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이름(2) 중국식 이름 일색인 존호
![](https://blog.kakaocdn.net/dn/bcLBuA/btsMc1ElZgn/yhlgldtcmhUlP5VlbsF311/img.png)
조선시대를 보면 한 사람인데 이름이 심지어 여러 수십 가지인 사람이 있다.
일반 백성이나 노비야 한 가지 이름만 거개 사용했지만 사대부는 그렇지 아니해서 수시로 다른 이름들을 장착해 세탁했다.
그 대표들이 자字와 호號가 있으며, 호라는 것도 당호堂號까지 있어, 이걸로 통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국 문명 세례를 급격히 받으면서 신라 또한 급속도로 이 작명 체계가 변모를 겪는데,
대체하는 흐름을 보면 어릴 적에는 개똥이니 뭐니 해서 이른바 토속하는 신라식 작명을 하다가 일정한 나이 혹은 지위에 이르면 그럴 듯한 다른 이름을 장착하는데
예서 하나 주시할 것은 왕을 필두로 하는 지배계층은 한결같이 새로 장착하는 이름이 누가 봐도 중국식 한문 이름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595년 생인 김유신의 경우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태어날 적에 이미 유신庾信이라 했다 하거니와, 기록에는 탈락했지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틀림없이 따로 있었으리라 본다.
그의 아들 세대에 와서는 이미 태어날 때 완연한 중국식 이름들을 장착하게 되는데,
맏아들은 삼광三光이라, 이는 해 달 별을 지칭하는 말이다.
김유신과 동시대 인물로 김천존金天尊이 있었으니, 그의 아들은 한림漢林이라, 이름 자체에 벌써 중국 문물이 수풀을 이룬다.
중고기 신라 왕들은 저와 같은 순중국식 이름을 왕이 되면서, 혹은 태자로 책봉되면서와 같은 특정한 시기에 도달하면서 존호를 따로 얻게 된다.
법흥 진흥 진지 진평 선덕 진덕은 모조리 왕이 되면서 새로 얻은 이름이다.
그 이전 그네들 본명은 모즉지 심맥부지 금륜 백정 덕만 승만이었다.
그 흐름을 보면 진흥왕까지는 신라식 이름이 있다가 왕이 되면서 순수 한문식 존호를 얻게 된 데 반해 진지 이후에는 아예 어릴 적부터 순수 한문식 특히 불교식 이름을 썼음을 본다.
이는 시대 흐름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이제 더는 촌티 난다 해서 신라식 이름을 안 썼다.
그렇게 중국식 일색으로 갔으면서도, 막상 왕이 되면 살아 생전 그 왕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니 그래서 존호가 생긴 것이다.
선덕왕은 즉위 전 이름이 덕만이었지만, 왕이 되고서 그를 지칭해 신하나 백성들이 덕만이라 부를 수 없었다.
뭔가 지금의 왕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 필요했으므로, 그렇게 불러도 괜찮은 이름, 그것이 바로 존호였다.
그래서 즉위시 선덕을 지칭해서는 선덕대왕이라 부른 것이다.
이것이 조선시대로 내려오면 참말로 지랄 맞아서 지금의 왕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불렀다가는 불경죄라 사형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上 혹은 금상今上이라 불렀는데,
그래서 모든 살아있는 왕은 조선시대에는 금상이었다.
*** previous article ***
신라식 이름과 한문식 이름(1) 존호와 시호
https://historylibrary.net/entry/XFile-35
신라식 이름과 한문식 이름(1) 존호와 시호
중국 문화 영향에 짙게 포섭되면서 신라사회에는 우리한테 익숙한 한문식 작명이 유행하게 된다. 그 시점은 법흥~진흥왕 무렵인데, 이때만 해도 극히 일부 계층에 국한해서 한문식 이름을 지니
historylibra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