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HESIS

[북유럽] 덴마크에서 발견된 1,800년 전 전투 유적,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잃어버린 군대 흔적일 수도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3. 28. 11:01
반응형
군복무 중인 병사의 탄띠 부속품군. (사진: 프레벤 델홀름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탄피 부속품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이 bandolier fitting안대 무슨 무기에 매단 장식품 중 하나임은 분명하나, 마뜩한 대응어가 없어 일단 탄피라 해 둔다.

 
Science Norway에서 발표한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0명 규모의 군대(아마도 노르웨이 출신)가 서기 205년 무렵 덴마크로 건너와 로마 용병mercenaries으로 복무하려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오슬로 대학교 고고학자 다그핀 스크레(Dagfinn Skre) 교수가 제시한 이 이론은 서기 205년경 덴마크 윌란Jutland[유틀란드] 반도 동부에서 벌어진 전투라는 극적인 사건을 재조명한다.

이 전투 유적은 스칸디나비아와 로마의 관계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이해를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습지에서 발견된 유물들. 요르겐 일키에르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징글징글하다.


늪 속에 얼어붙은 전장

북유럽에서 덴마크 일레룹 아달(Illerup Ådal)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만큼 규모가 큰 고고학적 발견은 드물다.

이미 1만5천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연구자들은 습지 아래에 20,000점 이상 유물이 더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발굴된 유물들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습지에서 발견된 유물들. 요르겐 일키에르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징글징글하다.


검, 창, 방패와 같은 무기뿐만 아니라 허리띠, 말 장비[마구], 개인 소지품 등이 의도적으로 파괴되어 물속에 버려졌다.

이는 단순한 무작위 폐기가 아니라,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한 후 승리자들이 바치는 의식적인 제물이었다.

고고학자들은 패배한 군대가 약 1,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50척이 넘는 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규모는 단순한 부족 집단이 아니라 고도로 조직화한 군대였음을 시사한다.
 

고고학 교수 다그핀 스크레Dagfinn Skre는 노르웨이와 스칸디나비아 대부분 지역 사회가 로마 제국에서 용병들이 귀환한 서기 180년경부터 완전히 바뀌었다고 믿는다. (사진: 개인 소장)


노르웨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단서들

이 군대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노르웨이 기원설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순록reindeer과 무스 뿔moose antler로 만든 독특한 빗과 노르웨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 피우는 도구들fire-starting tools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기에 새긴 글자인데, 이는 알려진 가장 오래된 룬 문자runes 중 일부다.

이 명문은 라구테바즈Lagutewaz, 가웁스Gaups, 니티요Nithijo, 스와르타를Swarta 포함한 개인 이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신원뿐만 아니라 지리적 위치까지 시사한다.

스크레는 "이러한 유물들은 지역적으로 다양하며, 많은 부분이 우리가 노르웨이에서 알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노르웨이의 로마 시대 전사 무덤은 전국에 분포하며 특히 하델란드Hadeland, 토텐Toten, 링사케르Ringsaker, 헤드마르켄Hedmarken 지역에 집중한다. 지도에는 검이 함께 묻힌 무덤(검은색)과 그렇지 않은 무덤(갈색)이 구분된다. (스타일가르, 2008; 잉빌드 T. 뵈크만, 문화사박물관 제작 지도; 스크레, 2025년 출판)


로마를 향한 여정이었을까?

스크레의 해석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군대가 어디에서 왔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향했느냐는 것이다.

서기 2세기 후반, 로마 제국은 북부 국경, 특히 다뉴브 강과 라인 강 유역에서 점점 더 큰 압박에 직면했다.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로마는 제국 국경 너머에서 모집한 외국인 용병foreign mercenaries , 즉 게르만족 보조병Germanic auxiliaries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스크레는 이 스칸디나비아 군대가 바로 그러한 용병 체제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들이 소지한 모든 검과 동전은 로마 것이었다"고 지적하며, "많은 정황으로 보아 그들은 용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인다.
 

