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세종이 이룩한 한국출판문화 혁명, 그 원천은 일본산 닥나무였다!

실록을 포함하는 한국고전번역원 사이트에서 왜저倭楮, 곧 왜닥나무, 더 간단히 말해서 일본산 닥나무를 검색해 보면 관련 기록에 쏟아지는데, 이로 보아 왜저에 대비해서 소위 한저韓楮라 할 만한 것이 있었음을 추단한다.
나아가 한저는 시장성이 없어 왜저에 밀려 완전히 시장에서 밀려났음을 본다.
졌다. 한저가 왜저한테 완패하고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실록을 기준으로 왜저가 처음 등장하는 시점은 세종 12년 경술(1430) 8월 29일(정유)라,
이날 임금이 예조에 명하기를 “대마도對馬島에 사람을 보내어, 책 만들 종이 왜저倭楮를 구해 오게 하라” 했다는 것이 그것이라.
이 업무를 담당할 부서로 예조를 지목한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 외교 문제인 까닭이다.
우리가 또 하나 주시할 시점은 음력으로 9월 내지 10월이라, 하필 왜 이 시점이었던가를 묻는 데서, 저걸 얻어오는 방식이 묘목인가 씨인가를 판단할 수 있겠다.
묘목이었을까? 저 시점은 씨를 받을 시점이라, 내가 닥나무를 키워본지 오래라, 그 씨를 받는 방식이 나한테는 기억에 잘 없어 자신은 없지마는, 이 분야 전문가들은 알리라 본다.

그렇다면 저때 세종은 왜닥을 입수했을까? 그런 듯하다.
4년 뒤인 세종 16년 갑인(1434) 8월 3일(정미)에 이르기를 임금이 다시 예조한테 전지해서 “경상도 동래현과 경기 강화에 왜닥[倭楮]을 재배했지만 가꾸는 것을 고찰하는 조문條文이 없어서 장차 절종絶種이 될까 두려우니, 감사로 하여금 매년 여름과 가을에 잘되고 못된 상황을 갖추어 아뢰게 하라”고 했다 하니
세종으로서는 진척 상황이 매우 갑갑했던 모양이다.
저 말은 왜닥을 동래와 강화 두 군데로 나누어 심어 그 작황을 보게 했지만, 그 구체하는 성과가 어떤지 도대체 보고가 없으니 제대로 보고하라! 이런 뜻이다.

저에서 우리는 그 시범 재배지로 부산과 강화를 삼았다는 데서 세종의 세심한 배려를 보지 않을까 한다.
두 군데는 왕청나게 환경이 다르다.
부산이야 대마도랑 엇비슷할 테니, 강화도는 도성 근처라 해서 마뜩한 데를 고른 것이어니와 한반도 기후랑 왜닥이 맞는지를 시험하려 한 듯하다.
역시 세종은 난 사람!
나아가 이때까지도 이 업무를 예조에서 담당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 이런 일은 교섭 단계까지만 담당 부서에서 하고 그것을 실제로 가꾸는 일은 다른 부서로 넘어가야 하지만, 일단 그것이 착종하기까지는 세종은 이 업무를 계속 예조에 맡긴 듯하다.
하긴 그 주된 용처가 외교문서나 출판 사업이니 예조에서 하는 것이 맞다 싶기도 하다.
세종의 이런 닥달은 성공한 듯하다.
다시 5년이 지난 세종 21년 기미(1439) 1월 13일(임진)에는 종이 만드는 일을 관장하는 정부 기관인 조지소造紙所에서 아뢰기를 “강화江華에 심은 왜닥 씨[倭楮種]를 바다 기운이 서로 연해 있는 충청도의 태안泰安, 전라도 진도珍島, 경상도 남해南海ㆍ하동河東에 나누어 심게 하옵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했거니와
역시 내 예상대로다!
세종은 왜닥이 한반도 기후풍토에 맞느냐는 위선 알아야겠기에 대마도랑 같은 섬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북상한 강화도에다가 먼저 육종 재배를 해 보고선 그것이 성공하니 비로소 그 전국 확대를 꾀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우리는 저 증언을 통해 대마도에서 애초 닥나무를 수입할 적에 씨를 가져왔음을 본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증언을 통해 한국 인쇄출판문화가 저 무렵이 epic-making을 맞았음을 본다.
한국출판문화사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목판인쇄니 활판을 이야기하나 그것을 받침한 결정타가 왜닥, 곧 일본산 닥나무였음을 하시何時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 세종 시대는 여러 모로 한국사 획기이며, 개중 하나로 출판문화 혁명을 꼽기도 하거니와, 그 이면에는 저와 같은 세종의 고심어린 닥나무 육종 정책이 있었으며, 그것이 단발성이 아니라 계속 감시하는 체제가 이룩한 위대한 혁명임을 잊을 수는 없다.

왜닥나무[倭楮 왜저], 의심해야 하는 한지韓紙 신화
왜닥나무[倭楮 왜저], 의심해야 하는 한지韓紙 신화
세종 때부터 일본 종이가 희고 보푸라기가 일지 않아 책종이로 적합하여 대마도에서 왜닥나무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합니다. 세종 때 일본 종이를 수입해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 세조 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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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도, 미켈란젤로도 다 정복한 일본 전통 종이 와지和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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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도, 미켈란젤로도 다 정복한 일본 전통 종이 와지和紙
한지韓紙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한다고 난리치고, 그런 움직임 일환으로 그에 앞서 한지를 외국에 알리겠다 해서 주로 문화재 분야에 집중해서 유럽으로 시장 진출을 꾀하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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