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왕조 제26대 군주 김진평金眞平은 재위 기간이 아주 길어 이걸로만 본다면 창건주 혁거세의 60년을 뒤이어 두번째인 54년(만 53년)에 달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의 탄생 시점이 보이지 아니하나, 화랑세기에는 13살에 즉위했다고 못박았으니, 이게 맞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으니, 할아버지 김진흥金眞興이 그러했듯이, 18살 성년이 되기까지는 즉위 초창기에는 엄마 만호萬呼 태후가 섭정했다.
그래 맞다 그 만호 태후 말이다.
김서현과 바람이 난 자기 딸 만명萬明을 용납하지 못해 끝까지 둘을 괴롭혔다는 그 마귀 할멈 말이다.
이 마귀 할멈 감시를 뚫고서 둘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이루니 그가 바로 삼한의 영걸英傑 김유신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지만, 왕위에만 54년?
그리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에서 저리 오래 재위한 것을 보면 탱자탱자하며 적당히 농땡이도 부리며 보신을 잘했음에 틀림없다 하겠다.
삼국사기 혹은 삼국유사를 보면 김진평은 기골이 장대했음에 틀림없는데 이런 거인들이 보통 요절하는데 좀 특이 체질 아니었나 싶다.
순탄한 왕노릇을 하며 신라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진평은 노년에 이르면서 심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후사가 끊어지게 생긴 것이다.
이런저런 여성과 숱한 염문을 뿌렸지만, 끝내 적통 아들을 두지 못했고, 그렇다고 당시 신라 사회가 현재 왕이 아니라 해도 성골의 조건을 갖춘 왕자면 조카건 손자뻘이건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지마는, 진평한테는 국반과 백반이라는 적통 남동생 둘이 있었지마는 뿔싸, 이들도 적통 왕자를 두지 못했다.
이제 성골 왕은 씨가 마를 즈음, 이런 불안정한 왕위 계승 분란을 틈타 반란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그 진원지는 이찬 칠숙柒宿이었다.
이찬伊飡은 모두 17 품계로 나뉜 신라 관품官品 시스템에서 이벌찬 바로 아래 제2등의 최고위직으로, 솔까 관품이 5등 대아찬이 되면, 품계는 의미가 없었다.
대아찬 이상이면 다 장관이요 다 재상으로 분류되었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1등 2등 3등은 대체로 나이 순서, 혹은 아버지 혈통에 따를 뿐이었다.
그런 최고위 재상 칠숙이 움직였으니, 이 반란의 기운은 자못 여파가 컸다.
그 여파에 견주어 삼국사기 진평왕본기 53년(631) 해당 대목 기술은 밋밋하기만 하거니와 이에서 이르기를
(이해) 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 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을 쳐서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자식이 보고 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까지 돌아와서는 한 나무꾼을 만나 자기 옷을 벗고[아마 그것을 나무꾼한테 주었을 것이다] 해진 나무꾼 옷으로 갈아입고선 나무를 지고서 몰래 (경주 자기)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이를 통해 이 반란은 발발 이전에 발각이 되어 일망타진되었음을 본다.
이 사건으로 처단된 사람으로서는 그 주모자로 칠숙과 석품 두 사람만 언급하지만, 저런 반란에 어찌 꼴랑 둘이서만 처단되고 말겠는가?
모르긴 해도 수십 명은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저 두 사람만 적기되었을까?
주모자기 때문이다.
이건 익히 내가 여러 번 지적했듯이 계급이 높은 놈과 중간급 주모자가 반란자가 등장하면 실제 기획자는 그 웃대가리가 아니라 그 중간급 주모자다!
예컨대 어떤 장군이 쿠테타를 일으킨다 했을 적에 그 장군이 명목상 수괴지만, 실제 그것을 주도하는 조직행동책은 영관급 아니면 대위급이다.
저 칠숙의 난이 딱 저렇다.
틀림없이 저 반란은 석품이라는 자가 칠숙을 꼬드겨 일으키려 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석품으로서는 일대 도박이었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쿠데타가 성공했더래면 세상은 이제 석품 발 아래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 ALL or Nothing 게임에서 석품은 패배했다.
그렇다면 왜 석품은 칠숙을 명목상 쿠데타 지도자로 옹립했을까?
저 짧은 신라본기 논급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발발 시점이 진평왕 재위 말년이요, 그 본질을 반란이라 했으니, 차기 왕위 계승 전쟁이었음에 틀림없고, 석품은 칠숙을 차기 왕위로 점찍었음에 틀림없다.

이 반란이 화랑세기에도 보이기는 하지마는 틀림없이 원본 화랑세기에는 더 자세한 내용이 있었겠으나 지금 남은 화랑세기는 누더기 축약본이라 그 누더기 화랑세기 판본에는 그냥 칠숙의 난이 있었다는 논급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자세한 사정을 알 길이 없다.
다만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별도 계보도가 남당 박창화 문건에는 있으니 그 표지엔 상장돈장上狀敦牂이라 썼다.
이 상장돈장은 필사자 남당 박창화가 필사한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1931년인가? 32년일 것이다.
제번하고 이 상장돈장 족도族圖를 보면 칠숙이 놀랍게도 진흥왕의 서자다!
이를 통해 우리는 칠숙이 저 쿠데타를 통해 무엇을 획책하려 했는지 비로소 명쾌히 해명한다.
칠숙은 어차피 적통 왕손이 사라진 마당에 이젠 그 왕통이 자신한테 있다고 생각한 것이며 이 심리를 그의 측근 석품이 알고선 반란을 부추기며 파고든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었는데?
암튼 지금껏 이야기는 번외 판이었다.
본판은 회를 바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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