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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다맨: 1만 년 된 DNA가 영국 최초 거주민 역사를 다시 쓰다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3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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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다맨 얼굴 복원 이미지. 출처: 베르너 우스토르프,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CC-BY-SA


영국 고고학자들이 체더맨Cheddar Man으로 알려진 유골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완료했을 때, 그의 나이를 1만 년으로 추정했다.

그들은 놀라움에 잠시 멈춰 서서 연대 측정 과정을 반복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이 유골은 영국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유골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유골에서 추출한 고대 DNA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는 과학자들이 중석기 시대 영국에서 산 체더맨의 삶을 묘사하기 위한 DNA 초상화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들이 가장 놀라게 된 것 중 하나는 영국 최초 현대 인류 거주민의 모습이었다.

체더맨은 기존 영국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랐다.

체더맨의 DNA에는 일반적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관련된 피부색소 관련 유전적 표지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영국 제도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체더맨의 피부색이 이 외딴 지역에 산 후손들의 피부색과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거리와 피부색은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였지만, 이러한 특이한 피부색의 발견은 유럽 전역에서 발견된 다른 중석기 시대 인류 유적과도 일관성이 있었다.

톰 부스Tom Booth 박사 분석에 따르면, 옅은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은 옅은 피부나 금발 머리가 영국에서 흔한 유전적 변이가 되기 훨씬 전에 유럽 대륙에 도착했다.

실제로, 이러한 특징은 정착 농업과 함께 작물 및 가축 사육이 시작된 이후에 나타났다.

체더맨의 외모는 외모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에 대한 경고다.

현대 영국인의 하얀 피부, 밝은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가 과거의 외모를 예측한다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오늘날 흔한 특정 특징들의 조합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특징들이 지배적이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체다맨 상반신 (Geni/CC-BY-SA 2.0)


체다맨은 누구였을까?

그렇다면 체다맨으로 알려진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누구였을까?

기록 보관소 연구와 면밀한 자료 수집을 통해 DNA 분석실을 찾은 이 유골의 대략적인 생애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를 검은 피부와 푸른 눈을 지닌 중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으로 묘사한다.

그의 키는 약 166cm였으며, 20대에 사망했다.

유골은 1903년 당시 인기 관광지였던 고프 동굴Gough's Cave 배수 시설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

체다맨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연구자는 그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가장 오래된 영국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학자들은 그의 유골 나이를 4만 년에서 8만 년 사이로 추정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집중적인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그는 실제로 약 1만 년 전에 산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골격은 특이하게 좁은 골반 모양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그의 이마에 있는 구멍의 원인을 확신하지 못한다.

감염 때문인지, 아니면 동굴 배수 공사 중 발생한 손상인지 추측할 뿐이다.

당시 유럽의 모든 호모 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체더맨은 유당 불내증lactose intolerant이 있어 성인이 된 후에는 우유를 소화할 수 없었다.

그의 식단은 씨앗과 견과류를 많이 섭취하는 식물성 위주였다.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체더맨이 살던 당시 영국은 아직 유럽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체더맨의 삶은 충분한 식량을 구하는 데 달려 있었다.

그의 식단은 대부분의 수렵채집인과 비슷했다.

고기는 붉은 사슴, 큰 야생 소, 그리고 민물고기 등이 있었다.

한때 오록스aurochs라고 불리는 큰 야생 소를 사냥하는 것은 훨씬 쉬웠다.

특히 따뜻한 시기에는 영국 전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들은 17세기 이후 멸종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이제 고기와 우유를 위해 사육되는 가축이 되었다.

특이한 동굴 매장

중석기 시대 인류 유해 대부분은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동굴 매장은 체더맨이 살던 시대에 널리 행한 매장 방식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미 영국 전역에서 약 50구 유해를 발굴했는데, 이들은 모두 중석기 시대(또는 중기 석기 시대)에 100~2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동굴에 묻힌 것으로 밝혀졌다.

체더맨 사례가 특이한 점은 공동 매장이 흔한 시대에 그가 홀로 묻혔다는 것이다.

부스 박사는 유골이 퇴적층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체더맨이 퇴적층에 묻혔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묻혔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가 사망했을 수도 있다.

체다맨 두개골 (Geni/CC-BY-SA 3.0)


고대 DNA 수집

두개골에서 남은 DNA 일부를 채취한 후, 셀리나 브루스Selina Bruce 박사 연구팀은 차세대 샷건 시퀀싱 shotgun sequencing 기술을 활용해 유전체 전체에 무작위로 분포된 수백만 개 DNA 조각을 분석했다.

수천 년 된 DNA를 분해할 수 있는 이 기술 덕분에 연구진은 체다맨의 DNA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발견한 DNA를 현대 인류의 유전체와 비교하여 분석할 수 있었다.

브루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방대한 유전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그녀는 관찰과 경험이 성공적인 분석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유골의 특정 신체적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를 실시한 후 나온 것이다.

분석 결과 가장 유용한 표지자들이 확인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골이 보관된 환경이었다.

동굴 내부의 일정한 저온과 천연 광물 퇴적층 덕분에 DNA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분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이는 체다맨이 산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 고고학적 발견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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