일레루프 아달 습지Illerup Ådal bog에서 총 129쌍 파이어 스틸fire steels (1,800년 된 라이터)이 발견되었다. 이 중 124쌍은 왼쪽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석영석과 바늘 모양 철 조각이 나무 손잡이에 박힌 형태다. 그중 하나에는 '가우투르Gauthur'라는 이름이 새겨 있다. 이러한 파이어 스틸은 노르웨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오른쪽 사진의 파이어 스틸처럼 나머지 5쌍은 전혀 다른 지역 출신 군인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 프레벤 델홀름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유틀란트 반도 동부에서 로마 국경까지는 약 650km 떨어져 있었는데, 걸어서 이동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했다.

군대는 하루에 1톤이 넘는 곡물을 소비해야 했을 것이므로, 이동 중에 보급품을 약탈해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틀란트 반도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야기했을 수 있으며, 결국 참혹한 패배로 이어졌을 것이다.
 

NITHIJO TAWIDE – '니티요가 만들었다' – 라는 문구가 일레루프 아달에서 발견된 방패 손잡이에 새겨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룬 문자 문장이다. (사진: 프레벤 델홀름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스칸디나비아 사회의 전환점

스크레의 주장은 단 하나의 전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서기 180년 무렵 스칸디나비아 사회, 특히 노르웨이 사회가 심오한 변혁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증거는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이 시기부터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무기로 가득 찬 대형 고분 출현
로마 바실리카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웅장한 목조 건축물 건설
철 생산 및 장거리 무역의 급증

이러한 발전은 사회가 점차 계층화하고 군사화했음을 시사한다.
 

NITHIJO TAWIDE – '니티요가 만들었다' – 라는 문구가 일레루프 아달에서 발견된 방패 손잡이에 새겨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룬 문자 문장이다. (사진: 프레벤 델홀름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로마에서 받은 급여와 경험으로 부유해진 귀환 용병들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크레는 그들의 영향력이 바이킹 시대부터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스칸디나비아 전사들이 비잔틴 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계속 복무한 시기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61년부터 180년까지 로마 황제였다. 로마에 있는 그의 기념탑에는 일레루프 아달에서 발견된 무기들 중 일부가 새겨 있다. 병사들은 말도 함께 데려왔다. (사진: Barosaurus Lentus / Wikimedia)


모든 학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일레룹 군대의 노르웨이 기원설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르후스 대학교 고고학자 안드레스 미노스 도바트Andres Minos Dobat는 유적에서 발견된 말 유해에 대한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 결과를 지적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해당 말들은 노르웨이가 아닌 덴마크나 스웨덴 남부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도바트는 이 말들이 특수 군마였기 때문에, 우연히 교역되거나 포획되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이 말들이 노르웨이산이 아니라면, 군대 자체의 기원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학적 증거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며, 고고학계 내에서 계속되는 논쟁에 주목하게 한다.
 

1,800년 전 일레루프 아달에서 발견된 이 창lances을 포함한 세 개 창에는 바그니요Wagnijo (Vagn)라는 이름이 룬 문자로 새겨 있다. 이 새김질은 노르웨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졌을까? 바그니요는 이 창을 만든 대장장이였을까? 아니면 로마군에 입대한 병사들을 이끈 군 지휘관이었을까? 이러한 새김질은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흔했지만 게르만 민족들 사이에서는 드물었다. 어쩌면 바그니요는 로마 제국 어딘가에서 고도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또한 읽고 쓸 줄 알았을 가능성도 있다. (사진: 프레벤 델홀름 / 모에스가르드 박물관)

 
연결된 북유럽

일레룹 군대가 노르웨이에서 왔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한 가지 결론은 점점 더 무시하기 어렵게 된다.

바로 스칸디나비아가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로마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전역에서 로마 동전, 특히 2세기 후반 은화 데나리우스denarii가 점점 더 많이 발견된다.

