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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르느냐 묻지 마라. 

낸들 뭘 알아서 가겠는가?

언덕 있으니 오르려는 것일뿐, 

강물 나타나면 건널 것이요, 

막아서면 돌아서면 그뿐. 

올라 무엇이 보이느냐 나는 모른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허무하기 때문이라고만 해둔다. 


〈 HULTON ARCHIVE/GETTY IMAGES 〉 


죽을 때가 다 된 킹 리어 King LEAR, 아들 없이 딸만 셋을 둔 그가 딸들을 불러다 놓고 충성 경쟁을 즐긴다. 묻는다. 


"너희는 얼마나 아비인 나를 사랑하느냐. 날 사랑하는 딸한테 내 왕국 3분의 2를 주겠노라"


첫째와 둘째는 갖은 아양으로 아버지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 막내 코딜리아 차례가 되자 킹 리어는 묻는다. 


What can you say to draw 

A third more opulent than your sisters? Speak.


이런 물음 뒤에 이어지는 대화


CORDELIA : Nothing, my lord.


LEAR : Nothing?


CORDELIA : Nothing.


LEAR : How?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Speak again.


CORDELIA : Unhappy that I am, I cannot heave

My heart into my mouth. I love your majesty

According to my bond, no more nor less.


LEAR : How, how, Cordelia? Mend your speech a little,

Lest you may mar your fortunes.


"없어?"

"없어요"

"없다카마 암것도 안줄끼데이?"

"천륜이 명한 아버지와 딸,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사와요"

"니 한번 더 기회준데이. 말 잘해레이. 다시 한분만 말해바레이. 니 얼매나 아부지 사랑하노?"


어째 막장 드라마 같은 분위기다. 결론은 말 안해도 짐작 가능하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하는 자, 그가 바로 독재자며, 그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이다.  


지난 주말 연천 지질답사 중 재인폭포 가는 길목에 만난 두릅이다. 이 산골에도 이리 피기 시작했으니, 고향 김천 눈두렁에 엄마가 심은 두릅들도 한창이겠다 싶었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두릅은 별미다. 두릅이 지구상 어떤 식생대에 자생하는지 알 수는 없고, 또 그 새순을 따서 각종 방식으로 요리해서 먹는 다른 민족이 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이 두릅은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서, 비슷한 식재료를 제공하는 엄나무와 더불어 봄맛을 돋구는 일등공신이다. 



어제 출타했다 돌아오니, 부엌에 두릅이 한가득이다. 보나마나 엄마가 따서 보냈으리라 싶었다. 내가 두릅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 무렵이면 나는 두릅을 따러, 겸사겸사 김천을 간다. 마침 그 두릅밭 곁엔 아버지 산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가지를 못하고 말았다. 


두릅은 번식력이 엄청나서, 논누렁에 심은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온 논두렁을 두릅 밀림으로 만든다. 두릅은 또 대강 심어도 쉬 고사하지 않는 까닭에, 대체로 산 같은 데서 캐다가 심어도 잘 자란다. 우리집 논두렁 두릅은 몇년 되지 않아 작젼인가에는 베어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두릅은 생으로 고추장 같은 데 찍어 먹어도 좋지만, 조금 억세지면 제맛을 즐기긴 힘드니, 데치거나, 아니면 밥솥에다가 얹어 찌고 나서 재가공해서 먹기도 하니, 김천에서 택배로 막 도착한 두릅들을 장모님이 다듬고, 또 삶았다. 



두릅은 대개 두 번 정도 딴다. 갓 오른 새순이 가장 맛이 나지만, 한번 정도는 더 따니, 더 억세기 마련이다. 여름철에도 곁가지에 난 순을 따서 먹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미 그 무렵이면, 두릅이 주는 색감은 달라져, 이렇다 할 별미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를 장아치로 담기도 하는 모양인데, 내 고향에서는 그런 요리를 거의 만난 적 없다. 그날 따서 그날 먹어버린다. 



마파람 게눈 감추듯 두릅이 사라졌다. 내 뱃속으로 열반한 것이다. 아마 며칠간은 두릅 성찬이리라.



거실 한 구석에 중앙일보 깔고 누운 꼬다리 한 가득이라, 이게 무엇이냐 살폈더니, 두릅 꼬다리였다. 약으로 쓰나? 

아무튼 두릅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모양이다.


  1. 보미 2018.04.22 17:28 신고

    두릅 맛있겠네요. 양념장에 찍어먹으면 건강한 한끼~~



그 자신 참말로 파란(波瀾)이 만장(萬丈)한 삶을 산 중국 북제(北齊) 안지추(顔之推·531~591)라는 사람이 남긴 不朽한 책으로 《안씨가훈(顔氏家訓)》이 있으니, 내가 이 책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상찬(賞讚)을 거듭한 바 있거니와, 이곳 '치가(治家)' 편에 실린 다음 한 토막 이야기는 흡사 작금 한국 사회 일단면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낼 정도다. 다름 아닌 고부간 갈등을 다루었으니, 그 옮김과 원문은 아래와 같다.


