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 갑옷, 백제 갑옷과 놀랍도록 유사"
일본 최초 불교 사찰 비조사 탑 심초석 출토 갑옷, 공산성 백제 갑옷과 비교

최근 일본에서 진행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고대 일본과 한반도 간 깊은 문화·기술 교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나라현 아스카데라Asukadera temple[비조사飛鳥寺] 유적에서 발굴된 갑옷은 백제 왕국 시대의 방어구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주며, 7세기경 양국 간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로 떠오른다.
이번 발굴 중심에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불교 사찰로 널리 알려진 아스카데라가 있다.
6세기 후반에 건립된 이 사찰은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파된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서기』를 비롯한 여러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백제 왕국에서 숙련된 장인과 승려들이 아스카데라 건설을 돕기 위해 일본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탑 중앙 기둥 기초central pillar foundation of a pagoda 아래에서 발굴된 이 갑옷은 백제 왕실 유적에서 발견된 갑옷과 구조적 특징을 공유한다.[심초석을 말한다.]
이러한 유사점은 두 지역 간 외교 및 문화 교류에 대한 오랜 역사적 기록을 뒷받침한다.
교토 다치바나 대학Kyoto Tachibana University 이노쿠마유 가네카츠Kanekatsu Inokuma 명예교수는 이번 발견이 『일본서기』 기록과 매우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에는 이 갑옷이 또 다른 한국 왕국인 고구려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했지만, 새로운 유물 증거는 백제 시대 제작 기법을 강력하게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 갑옷 조각들은 원래 1957년 나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되었으며, 2015년부터 재분석이 진행되었다.
이시바시 시게토Shigeto Ishibashi와 하츠무라 타케히로Takehiro Hatsumura를 비롯한 연구진은 X선 촬영 및 3D 측정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갑옷의 구조와 디자인을 더욱 자세히 분석했다.
연구 결과, 일본과 백제 갑옷 모두 작은 철판들을 끈으로 엮어 만든 판갑 구조lamellar structure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구조는 유연하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방어구를 제공했으며, 몸통 보호대와 어깨 및 팔 보호대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이러한 제작 기법은 기술적 정교함뿐만 아니라 지역 간 군사 지식의 전파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2011년과 2014년에 공산성에서 발굴된 백제 시대 갑옷 조각들을 통해 비교 분석이 가능해졌다.
[공산성 갑옷의] 일부 가죽 조각에는 645년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 있어 두 시대 유물 간 명확한 연대적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2024년 초, 하츠무라 교수는 공주대학교에서 이 한국 유물들을 직접 조사하여 구조적 유사성을 확인했다.
그의 관찰 결과는 백제가 초기 일본 갑옷 디자인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기존 견해에 힘을 실어주었다.

7세기 일본 갑옷과 무기의 특징
이러한 발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7세기 일본의 무기와 갑옷은 상대적으로 드물게 발견된다.
오늘날 알려진 대부분의 유물은 무덤과 쇼소인(정창원)과 같은 보존된 유물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의 주된 갑옷 양식은 케이코였는데, 이는 작은 철판을 비늘처럼 엮어 만든 판갑옷이다.
이러한 유연한 구조 덕분에 이전의 딱딱한 갑옷에 비해 기동성이 뛰어났다.
후대의 도마루 갑옷domaru armor과 유사한 짧은 흉갑도 있었지만, 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갑옷은 엘리트 무사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일반 병사들은 아마도 작은 철판으로 보강한 천을 덧댄 간이 보호구를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방어력은 제한적이었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당시의 무기 또한 독특했다.
60~70cm 길이 직선형 검이 표준이었으며, 내구성과 단순함을 위해 검은색 칠black lacquer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2m 길이 장궁Longbows은 능소화catalpa나 느티나무zelkova 같은 활엽수hardwoods 로 만들었다.
약 85cm 길이 대나무 화살은 최대 50발shafts까지 넣을 수 있는 화살통quivers 에 보관했다.
검과 활 외에도 전사들은 전투에서 창과 방패를 사용했다.
후대의 군사 규정 legal codes과 같은 법전에는 병사들의 표준 장비가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작은 다용도 칼small utility knives, 다리 덮개leg coverings, 신발, 숫돌whetstones, 식량 주머니food bags, 물통water containers 등이 포함되어 있어 점차 조직화한 군사 체계를 보여준다. [숫돌은 칼을 갈기 위함이다.]
역사적 중요성
아사히 신문에서 보도했듯이, 이러한 발견은 고대 전쟁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한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한 갑옷 기술 발전은 종교, 통치, 공예 등 광범위한 문화 교류의 양상을 반영한다.
궁극적으로 아스카데라 유적 발견은 초기 일본 사회가 이웃 문화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강력하게 상기한다.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공유된 유산을 밝혀줄 더 많은 증거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
이 소식은 내가 전한 적 있는 듯한데, 어디 갔는지?
잉? 작성은 해 놓고 발행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앞은 아케오뉴스 보도이며, 아사히 신문 보도는 아래와 같다.
百済王宮跡で発見のよろい、飛鳥寺出土品と酷似 日本書紀を裏付けか
3/22(日) 10:00配信
朝日新聞
飛鳥寺の塔心礎から出土した小札甲と腕甲=奈良文化財研究所提供
日本初の本格的な仏教寺院・飛鳥寺跡(奈良県明日香村、国史跡)でみつかった甲(よろい)と、古代朝鮮三国の一つ、百済(くだら)(4世紀半ば~660年)の王宮遺跡(韓国忠清南道(チュンチョンナムド)公州(コンジュ)市)で出土した甲の形や構造がよく似ていることが、日韓の研究者の調査で分かった。
【写真】百済・公山城遺跡でみつかった鉄製の小札甲=2025年11月、韓国・公州市
飛鳥寺と百済の関係を記した「日本書紀」の内容を考古学的に裏付ける重要な物証だと専門家は指摘する。
日本書紀によれば、飛鳥寺は588年、百済から僧侶や技術者の派遣を受けて建設が始まったとされる。
奈良国立文化財研究所(現・奈良文化財研究所、奈文研)が1957年、地下約2.7メートルでみつけた塔の心礎の上面に、鉄製の甲や蛇行状の鉄器などが埋められていた。
■「百済の影響が強かったことが分かって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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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점은 왜 무덤에서 나오는 저런 유물이 탑 심초석에서 공양품으로 나오느냐 아니겠는가?
이 점을 생각하지 아니하니, 지진구 진단구 막 타령이 나올 수밖에 없다.
탑이란 무엇인가?
부처님 산소라는 사실, 이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부처님 공양품, 1,300년 전 태국 와불 아래서 와장창 쏟아져
https://historylibrary.net/entry/Buddha-Statue-in-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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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15년이 넘는다. 애초 시작은 불교 사리장엄이었다. 불교건축물을 발굴하면 건물터 마루 바닥이나 담장, 특히 탑을 발굴하거나 해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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