이 동전들은 대부분 로마 병사들의 급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시에 수백 점 로마식 무기가 스칸디나비아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종종 로마 부대원처럼 무장한 채 매장된 유골과 함께 발견되었다.

스크레는 "실제로 노르웨이에서는 게르마니아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로마 유물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곳은 변방이 아니라 더 넓은 네트워크의 일부였습니다."
 

노르웨이에는 로마식 목욕탕, 빌라, 다리는 없지만, 로마식 바실리카가 있다. 노르웨이의 바실리카는 대규모 연회장 형태로 지었으며, 고고학자들은 최근 이러한 유적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있다. 로마 유리와 동전, 그리고 다양한 로마 무기들도 발견되었다. 또한 노르웨이에는 로마식 군대 조직을 갖춘 군대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진은 부스케루드에 있는 셈(Sem)의 대형 연회장이 겨울철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이미지: 아르키콘 / 문화사박물관 보도자료)


참혹한 패배, 그리고 영원한 유산

유틀란트 해전은 패배한 군대에게 참담한 결과로 끝났다.

그들의 무기, 귀중품, 개인 소지품은 모두 약탈당하고 파괴되어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의식적인 파괴 행위는 그 이야기를 보존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일레룹 아달 유적은 철기 시대 전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창 중 하나이며, 스칸디나비아가 로마 세계와 놀라울 정도로 밀접하게 얽혀 있던 시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용병이든, 상인이든, 문화 중개자이든, 북방 사람들은 고립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적응하며, 훗날 바이킹 세계가 될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덴마크 습지 아래에는 그 이야기 상당 부분, 어쩌면 60% 정도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다.
 

2024년, 고고학자들은 부스케루드(Buskerud)의 셈(Sem)에서 길이 40~50미터에 달하는 족장의 회관을 발견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처음에는 이 건물이 바이킹 시대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800년이나 더 오래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건물은 카르뫼이(Karmøy)의 아발드스네스(Avaldsnes), 보르그(Borg, 사르프스보르그) 및 노르웨이 로마 시대의 다른 지역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지: 아르키콘/문화사박물관 보도자료)

 

Andres S. Dobat et al.: "The four horses of an Iron Age apocalypse: War-horses from the third-century weapon sacrifice at Illerup Aadal (Denmark)". Antiquity, 2014. Doi.org/10.1017/S0003598X00050304 
 

바이킹 해상력은 로마 영향 아래 3세기에 이미 등장했을지도
https://historylibrary.net/entry/Viking-Sea-Power

바이킹 해상력은 로마 영향 아래 3세기에 이미 등장했을지도

수 세대에 걸쳐 바이킹 시대는 793년 린디스판Lindisfarne 습격을 기점으로 하는 8세기 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새로운 고고학적 해석에 따르면 바이킹 해상력의 뿌리는 그보다 5세기

historylibrary.net

 
 
[북유럽] 청동기 시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바이킹보다 3,000년 앞서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Bronze-Age-Scandinavians-Sail

[북유럽] 청동기 시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바이킹보다 3,000년 앞서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다

(April 7, 2025) PLOS ONE에 발표된 이 연구에 따르면, 바이킹 시대보다 수백 년 앞선 북유럽 청동기 시대 사회는 현재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넓은 해역을 정기적으로 횡단하는 능숙한 항해술을 보

historylibrary.net

 
 
[북유럽] 노르웨이 무덤에 1,700년 전 고대 로마 보드게임 발견[2020]
https://historylibrary.net/entry/Roman-Board-Game-Norway

[북유럽] 노르웨이 무덤에 1,700년 전 고대 로마 보드게임 발견[2020]

(2020년 6월 12일) 노르웨이 국영 방송 NRK에 따르면, 노르웨이 서부의 한 무덤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약 1,700년 된 로마 보드게임을 발견했다.이 유물은 서기 300년경, 즉 서기 1년부터 400년까지

historylibrary.net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