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인더스 문명

삼국통일 전 인도에 도착한 신라스님들

초야잠필 2023. 5. 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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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传에는 서기 641-691년까지 인도로 간 스님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691년에 완성된 책이다. 

이 책에는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7세기에 인도로 간 신라 스님을 일곱분 기록해 두었다. 

그 중 삼국통일 전 인도로 출발한 것이 확실한 신라 스님을 보면 다음과 같다. 

https://zh.wikisource.org/zh-hans/%E5%A4%A7%E5%94%90%E8%A5%BF%E5%9F%9F%E6%B1%82%E6%B3%95%E9%AB%98%E5%83%A7%E5%82%B3/%E5%8D%B7%E4%B8%8A

阿离耶跋摩者,新罗人也。以贞观年中出长安,之广胁,〈王城山名。〉追求正教,亲礼圣踪。住那烂陀寺,多闲经论,抄写众经。痛矣归心,所期不契。出鸡贵之东境,没龙泉之西裔。即于此寺无常,年七十馀矣。〈鸡贵者,梵云矩矩吒医说罗。矩矩吒是鸡,医说罗是贵,即高丽国也。相传云彼国敬鸡神而取尊,故戴翎羽而表饰矣。那烂陀有池,名曰龙泉。西方唤高丽为矩矩吒医说罗也。〉

慧业法师者,新罗人也。在贞观年中往游西域。住菩提寺,亲礼圣踪。于那烂陀,久而听读。净因检唐本,忽见《梁论》下记云:“在佛齿木树下新罗僧慧业写记。”访问寺僧,云终于此,年将六十馀矣。所写梵本并在那烂陀寺。

玄太法师者,新罗人也。梵名萨婆慎若提婆。〈唐云一切智天。〉永徽年内取土蕃道,经泥波罗,到中印度。礼菩提树,详检经论。旋踵东土,行至土峪浑,逢道希法师,覆相引致,还向大觉寺。后归唐国,莫知所终矣。

玄恪法师者,新罗人也。与玄照法师贞观年中相随而至大觉寺。既伸礼敬,遇疾而亡,年过不惑之期耳。

이 분들이 어떤 길을 취하여 서역으로 갔는지 확실치 않지만, 참고로 이들이 모델로 삼았을 현장의 "대당서역기"의 경로를 보면 아래와 같다. 

현장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사마르칸드 주변을 지나 인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신라인들의 경우 서기 6세기 중반, 이미 저 길을 통해 인도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P.S. 1) 기록된 것만 저 정도이니 아마 더 많은 신라인이 6세기 당시 저 행로를 누볐을 것이다. 

P.S. 2) 정관 연간에 인도로 출발했다는것이 얼마나 빠른 시기인가 하면, 현장이 서역에서 장안으로 귀환한 해가 645년, 정관 19년이다. 

P.S. 3) 신라 승 중 일부는 현장이 장안으로 귀환하기 전에 이미 인도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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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깃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 속 인물: 고구려인일까?

 

꿩깃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 속 인물: 고구려인일까?

이 벽화 속의 인물이 고구려인이 맞을까? 7세기를 놓고 보자면, 서역에 고구려인이 출현할 가능성보다 신라인이 출현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

historylibrary.net

 

 

*** Editor's Note ***

서역으로 서역으로 물밀듯 몰려간 신라인들
7세기 신라엔 서역 바람이 노도처럼 일었다.
무엇이 이 한류운동을 추동했을까?
동시대 고구려 백제가 하지 못하고 하지 않은 그 운동은 누구가 무엇이 추동했을까?

나는 화랑이라 본다.

화랑과 서역바람이 일치한다

명산대천으로 그들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대세 구칠 같은 사람이 등장한 그 무렵 신라인들이 서역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설계두도 이때 사람이다.

7세기는 한민족사 가장 빛나며
한민족사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일통삼한은 요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발견한 신라의 위대한 승리였고
그 월계관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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