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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 영향에 짙게 포섭되면서 신라사회에는 우리한테 익숙한 한문식 작명이 유행하게 된다.
그 시점은 법흥~진흥왕 무렵인데, 이때만 해도 극히 일부 계층에 국한해서 한문식 이름을 지니게 되니
태어날 때 이미 한문식 이름을 갖춘 경우는 거의 없고 자라나면서 별도 이름을 지니게 되니
이것도 흐름을 보면 어릴 적에는 신라식 이름 일색이다가 청장년이 되면서 한문식 이름을 따로 장착하게 되니
이는 아무래도 훗날 경향을 견주건대 스무살 어간에 장착하는 별도 이름인 자字나 호號와 일정한 계승 관계를 이룬다.
이 점에서 중고기 이래 신라 왕들 이름은 그런 경향을 농후하게 보여주는데
법흥-진흥-진지-진평니 하는 이름들은 누누이 지적하듯이 왕이 되면서 얻게 된 존호尊號라,
그런 까닭에 생존시, 특히 재위 시기에도 저 이름으로 그대로 일컬었다.
이는 신라가 저들 임금 재위 당대에 보낸 중국 문서에서도 드러나고, 무엇보다 저들 재위시에 작성한 문서에서도 그대로 반복한다.
진흥왕 심맥부지 재위시에 건립한 금석문들을 보면 진흥왕을 일컬어 그대로 진흥대왕이니 진흥태왕이니 했다.
이는 고려시대 이래 일반화하는 시호, 곧 죽은 뒤에 종묘에 신주를 안치하면서 새로 얻게 된 무슨 宗이니 祖니 하는 이름들과는 현격히 다르다.
저 이름들은 존호인 까닭에 죽어서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없었다.
이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 태종무열왕 이후인데, 태종무열은 시호다. 생전 존호가 아니다.
그 뒤를 이은 문무왕 김법민 역시 문무라는 이름은 시호다.
예서 조심할 대목은 시호는 존호지만, 존호가 시호는 꼭 다니라는 사실이다.
더 간단히 말해 시호는 존호 일종이지만, 존호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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