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터키 여행] (7) 반Van, 동부 아나톨리아의 심장
동부 아나톨리아 대도시 반Van 은 앞서 개략하는 역사를 훑었거니와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한다.
반은 터키 동부 반 주 Van Province 주도州都이며 반 호수 Lake Van 동쪽 기슭에 있다.
이 도시는 역사가 아주 길어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우라르투Urartu 왕국 수도 투쉬파Tushpa였으며 나중에는 아르메니아 왕국 바스푸라칸Vaspurakan 중심지였다.
이곳은 훗날 비잔틴 제국 수중에 들어간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을 상대로 한 말라즈기르트 전투 Battle of Malazgirt (1071)에서 셀주크Seljuk가 승리하면서 이곳은 터키 영향권에 편입된다.
반은 1910년대 이곳을 피로 물들인 이른바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 Armenian genocide 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르메니아인이 밀집해서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학살로 아르메니아인이 사라지면서 오늘날 이곳은 쿠르드족Kurds
본거지로 변했다.
이 일대 고고학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인간 정착 역사는 적어도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 호수 기슭 반 성 Van Castle 남쪽 수킬로미터 지점 틸키테페 마운드 Tilkitepe Mound는 그 시대 역사를 증언한다.
이후 이곳은 우라르투가 등장하면서 그 독무대로 변한다.
당시 반은 투쉬파Tushpa라는 일컬으면서 기원전 9세기 우라르투 왕국 수도가 된다.
초기 정착지는 Van 호수 가장자리와 가깝고 현대 도시에서 서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현재 Van Castle(Van Kalesi)으로 알려진 가파른 절벽에 집중했다.
이곳에서 기원전 8~7세기 우라르투 설형문자 비문이 발견됐다.
'Van'이라는 이름은 우라르투어 비아이나Biaina에서 비롯한다. 이걸 보면 저때는 B와 V가 호환했음을 본다.
우라르투가 가고 기원전 7세기에는 오론티드Orontids 왕조가 새 주인이 된다.
얼마 뒤 기원전 6세기 중반에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 지배를 받게 된다. 도심 외곽 요새(Van Fortress) 근처 지상 약 20미터 높이 바위에는 기원전 5세기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새긴 3개 국어 비문이 있다.
하지만 아케메네스 시대도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앞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에 무너진다.
그가 급서하자 갈라진 마케도니와 왕국은 셀레우코스 왕조 Seleucid Empire 아래 들어간다.
그러다가 기원전 2세기 초 반 지역은 아르메니아 왕국Kingdom of Armenia에 편입된다.
기원전 1세기 티그라나케르트Tigranakert 시를 건설한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 Tigranes II 는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왕국은 기원전 3세기 초, 신흥 아르사키드 왕조 Arsacid dynasty 인 파르티아 Parthia 에 망한다.
이 시대가 서기 3세기까지 이어진다.
파르티아가 몰락하면서 화려하게 개막한 사산 제국 Sassanian Empire, 곧 신 페르시아 제국 Neo-Persian Empire 출현 이후 반은 그 수중에 들어간다.
7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된 로마-페르시아 전쟁 동안 일부 전쟁은 지금의 반과 그 주변에서 벌어졌다.
비잔틴 제국은 602~628년의 결정적인 비잔틴-사산 전쟁 Byzantine–Sasanian War 에서 승리한 후 628년부터 640년까지 이 지역을 잠시 점령했지만, 이후 이곳을 차지한 무슬림 아랍인이 아르미니야 Arminiya 지방으로 이곳을 통합한다.
하지만 이 아랍 권력도 곧 쇠퇴하고 결국 지역 아르메니아 통치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니 아르츠루니 왕조 Artsruni dynasty 가 그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아니 왕국 Kingdom of Ani 통치자들한테 의존하다가 908년 독립을 선언하고 아르메니아 왕국인 바스푸라칸Vaspurakan을 세운다.
특이하게도 이 왕국에는 특정한 수도가 없었다. 왕은 Van city, Vostan, Aghtamar 등지와 같은 장소로 거주를 옮겨 다녔다.
1021년 바스푸라칸 마지막 왕 존 세네케림 아르츠루니(John-Senekerim Artsruni)는 자기 왕국 전체를 비잔틴 제국에 양도했고, 비잔틴 제국은 이전 아르츠루니 영토에 바스푸라칸 테마 Vaspurakan theme 를 세운다.
Van은 비잔틴 통치 기간 동안 에우아Eua 또는 에바Eva(고대 그리스어: Εύα)로 일컬었다.
하지만 비잔틴 시대도 이내 막을 내린다. 셀주크 투르크족 Seljuk Turks 이 바스푸라칸 침입하기 시작하기는 1050년대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 지역은 마침내 그들의 통제에 놓인다.
그 후 Ahlatshahs 및 Kurdish Ayyubids (1207)와 같은 지역 무슬림 통치자들이 등장했고 1240년대 몽골이 이곳을 정복할 때까지 20년 동안 아나톨리아 셀주크 술탄국 Anatolian Seljuk Sultanate 지배를 받는다.
