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이모저모

고거련, 그 공포정 독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광개토왕비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6. 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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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 김에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찾아보면 꼭 없었다 할 수도 없을런지 모르고, 그에 따라 내 조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광개토왕비는 프로파간다다. 실록을 가장한 프로파간다다.

모든 프로파간다는 그것을 작성한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이 겨냥한 독자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저 가장 기본하는 문제를 역사학은 묻지 않았다. 

단언하지만 단 한 놈도 저 주체 문제와 독자 문제를 묻지 않았다.

물론 조금 선언을 한정하고자 한다. 제대로 혹은 진지하게 말이다. 

단 한 놈도 저 주체와 독자 문제를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

이렇게 치환한다. 

저런 비문은 이데올로기성이 더 농후하기 마련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저 물음을 피할 수 없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저 비문 주체는 누구이며 독자는 누구인가? 이 두 가지를 물어야 한다. 

저 주체 문제와 관련해 한국고대사에서 꽤나 지명도만(명성과는 달리 허섭쓰레기 글만 썼기 때문에 이리 말한다) 있는 어느 중견 역사학도가 장수왕을 들고 나왔으니, 문제의 발표문을 보고선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봐도 이건 김태식의 논문을 염두에 둔 것이라, 그럼에도 그 발표문 어디에도 내 논문은 인용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이런 데 발끈할 필요는 없다. 본래 그런 놈들이요, 내가 그런 일로 죽자사자 매달려야 하는 전업적 연구자도 아닌 까닭에 그래 니들 맘대로 베껴 쳐먹어라 이런 자세로 살았기 때문이다. 

저 광개토왕비문은 간단히 말하면 그 아들 고거련(장수왕)이 지 애비 팔아 지 정치를 선언한 프로파간다다. 

저 비문 처음부터 끝까지 "니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지긴데이" 딱 이거다. 이 논조로 일관한 것이 바로 저 비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향했는가? 이것이 바로 비문의 독자다.

고구려 신민? 웃기고들 자빠졌네. 당시 글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른바 권문세도가들이었다. 이 권문세도가들이 야금야금 고구려 선대왕실 공동묘지 구역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묘지가 야금야금 저들 손에 넘어갔다. 

딱 이거다. 니들 많이 먹었으니 이젠 고마 해라! 더 하마 지기뿐데이! 딱 이거다. 

이를 위해 그 왕통 왕실이 신성하다는 선언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추모 이야기를 꺼냈고, 그에서 비롯해서 유구하게 이어지는 왕통의 절대 신성불가침성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왜 고거련은 아버지 고담덕을 팔았는가? 아버지가 좀 있어 뵈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아들은 아버지가 변변찮으면 아버지를 버린다. 심지어 아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선 새 아버지로 하늘을 갖다 놓는다.

심지어 동물을 갖다놓기도 하는데, 이 경우 동아시아가 선호한 동물이 용이다. 용의 자식, 있어 보이잖아? 그가 흘리는 눈물은 용의 눈물이 되니깐 더 있어 보이잖아? 용의 자식이라 목덜미에 비늘도 있다는데, 뭐 실제 비늘이겠어? 목욕 하지 않아 생긴 비듬이지? 

반면 아버지가 좀 있어 뵈면 얘기가 달라진다. 똥개도 자기 집 마당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이런 아비 할아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거련은 그런 잘난 아버지 자식이었다. 

그렇다면 하필 저 시점에 고거련은 저런 프로파간다를 들고 나왔는가?

그때가 친정을 개시하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고거련은 아비가 죽었을 때는 아마도 친정은 하지 못하고 엄마나 할머니가 수렴청정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로선 다행인 점은 그런 치맛폭 장사가 일찍 끝났다는 사실이다. 

3년 탈상과 맞물려 마침내 장막을 걷고선 용상에 앉아 신하들을 마주하게 된 고거련이 그 시점에 들고 나온 프로파간다가 바로 저 비문이다. 

따라서 저 비문은 광개토왕비가 아니라 장수왕비다!

저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고담덕의 영웅적 활약상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제 갓 취임한 아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다. 

저 비문 읽어보면, 내가 당시 그의 신하였다고 생각할 적에 간담이 서늘하지 않는가? 난 이 간담을 본다. 

저 비문은 실은 고거련 독재정, 공포정의 서막을 알리는 위대한 신호탄이었다. 
 
광개토왕비는 왜 처절한 사료비판을 피해 갔는가?
https://historylibrary.net/entry/bimun

광개토왕비는 왜 처절한 사료비판을 피해 갔는가?

간단하다. 그에서 민족의 영광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그 침략주의 팽창이야말로 우리가 이상이며,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주눅들고 쪽팔리기만 한 한국사 굴욕의 한 줄기

historylibrary.net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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