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의 두 남편, 네덜란드 남작에 탄자니아 국회의원을 아우른 여인
침팬지 친구 제인 구달Jane Goodall 타계와 즈음해 그의 일생을 조명하는 각종 보도가 잇따르거니와, 그의 위업 칭송에 여념이 없는 때문인지, 그의 남자 혹은 남자들에 대한 논급이 쉬 발견되지 않는다.
91년 녹녹치 아니한 궤적을 그린 그는 평생 독신이었을까? 결혼했다면 상대는 누구일까?
보통 저런 삶, 곧 걸핏하면 현장 조사 핑계로 아프리카로 날아가고, 좀 유명해지고 나서는 세계를 주유하는 사람들은 독신을 고수하거나, 혹은 그가 남자건 여자건 상대남 상대녀를 반찬 고르듯 바꿔치기가 취미인 일이 많은데, 제인 구달은 생각보다 복잡한 남자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일단 겉모양은 그리 보인다는 말이다.
그 긴 생애 구달한테 남편은 달랑 둘이었다. 전 남편과 남편 상태로 죽은 남자가 각각 하나씩 있다.
전 남편은 제낀 혹은 쌩까인 남자이고, 죽을 때 남편은 재혼남이다.
전 남편이 배런 휴고 반 라윅Baron Hugo Van Lawick이고 남편이 데릭 브라이슨Derek Bryceson이다.
전 남편한테 Baron이라는 귀족 작위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허심이 보아 넘길 수 없다.
제인 구달은 네덜란드 귀족이자 저명한 야생동물 사진작가였던 후고 반 라윅 남작과 처음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64년 런던 첼시 올드 교회Chelsea Old Church에서 백년가약했다.
백년? 미안. 찢어졌으니 무슨 백년가약?
제인 구달은 1934년 생이니, 서른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결혼 골인한 셈.
하긴 뭐 이전까지 워낙 바빴어야지?
고등학교 졸업하고선 아프리카로 나가요 하다 휙 날아 그 유명한 인류학도 루이스 리키 비서로 일하다가 나 침팬지 구경가요 하고선 침팬지 숲으로 갔으니
그런 그가 느닷없이 내셔널지오그래픽 기획으로 벼락스타로 떠오른 시점이 1961년.
변변찮은 가문 출신도 아니요, 학력 또한 볼품 없는 그가 네덜란드 남작 배필이 된 절대 배경은 이 1961년 벼락 스타덤이 바탕이 됐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때 월드스타가 된 제인 구달은 그해에 그 스타덤을 배경으로 특례 입학을 하게 되는데, 대학 학사도, 석사도 모조리 건너뛰고선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이 유서 깊은 대학 역사상 이런 특혜는 8번째였다니, 이런 유명세는 부자 남편을 만나는 발판이 된다.
저 유럽 귀족들이야 스포츠니 탐험이니 취미 혹은 본업으로 삼는 이가 많으니, 제인 구달을 찍은 저 남작은 사진가였다지 않나?
암튼 남작을 낚아채면서 제인 구달은 제인 반 라윅-구달 남작부인Baroness Jane van Lawick-Goodall이라 했다.
말로만 듣던 그 마님! 이었다. 마당쇠도 있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는 1967년 아들 후고 에릭 루이스Hugo Eric Louis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10년간 살다가 1974년 각자 갈 길을 간다. 빠이빠이!
상흔은 기쁨으로 치유해야 한다.
전 남편과 빠이빠이한지 1년이 지난 시점, 제인 구달한테 새로운 사랑이 나타났으니 이번에는 탄자니아 국회의원이었다!
와 남작 부인이었다가 의원 부인?
데릭 브라이슨Derek Bryceson은 탄자니아 국립공원 책임자이기도 했다.
찢어지고 나서 알고 사랑에 빠졌을까 아니면 그 전부터 모종하는 일렉트리스티가 있었을까? 알 수 없다,
1975년 두 사람의 결혼은 제인 구달한테 새로운 인생 경로를 열어준다. 환경 보호 활동가로 본격 나서는 발판이 된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결국 결혼을 잘해야 한다는 뜻인가?
데릭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곰베 스트림 국립공원에서 진행된 제인의 획기적인 연구를 보호했고, 심지어 그녀의 연구를 보호하기 위해 관광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오잉? 여자한테 눈이 멀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든든한 백 데릭은 1980년 암으로 사망하면서 짧은 재혼 생활도 끝나고 만다.
이후 결혼과는 담을 쌓았다. 그 이유를 86세 때인가 밝힌 적 있다는데 이렇다.
"더 이상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 봐요. 제 삶은 이미 완벽했고, 남편은 필요 없었어요."
경상도 말로 걸거친다고 한다. 내 앞길에 남자 혹은 남편은 걸거치는 존재였다.
제인 구달이 "그럽Grub"이라 부르는 아들 휴고 에릭 루이스Hugo Eric Louis는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 아직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다,
제인 구달이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예외이겠는가?
괜찮은 사람 배필로 맞으려거든 아버지 잘 만나거나, 내가 스타덤에 올라야 한다!
오늘의 교훈 끝!
데릭 브라이슨Derek Bryceson
https://historylibrary.net/entry/5-110
미켈란젤로의 오마주, 제인 구달 신화를 만든 사진 한 장
1964년, 제인 구달의 남편 Hugo van Lawick은 그녀와 새끼 침팬지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진은 우리가 침팬지를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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