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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막 투척하는 경주 망성리 고려 기와가마터 흔적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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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고려 황룡사 가마는 7킬로미터 지점 망성리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경주 망성리 가마터 13기 확인, 皇龍 글자 새김 기와 확인 경주 망성리 384번지에서 드러난 고려시대 가마터에서 ‘皇龍’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출토함으로써 이 가마에서 생산한 기와가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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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이와 같은 발굴성과가 공개되었거니와 

조사단이 경주 망성리 384번지 고려시대 기와가마터 조사 현장을 일반 공개한 모양이라 

경주를 암약하는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현장을 찾은 바 

오세윤 작가 사진이랑 막찍어 사진의 대명사 이채경 선생 사진들을 투척한다. 

좀 잘 찍은 듯하다는 건 오작가요, 대강 기록용이다 하는 건 이채경 것이다. 

국가유산진흥원 발굴조사단이 단독주택 신축부지 내 국비지원 발굴조사로 확인한 이곳은

황룡사 기준으로 남쪽 7킬로미터 지점이어니와

皇龍(황룡)이라는 글자 새김 고려 기와가 출토함으로써 적어도 고려시대 황룡사 개보수에 사용한 기와는 이 가마에서 구워 조달했음을 드러났다.

다만 우리가 유의할 점은 이곳에서만 그 소요 기와를 제작했는가?

혹은 다른 곳도 동시다발로 운영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에서 생산된 기와가 그곳을 갔음은 분명하고,

나아가 그렇게 생산된 기와가 황룡사로만 갔다는 보장도 없다. 

다른 데도 얼마든 간다.

실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운송 방식.

이는 앞서 내가 분명히 말했듯이 당시 도로사정을 고려할 때 형산강 물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노땅 학예사 출신 이채경은 "100% 형산강 물길을 따라서 배로 실어 날랐을 것이다. 지금은 서천(형산강)의 하상이 토사의 퇴적으로 2~4m 이상 높아져서 배가 다닐 수 없지만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포항 앞바다인 영일만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평저선이 다녔다고 하며 관련 지명이 지금까지도 남아서 전해온다" 했거니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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