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숙-석품의 난] (2) 땔감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신라 진평왕 시대가 말년에 접어든 그 재위 53년, 서기 631년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주도한 반란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모의되었음을 앞서 살폈거니와,
이제 우리는 사전 모의 과정에서 발각되어 일망타진된 이 난의 전개, 혹은 수습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신라시대 경제사 한 단면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바로 땔감 조달 문제다.
이 땔감이 인류문화생활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긴 적이 별로 없다.
고고학계에서 숯가마 운운하며 떠드는 꼴을 봤지만, 팠더니 숯가마 나왔다,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보고 수준에 머물 뿐이라, 그걸로는 택도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절대의 전제로 나는 아래 백거이 시를 들거니와, 이 시에서 말하는 바로 그것이 바로 저 시대, 곧 진평왕 시대 신라를 관통하며, 더욱 구체로는 그것이 바로 신라 왕경의 최핵심 계림이 살아가는 작동의 일방식이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하겠다.
매탄옹賣炭翁, 날이 추워지길 기다리는 할배 숯장사
매탄옹賣炭翁, 날이 추워지길 기다리는 할배 숯장사
Nimby (Not In My Backyard) 는 인류 역사를 관통한다. 근래의 현상이라고 간주하기도 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아래는 숯을 구워 파는 사람을 노래한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772~846) 신악부新樂府 매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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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삼국사기 진평왕본기 53년(631) 해당 대목 기술 중 저 나무꾼 관련은 다음과 같다.
아찬 석품은 도망쳐서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자식이 보고 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까지 돌아와서는 한 나무꾼을 만나 자기 옷을 벗고[아마 그것을 나무꾼한테 주었을 것이다] 해진 나무꾼 옷으로 갈아입고선 나무를 지고서 몰래 (경주 자기)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물론 이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저 백거이 시를 고려할 적에, 저것이 신라가 생활에 필요한 땔감을 생산 소비 유통하는 시스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본다.
유의할 점은 저 반란 모의 사건이 발각된 시점이 여름 5월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여름철에 생나무를 조달한다? 나무 하는 사람도 힘들고, 그것을 운반하는 사람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 계절을 고려할 때 저때 조달한 땔감은 숯으로 봐야지 않을까 싶다.
숯이어야 지고 그나마 지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겨울에 미리 장만한 마른 장작일 것이다.
훗날 이른바 북학자 실학자라는 박제가가 조선은 수레를 왜 사용하지 않느냐 개설레발을 쳤으나, 도로도 없는데 자동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발상과 하등 다를 바 없으니, 저 신라시대라 해서 다를 바 없어, 그 운송수단은 지게였고 당나귀였다.
저 석품의 반란은 땔감이라는 차원에서도 파야 하며, 그것을 백거이 시를 버무릴 때 비로소 생명력이 움튼다.
그건 그렇고 왜 굳이 석품은 나무꾼을 가장했을까?
나아가 그가 백제로 탈출하고자 선택한 통로 해명에 총산叢山이 키를 쥐었는데, 저게 아마 삼국사기에는 미상지분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모르겠거니와, 어디로 탈출하려 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칠숙을 꼬드긴 석품石品, 진평왕 말년 신라를 뒤흔든 쿠데타 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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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숙을 꼬드긴 석품石品, 진평왕 말년 신라를 뒤흔든 쿠데타 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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