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현장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5) 벗기고 또 벗긴 자작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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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벗김을 당한 몽골 노용올(노인울라) 흉노 공동묘지 인근 자작나무. 남들 발굴현장 구경할 때 나는 자작을 벗기고 있었다.

 
경복궁 서남쪽 귀퉁이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있고, 그 사무동으로 통하는 문 앞 정원에 자작나무 두어 그루가 인공 식재된 상태라, 꽤 연식을 자랑하지만 천상 자작나무는 이땅에는 식생이 맞지 아니해서 언제가 그 모양이다. 

한때 이 자작나무를 내가 끊임없이 괴롭힌 적이 있다. 때마다 홀라당 그 껍대기를 벗겨대곤 해서 내가 벗긴 그 자리만큼은 언제나 더 허연 속살을 드러내곤 했다. 이러다 나무가 죽지 않나 싶을 정도로 벗기고 또 벗겼다. 

딴 이유 없었다.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로 쓰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벗기다 보면 그에 대한 무슨 답을 찾겠거니 했더랬다. 

물론 그렇게 벗겨낸 껍질 하나로 종이로 쓰기는 곤란했겠거니와, 이를 어케든 가공하고 짓누르고 짓이기고 눌러 붙여서 튼실한 종이로 썼으리라.

내가 그리 실험할 수는 없고, 그렇게 얇게 벗겨낸 껍데기 안쪽에다가 내가 볼펜이나 다른 필기도구로 글을 써 봤는데, 기름기가 많다지만, 이상하게 아주 또렷하게 글씨가 적혀 내려가 내가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래 이걸 잘만 가공하면 도화지도 쓰고 패엽경도 쓰겠노라 했더랬다. 

그땐 내가 자작나무에 미쳐 있을 때라, 그 무렵 만나는 자작나무라는 자작나무는 모조리 벗기고 또 벗겼다. 

해발 1,400고지 오대산 북대를 오르다 보니 그 정상 부근에 자작나무 두어 그루가 보여 기어이 가시덤불 훔치고 들어가 또 벗겼다. 

수평선생이 안내한 가리왕산 1,500고지를 올라가니 듬성듬성 딱 봐도 박정희 시절 인공식재했을 자작나무 군락이 보여 그에서도 가차운 놈 한 놈 부여잡고 또 벗겼다. 

몽골고원에 가서서 만나는 놈마다 벗겼고,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 왕조시절 말갈 집단 공동묘지 발굴현장 가서도 자작나무가 보이기에 또 벗겼다. 

 

오대산 북대서 벗긴 자작나무



좍좍 벗겼다! 

그 벗기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땐 내가 자작에 미쳐 있을 때였다. 

한편에서는 만나면 벗기고, 한편에서는 한적漢籍을 읽어내려가며 만나는 자작마다 모조리 긁어다가 메모를 할 때였다.

물론 한적에서 자작은 주로 백화白樺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으니, 반드시 자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경에서 보이는 백화, 그리고 여타 북융北戎 계통 민족지에서 보이는 백화는 백퍼 자작이었다. 

그땐 아주 자작으로, 더욱 구체로는 천마총 장니로 뿌리조차 뽑을 기세였다. 

 



아참, 저 오대산 북대암 이야기 나온 김에 오른 그때가 막 여름에 진입한 때였으니 그 여름에도 암자는 끊임없이 군불을 땠으니

그 부엌 한 켠을 보니 노란 종이 박스 안에 곱게 벗겨 말린 자작나무 껍질이 가득이라, 언뜻 볼쏘시개인가 했더니 

보살께 여쭈니 말려 약으로 쓴다 했다는 기억을 남긴다.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4) 황남대총 자작나무 껍띠는 왜 중요한가?
https://historylibrary.net/m/entry/jangni3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4) 황남대총 자작나무 껍띠는 왜 중요한가?

이 자작나무는 한국문화사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라, 무엇보다 그 다기능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개중에서도 제지발달사에서 대서특필하고 호외로 발행해서 현창해야 할 사건이다.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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