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장터와 득달이 혹은 덕달이, 그리고 은중과 상연

'은중과 상연'에 안락사, 존엄사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어릴적 대략 6,70년쯤 이전에는 시골에는 어린이 사망이 많았다.
작은 마을인데도 '애장터'가 두 곳에 있었다.
아기 시신을 묻어주는 일종의 마을 공동 매장터이다.
조금 자란 뒤에 마을 어른들께 들은 얘기에 따르면, 묻어주는 풍습이 생기기 이전에는 아기 시신을 땅에 묻지 않는 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부모 세대에는 아기들 시신에 대해서는 일종의 풍장 같은 풍속의 여운이 시골에 있었다.
무명베 허연 홋이불 같은 천으로 시신을 싸서 소나무 위에 얹어두었다고 한다.
그것을 '득달이, 덕달이?'라고 했다 하였다.
은중과 상연에 죽음 이야기가 나와서, 득달이가 생각났다.
이 낱말도 내 다음 세대에는 없어질 것이다.
***
이상은 내 고향 김천 인근 거창 출신 박헌순 선생 증언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가끔 저런 일이 있어 마을 인근 마골이란 골짜기에 아이 시신을 묻는 일이 있었다.
난 아이 매장용 구덩이만 봤고 아이 시신은 보지 못했다.
대략 오십년 남짓 전쯤이니 나도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다.
저 애장터는 아마도 애葬터, 혹은 애藏터일 것이다.
애를 장사하건 묻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덕달이 혹은 득달이란 말은 나는 못들어봤는데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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