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망성리 기와가마의 또 다른 중요성
저 망성리 일대가 이번에 고려시대 기와가마가 집중으로 출현했지만 그런 양상이 신라시대에도 벌어진다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고려시대 이전에도 저곳은 기와 공장이었다.
꼭 기와만 구웠겠는가?
벽돌도 굽고 다른 도기도 구웠을 것이다.
유의할 점은 저런 대규모 공장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님비 현상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곧 도시계획 구역 안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경주는 신라가 망하면서 현격히 도시구역이 줄어들기는 했겠지만 신라시대에도 저곳에 대규모 기와공장이 있었다 함은 저곳까지는 도시 구역이 침범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도시가 저곳까지 확대하면?
버텨날 재간이 없다.
저 기와가마 또 다른 중요성은 경주 왕경 구역 중에서도 남서쪽 범위를 좁힌다는 점에 있다.
또 하나 저 정도 공장이 운영되었다 함은 그 주변에 도공들 집단 정착촌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 집단 정착촌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그네들이 죽어 간 땅, 곧 무덤도 주변 어딘가에 집중 분포한다.
이 역시 찾아야 한다.
그것까지 아우르는 날 우리는 신라시대 콤비나트 단지 하나를 완성한다.
막 투척하는 경주 망성리 고려 기와가마터 흔적들
https://historylibrary.net/entry/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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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경주 망성리 가마터 13기 확인, 皇龍 글자 새김 기와 확인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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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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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경주 망성리 가마터 13기 확인, 皇龍 글자 새김 기와 확인 경주 망성리 384번지에서 드러난 고려시대 가마터에서 ‘皇龍’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출토함으로써 이 가마에서 생산한 기와가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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