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호장戶長, 무신정권 때 일어나고 마침내 조선을 집어삼킨 사람들

日莫途遠 2026. 11. 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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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호장은 이름은 무슨 동네 이장이나 조선시대 아전들 같지만 이 사람들은 그보다 신분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시대에는 향촌 바닥까지 정부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그 공백이 된 향촌의 질서를 자신들의 "토호적 권력"으로 유지하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 호장 계급이다. 

따라서 이들은 실제로는 후삼국시대 동란의 주인공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에 의해 옹립된 것이 바로 후삼국 정권, 그리고 고려전기 귀족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호족"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말선초 동란의 주인공들 그 아래에는 

수도 없는 "호장 계급"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 족보 중 고려시대 계보를 보면, 

고려 전기에 잘 나가던 집안이 고려 후기,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도, 

그 고려 전기에 잘나가던 집안의 방계 손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고려전기의 소위 말하는 귀족 계급은 

무신란의 와중에 그야말로 "씨를 말려버리는"타격을 받아, 

절손되거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경우가 많고, 

설사 고려 전기의 귀족 핏줄을 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신들이 보기에 우리 동류라고 인정할 만한 방계 지손들이 아니면 거의 살아 남지 못하였으리라 보는 것이다. 

따라서 고려 전기부터 후기까지 최정상급의 벼슬과 신분으로 치장된 족보는, 

그 사실이 고려사 등 역사 기록에서 교차 검증되지 않는 한 

믿지 못할 부분이 많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비교적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고려시대의 족보 기록을 보면, 

대대로 호장 벼슬을 세습하는 집안들이 있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어느 순간 집안이 일어나는데, 

대개는 무신란 이후 군인 신분으로 일어나다가, 

고려말이 되면 과거제를 통해 사족으로 입신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많은 유력 사족이 이렇게 몸을 일으켰다. 

따라서 고려시대 무신의 난 이후 번영한 집안의 많은 숫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 "호장"의 후예들이다. 
 

태안 마도 6호선 출수 목간 중 호장戶長. 이 분이 사천 목씨 시조쯤 되는 분이다.

 
이번에 발견된 마도 목간에서 사천 목睦씨의 아마도 조상으로 보이는 분이

"호장"벼슬을 칭하고 있는바, 

고려시대 호장이란 바로 그런 것으로, 

고려후기에 이 일족은 아마도 과거제를 통해 입신하여 

사족으로 전환하였으리라 본다. 
 

조선조 제1의 가문 사천목씨, 그 조상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cacheon-mok

 

조선조 제1의 가문 사천목씨, 그 조상을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다

일반에는 그다지 친숙한 이름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내 세대에 친숙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목요상이라는 분이 있다.睦堯相이라 쓰고 대한민국 제11·12·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1935년 생이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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