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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은 자비왕릉] (6) ‘신라왕은 동시에 일곱’이라는 식칼 물고 월하의 공동묘지를 나타난 국립박물관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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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금관총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유물 중에 그 환두대도 칼집 끝장식손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긁음 글씨가 확인됐다는 2013년 7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보도자료는 내 아무리 봐도 신라고고학도인 당시 학예연구사 김대환이 대본을 작성하고

당시 결재라인을 보건대 학예연구관 홍진근, 그리고 고고역사부장 송의정, 그리고 학예실장 곽동석, 그리고 박물관장 김영나 재가를 받아 배포됐겠거니와,

이후 저 김대환이 저 금관총을 두고서 발표하는 글을 볼짝시면, 저 보도자료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보도자료는 무엇이 문제인가?

간단히 말하건대 호도糊塗다. 

나는 앞서 나 김태식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아는 것만 안다하는 공자형 겸손가를 자처했거니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이 시점에 들고 나왔겠는가?

저 이사지왕 이야기에서 당시 박물관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 곧, 지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

더 간단히 말해 선을 넘었다. 

내 능력은 딱 이만친데, 그걸 뛰어넘어 전지전능이 되고자 했고, 그 전지전능으로 가는 과정에서 신라사를 뒤틀어버리고 말았다.

저 보도자료가 이후 금관총, 더욱 구체로는 이사지왕 정체를 둘러싼 무수한 논의를 구속하게 되거니와, 아무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명시하지 아니하나,

저 김대환이 제시한 아웃라인에서 단 한 치 어긋남 없이 그 지시를 따른다는 점에서, 이 보도자료를 한국사를 왜곡하고, 신라사를 헝클어버린 일대 원흉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구체로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보도자료는 말한다. 

‘尒斯智王’이라는 왕명은 『三國史記』, 『三國遺事』및 신라 금석문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는 ‘尒斯智王’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尒斯智王’은 금관총의 주인공으로서, 당시 신라 최고지배자인 마립간(麻立干: 내물왕~지증왕) 중 한 사람의 다른 왕명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현재의 자료로서 한계점이 많다. 

딱 여기까지여야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가오가 영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인지 더 나아간다.

한편 ‘尒斯智王’은 당시 왕으로 불린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 ‘此七王等차칠왕등’과 같은 기록을 통해 왕(마립간)이 아닌 사람도 왕으로 불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금관총의 ‘尒斯智王’은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과 왕 아래에 있는 갈문왕이나 간지(干支)를 가진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일부 학계의 연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다시피 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냉수리비 차칠왕등을 느닷없이 들고 나왔다.

신라 왕이 일곱이었댄다. 아, 물론 박물관이 그리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고, 학계 일부 견해를 빌리기는 했지마는, 신라에서는 지증왕 시대에 일곱 왕이 동시에 있었다는 그런 의견이 있으므로, 저 이사지왕도 그렇게 무수하게 많았을 마립간 제외 아간지 거벌간지와 같은 중하위급 신라 왕조 중하위급 관료들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단순한 의견 제시?

천만에.

보도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저 말은 저의가 있다. 

‘尒斯智王’을 고위 귀족으로 볼 때, 금관총ㆍ천마총 등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으로 비정한 많은 국내외 연구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명문은 금관이 마립간과 고위 귀족 등이 함께 사용하였으며 마립간만의 상징물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 준다.

보다시피 아예 이사지왕이 마립간이 아니라고 한다. 마립간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 솔까 금관을 왕 혹은 왕비 혹은 그에 준하는 인물들만 썼는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의심하지만, 이 경우도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것이 저 마립간 시대 마립간에 견줄 왕실 어른은 아주 많다는 점을 망각한 무식의 소치다.

갈문왕도 있고, 왕비도 있고, 왕의 엄마, 왕의 할매도 있다. 생각보다 마립간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왕실 어른은 생각보다 많다. 

왕비만 해도 조선시대 고려시대가 증명하듯이 왕 하나가 여러 왕비를 동시에, 혹은 순차로 두기도 한다.

반란과 같은 일에 연루되어, 또 아 낳다가 훅 저승으로 날아가는 일이 그리 많았다. 

한데 금관을 왕이나 갈문왕이 고위급 관료랑 같이 착용해? 

혹 그런 사례가 나오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저기에 달만 뜨면?



저 보도자료는 말할 것도 없이 저 냉수리비 차칠왕등을 근거로 신라가 지증왕 시대에 왕이라 일컬은 존재가 물경 일곱 놈이나 동시에 존재했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망발에 기초한다.

모르면 모른다 해야 한다. 

왜 거기서 함부로 튀어나가 판타지 문학을 창작한단 말인가?

이사지라는 이름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안보인다는 말이 어찌 그런 마립간이 없었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겠는가? 

5세기 중후반 무렵에 신라에 이사지왕이라는 왕(마립간)이 있었다!

그 왕이 여기 묻혔다고 당대 신라가 작성한 문서가 그리 말하면, 그 이사지왕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어느 신라왕인지 끼워서 미싱링크를 채울 생각을 해야지,

그가 왕이 아니라 단정하고선 다른 신라 관료, 간지 계열로 왕이라 일컬은 어느 신하 무덤이랜다.

간지 계열 신라왕들? 

너 그거 봤니? 냉수리비에서 이른바 왕들이라 일컬었다는 간지들이 6등 이하 9등 관품이라는 사실? 

김영나도 관장이고 곽동석도 관장이고 송의정도 관장이고 홍진근도 관장이고 김대환도 관장이었니?


[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https://historylibrary.net/m/entry/GUMGWNAGCHONG

[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7월 3일, 느닷없는 보도자료 하나를 언론을 통해 배포하는데 제목이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이라, 담당 부서는 고고역사부.담당 부장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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