구본준이 떠남으로써 한국 건축계는 거목을 잃었다.
그가 지닌 무게감은 이른바 학술연구로 업적을 쌓은 원로 못지 않고, 아니 그보다 훨씬 영향력을 장대했으니,
그래서 그의 이른 떠남은 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그 소식에 내가 받은 충격도 필요 이상이었다.
그는 아우라가 있었다. 언론계로는 몇년 차이 나지 않은 후배라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존경하고 추앙했다.
그런 아까운 인재가 저리 허망하게 떠났으니, 언제 기회가 닿으면 내가 그와 함께 일하는 날도 꿈꾼 적이 있더랬다.
부디 본준 씨 그쪽에서 영면에 드셨기 바랍니다.
그대 떠올리며 아이가이에서 곡합니다.
베네치아서 유명 달리한 구본준을 베네치아서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