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울러매는 그 미묘한 차이, 그리고 구리거울
요새는 서양 문화가 침투하는 바람에 애들을 울러매고 다닐 적에 가슴팍 자루에다 울러매는 모습이 우리한테도 아주 자주 보이지만
몇 십년만 거슬러올라가도, 또 지금도 연세 자신 할머니가 손주를 볼 때는 저리 안한다.
가뜩이나 굽은 허리 저리 손주들 매고 다녔다간 진짜로 꼬부랑 할매 된다.
한국문화는 짐짝이건 아이건 뭐건 나발이건 전부 이 문화다.
등짝에 지는 문화다.
이건 아이를 앞뒤로 울러맨 서양 여성인데, 등짝을 맨 이유는 애가 둘이기 때문이지 딴 이유 없다.
정칙은 가슴팍이다.
곧 죽어도 한국 아이 업기 문화는 이거다.
포대기 둘둘 말아 등대기에 찰싹 붙여야 한다.
이것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다.
물론 한국문화에서도 앞짝에 치렁치렁 걸치는 문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건 장신구 계통이고 문제는 짐짝이라 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등짝으로 간다!
좀 있는 집안 무덤에서는 모름지기 나오는 이런 거울들
이건 장신구가 아니다.
짐짝이다.
내 누누이 말했지만 저걸 가슴팍 앞으로 걸친 것으로 보는 한국일본 고고학도들은 다 틀렸다.
글러먹었다.
저런 거울들은 등짝에 울러맸지 결코 가슴팍에 달고 다니지 않았다!
***
저 포대기 애 키우기 문화에서 서양과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한국에서는 그 일이 할매들 일이라 저리 되었고, 서양은 부모들 이야기라 저리 갔을지도 모르겠다.
동경은 등때기에 둘러맸지 가슴팍에 걸친 것이 아니라는 내 주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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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기차게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 그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동진시대 도사 갈홍 저술 포박자抱朴子에 보이는 기술이었으니 그에서 갈홍은 선경仙經이라는 지금은 망실한 도교 옛 문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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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은 등때기에 울러맸지 가슴팍에 걸치지 않았다
동경은 등때기에 울러맸지 가슴팍에 걸치지 않았다
동경, 곧 청동거울이 출토하는 양상을 보면 첫째 무덤 혹은 그에 버금하는 곳, 곧 부처님 산소인 탑 같은 데가 압도적이고 둘째 각종 문양이 있는 곳이 실은 거울 뒷면이라 거울 본연의 기능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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