14세기에는 티무르 왕조Timurids 지배를 받았고, 그 뒤를 이어 투르크만 카라 코윤루(Kara Koyunlu)와 악 코윤루(Ak Koyunlu) 연맹이 점령했다.
15세기 전반에 반 지역은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 과 이웃 페르시아 사파비 제국 Persian Safavid Empire 간 분쟁의 땅이 되었다.
사파비 왕조는 1502년 Van을 점령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칼디란 전투 Battle of Chaldiran 이후 1515년에 이곳을 점령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했다.
사파비 왕조는 1520년 다시 이곳을 되찾지만 오스만 제국은 또 다른 Ottoman-Safavid 전쟁 동안 1548년 다시 이곳을 장악한다.
전쟁이 끝난 후 1555년 아마시아 평화 조약 Peace of Amasya 을 통해 이 마을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통제가 확고해졌다.
그들은 처음에 Van을 Erzurum eyalet에 의존하는 sanjak으로 만들었고 나중 1570년 무렵에는 별도의 Van eyalet으로 만들었다.
1604년 압바스 대왕 Abbas the Great 치하 사파비 왕조는 동부 아나톨리아의 다른 잃어버린 영토와 함께 Van을 탈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통제는 마침내 1639년 주하브 조약을 통해 최종적이고 확실해졌다.
1900년대 초 반에는 11개 아르메니아 학교와 10개 터키 학교가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반Van은 페르시아, 러시아, 오스만 제국 국경 근처에 위치하고 모술Mosul과도 가깝기에 오스만 제국 정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은 지역 행정을 잘 대표했다.
오스만 반(Ottoman Van)의 인구 통계는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양측의 소유권 주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반(Van) 시만 보면 세계대전 이전 약 5만 주민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3만 명이 아르메니아인이었고 2만 명이 무슬림이었다.
1914년 공식 오스만 인구 조사에 따르면 반(Van) 지방 인구는 무슬림 17만9천422명에 아르메니아인 6만7천797명으로 구성되었다.
오스만 인구 조사 수치에는 여성과 어린이를 제외한 남성 시민만 포함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반(Van) 지방(여성과 어린이 포함)에 대한 추정치는 이슬람교도 31만3천명, 아르메니아인 13만명, 아시리아인을 포함한 기타 6만5천 명으로 추정한다.
Van의 인구 통계는 변화하는 주 경계를 고려할 때 큰 논쟁거리다. 예를 들어, 1875년에 이 지역은 분할되었다.
반과 하카리 Hakkari 는 분리되었다가 1888년에 다시 합류하면서 인구 조사 수치가 크게 바뀌었다.
일부 저자는 이러한 합병이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1862년에 반에는 9만100명의 기독교인(시리아 기독교인 포함)과 9만5천100명의 무슬림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Van 주재 프랑스 영사 French Consul는 Van과 Bitlis의 51.46%가 쿠르드족, 32.70%가 아르메니아인, 5.53%가 터키인이라고 보고했다.
한편, 콘스탄티노플의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청 Armenian Patriarchate 은 반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이 18만5천명, 아시리아인이 1만8천명, 쿠르드인이 7만2천명, 투르크인이 4만7천 명, 예지디인 Yezidis 이 2만5천명, 자자족 Zazas 이 5천명, 집시가 3천 명으로 추산했다.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과 인구 통계가 베를린 회의 동안 중요해진 점을 감안할 때 양측은 당시 숫자를 과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877~1878년 러시아-터키 전쟁 동안 쿠르드족 셰이크 젤라루딘(Sheikh Jelarudin)은 수천 명 군인을 이끌고 그 지역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마을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이 사건은 영국 종군 특파원 Charles B. Norman의 Armenia and the Campaign of 1877과 아르메니아 소설가 Raffi의 소설 Jalaleddin에서 매우 유사한 표현으로 묘사된다.
1차대전 중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별도 항목 기술을 참조하라.
1920년 세브르 조약 Treaty of Sèvres 에서 협상국 Entente Powers 은 이 도시를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 First Republic of Armenia 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 가 이끄는 터키 혁명가들은 조약을 거부하고 대신 터키 독립 전쟁 Turkish War of Independence 을 벌였다.
그러나 Van을 아르메니아인에게 양도한다는 생각이 제안이 나와 İsmet İnönü는 Van과 Bitlis를 아르메니아에 양도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문제를 두고 1919년 10월 14일 군 장교한테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앙카라 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타협도 거부했다.
결국 1920년 반은 다시 터키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곳에 남아 있던 아르메니아 주민들은 마지막 인종 청소 ethnic cleansing 과정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로잔 조약 Treaty of Lausanne 과 카르스 조약Treaty of Kars으로 세브르 조약은 무효화했고 반은 실질적으로 터키 주권하에 남았다.
분쟁이 끝날 무렵 반Van 마을은 텅 비고 폐허가 되었다.
도시는 전쟁 후 현재 Van Castle(Van Kalesi)로 알려진 고대 성채에서 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재건되었다.
도시는 현재 해발 약 1,750미터(5,741피트)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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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터키 여행] (6) 동부 아나톨리아 반Van과 반 주 Van Provi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