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조선후기 도성 방어를 위한 경기남부 요충지 용인 석성산성

서현99 2024. 6. 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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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석성산성은 용인시의 진산鎭山인 석성산에 위치하며, 보개산성寶蓋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1872년 지방지도에 표시된 '보개산'

 

해동지도에 표시된 '석성산'

 
‘석성산’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633년의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으로 1656년 『대동여지지大同與地誌』가 ‘보개산’으로 기록한 것에 비해 더 이른 시기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석성산’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반까지의 관찬지리서에서는 보개산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볼 때,

‘석성산’은 속칭俗稱의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석성산성이 조선후기에 도성을 방어하는 경기남부의 요충지였다는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애 류성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필 수 있다.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 류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수원水原의 독성禿城은 성첩이 이미 수축되었고 기계도 대략 갖추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온 부민(府民)이 모두 안정된 뜻을 가지고 지금 사력(私力)으로 가옥을 수리하여 들어가 살고자 하는 자가 몹시 많습니다.

이것으로 민심이 믿는 데가 있으면 스스로 궤산(潰散)할 염려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장(營將) 조발(趙撥)은 하는 일에 근실하여 주야로 게을리 아니함으로써 약간의 실효를 거두었으니 자못 가상합니다.

만약 사변이 있으면 의당 수원 부사(水原府使)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조발은 전직 우후(虞候)로서 지금은 직명이 없어 군졸을 통솔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에게 실직(實職)을 부여하여 격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용인(龍仁)과 양지(陽智) 사이의 요충지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그 이름은 석성(石城)입니다.

그 지형의 험난함이 독성보다 나으며 또 직로(直路)의 요충지에 있으니, 만약 이곳을 수축하여 군량을 저장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우측으로 독성을 안고 좌측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연하여 정치(鼎峙)의 형세를 이루면 경도(京都)의 문호가 견고할 것입니다.

이에 신이 용인 현령(龍仁縣令) 윤수연(尹粹然)으로 하여금 중들을 모집하여 방옥(房屋)을 수리하게 하였고 또 양재 찰방(良才察訪) 최흘(崔屹)로 하여금 전영장(前營將)을 겸하게 하여 아울러 경영하여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은 크고 인력은 미약하여 쉽게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니, 그 근처의 안집 도감(安集都監)으로 하여금 둔전(屯田)의 농우(農牛)와 양곡(糧穀)을 옮겨 보태고 힘을 합하여 성취시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애초 둔전을 설치한 것은 요새를 점거하여 백성을 취합하려는 계획에서였는데, 경기의 직로는 경영하여 다스리기를 더욱 시급히 해야 합니다. 안집 도감으로 하여금 물력을 융통하여 성취를 기하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선조실록 74권, 선조 29년 4월 17일 계축 5번째기사(1596년)-

 
 
석성산성은 고려시대에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조선시대 용인의 관방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상부 일부 성벽 구간은 인근의 할미산성의 축성기법과 유사한 모습이 확인되었다. 
 


만약 통일신라부터 산성이 운영되었던 것이 확인된다면, 할미산성이 한시적으로 운영되다가 석성산성으로 관방 중심지가 이동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성산성의 문화유산 지정을 통해 앞으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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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석성산성]성벽을 눈앞에 두고도 성벽인줄 몰랐다.

사진 파일을 보니, 2012년 11월 20일이었다. 당시 석성산 정상에 있다는 “석성산 봉수”를 찾아 처음으로 석성산에 올랐던 것 같다. 정상석이 있는 곳을 보니 유물이 돌아다니고, 잘 다듬은 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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