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韓紙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한다고 난리치고, 그런 움직임 일환으로 그에 앞서 한지를 외국에 알리겠다 해서 주로 문화재 분야에 집중해서 유럽으로 시장 진출을 꾀하기도 했으니,
그래서 심혈을 기울인 데가 유럽 중에서도 이탈리아였다.
내가 알기로 이를 위해 이탈리아에 쏟아부은 돈 또한 수월찮았으니,
문화체육관광부니 문화재청(지금의 국가유산청)이니 앞서거니뒤서거니 해서 틈만 나면 그쪽으로 달려가 기념촬영하고선 돈 대주기도 참으로 무던히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미 알려졌듯이 유럽 쪽 문화재 수리복원(미국 쪽으로 마찬가지일 텐데)은 일본 싹쓸이판이라, 그 강고한 시장을 뚫는데 한지는 실패했다.
물론 아주 다 실패했다 하기는 힘들 테고, 또 이것도 현재 사정이라 미래에는 어찌 될지 장담은 하지 못한다.
누가 주의해 줄 사람이 있을까 싶기는 했지만, 나는 내 힘이 닿는 한, 저쪽 문화재 수리보수 현장 저 종이 사정을 포착, 전달하려 했으니,
아쉽게도 저쪽 종이 시장 사정은 매개변수가 되지 아니하는 탓인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입수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간헐하는 정보는 없지 않아, 역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니 미켈란젤로니 하는 소위 르네상스 거장들의 보수 현장에는 저와 관련한 유의미한 증언들이 외신 보도를 통해 엿보이기도 했으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역시나 그 현장 모두는 와지和紙라 해서 일본 종이 아사비 판이었다.
직전 나는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으로 유명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가 수리 보수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에 스며든 소금기를 빼내는 종이로 와지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시스티나 예배당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3개월간 때 빼는 작업..현장은 계속 공개, 복원엔 일본산 화지和紙 쓴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Sistine-Chapel-Fresco
시스티나 예배당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3개월간 때 빼는 작업..현장은 계속 공개, 복원엔 일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Sistine Chapel 벽화를 그린 지 5세기 동안 수많은 방문객이 그의 작품에 감탄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땀은 벽에 미세한 입자를 남겨 벽화를 손상시켰다.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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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앞서 직전 이번 이탈리아 밀란 코르티나 올림픽Milan Cortina Olympics[동계올림픽] 개막에 즈음한 소식 중 하나로 이번 대회 참가자들을 겨냥해 밀라노 스포르차 성 내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벽화 복원 현장을 한시 공개하기로 했다고 공지했거니와
그에서 이르기를 탈염을 위한 종이로 일본산 미지米紙Japanese rice paper를 쓰기로 했다고 했으니
밀라노 동계올림픽 기간 다빈치 걸작 복원 현장 개방, 일본 종이로 습기 제거
https://historylibrary.net/entry/long-hidden-Leonardo-gem
밀라노 동계올림픽 기간 다빈치 걸작 복원 현장 개방, 일본 종이로 습기 제거
밀라노 올림픽 기간 다빈치 걸작 복원 현장 개방 이탈리아 밀라노 문화 당국은 밀란 코르티나 올림픽Milan Cortina Olympics을 기념해 복원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오랫동안 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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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말로야 한지가 외국 문화재현장에서 호평을 받는다 하며,
또 저런 현장에 한국산 전통 종이를 써 본 결과 호응이 좋다 하나, 솔까 그 효과 혹은 효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고,
다른 무엇보다 유의미한 문화재 현장에 한지가 유의미하게 등판했다는 소식 자체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빈깡통 수준이라 소리만 요란했다 기억하며 이태리만 해도 아주 한국정부를 호구 삼아 문체부니 국가유산청을 농락하다시피 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틈만 나면 돈 가져오라 아주 갖고 놀았다.
그건 그거고, 한지 한지라 해서 대단하게 우린 떠들지만,
또, 그 이 땅에서 쌓은 내력이 적지 않으니 한국적 전통이라 하겠지만, 그 연원을 따지면 한지는 분명 일정 부분 일본 종이에 직접 뿌리가 닿는다는 사실도 냉철하게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한지를 성립케 하는 절대 출발이 닥나무라(물론 재료만이 전부가 그 전통을 구성하는 절대 요건이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아는 재래종 닥나무는 실상 일본에서 수입한 일본산 닥나무 후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본산 닥나무를 수입해다가 이 땅에서 키웠으니, 그에다가 국적을 부여해 일본산이다 국산이다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재래종 닥나무는 품질 경쟁력에서 현저히 일본산 닥나무에 밀려나 이미 조선 초기에 실상 멸종하다시피 했다.
물론 저 일본산 닥나무도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만 해도 그 내내 한지의 주류를 점거한 재료는 왜저倭楮라 해서 일본산 닥나무였다.
왜닥나무[倭楮 왜저], 의심해야 하는 한지韓紙 신화
왜닥나무[倭楮 왜저], 의심해야 하는 한지韓紙 신화
세종 때부터 일본 종이가 희고 보푸라기가 일지 않아 책종이로 적합하여 대마도에서 왜닥나무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합니다. 세종 때 일본 종이를 수입해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 세조 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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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혹은 유산을 국적 혹은 국경에 가둘 수는 없다.
한지 역시 마찬가지라, 그에는 와지 전통 역시 적지 않게 침투했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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