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꼬리 보다 뱀대가리의 삶, 제인 구달의 경우
그미 인터뷰를 보면 자주 한 말 중의 하나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침팬지가 아니라 개라고 했다.
그 이유를 침팬지는 인간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라 했다.
저 말이 어느 정도 진심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레토릭이라고 본다.
왜?
세계 최고 영장류 학자로 꼽히는 사람이, 것도 침팬지 연구로 그 명성을 쌓은 사람이 저런 말 하면 뭔가 모르게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레토릭이 주는 무게를 제인 구달은 너무 잘 알았고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서 중요한 지점 하나가 있는데 그가 그토록 개를 좋아한다 했으나 그가 정작 개 연구를 하지 않았으며 개에 대한 그 어떤 진지한 글을 발표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
개는 그 어떤 연구를 해도 기성을 뛰어넘을 순 없으며 실제 그가 연구자로서 개 연구에 기여할 것은 눈꼽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구달은 영악했다.
해봐야 티도 안나는 개보다는 아무도 건딜지 아니한 침팬지가 훨씬 전도 유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침팬지는 전인미답이었다.
나아가 변변찮은 학력 그리고 전문성이 없는 그가 그 이름을 아로새기기에는 챔팬지만큼 좋은 소재도 찾기 힘들었다.
침팬지 관찰이 무슨 실험이 필요하겠으며 무슨 거창한 수학 물리 생물 화학이 필요하겠는가?
오로지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그 은근과 끈기를 바침할 쩐주, 곧 돈과 지원이 필요했다.
이 아마추어리즘은 그 자신 어릴적 타잔 이야기를 탐독하며 체득한 일이요 그 실현을 위한 연줄은 뜻밖어도 구세주를 만났으니 그가 바로 당시 세상을 호령한 인류학도 루이스 리키였다.
올두바이 계곡 혁명을 일으킨 리키가 그의 스폰서로 나선 것이다.
리키 역시 누군가는 영장류를 연구해주어야 했다.
그것이 있어야 초기인류 등장을 둘러싼 고리를 해명해주기 때문이었다.
이 고리를 캐는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정식 도제 교육을 받은 제자 누군가?
천만에. 이런 일을 할 제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때 그 일을 하겠다고 실로 담대하게 저요! 하고 외치면서 나타난 이가 그의 비서 제인 구달이었다.
취재하러 보냈더니 아프리카서 제인 구달과 연애질한 사진기자
https://historylibrary.net/m/entry/5-109
취재하러 보냈더니 아프리카서 제인 구달과 연애질한 사진기자
앞서 소개한 대로 제인 구달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시점은 1961년이었다.한 번 맛 본 고기 아직 메인디시도 나오지 않았는데 NG가 구달을 이젠 알아서 너가 벌어먹으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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