부인은 본래 성질이 대체로 사위는 싸고돌되 며느리는 학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위를 싸고돌면 형제(처남)에게서는 그 사위를 원망함이 싹트고, 며느리를 학대하면 자매(시누이)들의 고자질이 횡행하게 되니 이렇게 되면 여자는 출가하든 안 하든 모두가 그 집안에 죄를 얻게 되니 어미야말로 실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셈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속담에 “늙은 시어미는 잔소리를 반찬삼아 먹는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는 바로 그에 부합하는 말이다. 가정마다 있는 폐단이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婦人之性, 率寵子壻而虐兒婦. 寵壻, 則兄弟之怨生焉; 虐婦, 則姊妹之讒行焉. 然則女之行留, 皆得罪於其家者, 母實爲之. 至有諺云: 「落索阿姑餐.」 此其相報也. 家之常弊, 可不誡哉!


이 《안씨가훈》 역본으로 나는 도합 3종을 갖고 있으니, 유동환 옮김, 홍익출판사 판(1999)을 필두로 임동석 옮김 고즈윈 판(2005)을 거쳐 김종완 옮김 푸른역사 판(2007)이 그것이다. 이들 역본을 대강 훑어본 결과 김종완은 유동환 판을 많이 참조하지 않았냐 하는 느낌을 주며, 임동석 역주본 또한 그 참고문헌에 유동환을 들었듯이 선행 역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다만 맨 마지막으로 나온 김종완 역본은 당시에도 내가 참말로 의아했던 것이 이들 두 가지 선행하는 국내 역본(유동환 역본에는 축약이 있다), 혹은 완역 역주본이 있음에도 전혀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니, 그 뒤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심리, 혹은 강박이 작동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가 참말로 알고 싶다.


김종완이 유동환을 많이 참조했다는 사실은 위에 든 예화의 번역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거니와, 문제가 되는 부분은 ‘落索阿姑餐. 此其相報也’라는 구절에 대한 번역이다. 김종완은 유동환과 마찬가지로 이 대목을 “시어머니는 잔소리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다. 바로 여기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고 했다는 것이 그 증좌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대해 임동석 번역은 판이하게 달라 “심지어 속담에 ‘늙은 시어미는 찬밥 신세’라 하였으니, 이는 바로 그에 상응한 보답인 것이다”고 옮겼으니, 이 대목이 《안씨가훈》의 해당 조목 주제와도 너무나 밀접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동환, 김종완을 따르느냐(혹은 그렇게 이해하느냐), 임동석을 따르냐에 따라 전체 문맥도 완전히 변화한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이해 중에 어느 것이 타당한가? 나로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다만, 유동환과 김종완 옮김이 상대적으로 비약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니, 그 ‘落索阿姑餐’ 말 자체에는 잔소리를 반찬삼아 먹는다는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阿姑’가 위진남북조시대에 자주 보이는 시어미에 해당하는 말임은 분명하지만 어찌하여 저 말이 저렇게 해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위 조목 이야기는 작금에는 중국보다는 이 대한민국에서 열렬한 찬사를 얻으내리라는 점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아! 고부간 갈등, 그것은 본능인가? 


(첨부사진은 고부간 갈등을 다뤘다는 'B급 며느리' 영화 포스터라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본 적 없다) 



<인터뷰> 中 저장대학 교수 임용 조민주 박사


中 저장대학 교수 임용 조민주 박사
中 저장대학 교수 임용 조민주 박사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중국의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를 강의하는 한국인 조민주(35) 박사. 조 박사는 1997년 덕성여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주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으나 약 9년에 이르는 영국과 중국 유학생활을 거쳐 마침내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소재하는 중국의 저명한 저장대학 미술사 담당 교수로 정착했다. 2012.2.8 scoop@yna.co.kr

"컴퓨터에서 미술사로 전향..한중 문화가교 역할 하고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중국미술 중에서도 회화가 주된 연구 분야인 조민주(35) 박사는 1997년 덕성여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주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다. 그 자신도 그 이전까지는 자연과학 분야에 무척이나 흥미를 보였다.

"고향 온양과 천안에서 초중고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저 자신이 이성적, 논리적인 것을 좋아해 '이과 지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사를 만나면서 제 인생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바뀐 진로가 약 9년에 이르는 영국과 중국 유학생활을 거쳐 마침내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소재하는 중국의 저명한 저장대학 미술사 담당 교수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을 대표하는 명문 칭화대학 미술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난해 6월, 우리의 조교수에 해당하는 '강사'에 임용된 것이다. 중국의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를 강의하는 한국인 교수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귀국한 조 교수는 8일 연합뉴스와 만나 "(교수 임용에) 여러 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학교측에서는 영국 유학 경력도 중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대학 또한 한국과 비슷하게 최근 들어 영어권 유학 경력과 영어 구사력을 높이 친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2006년 칭화대로 옮겨 박사과정을 밟기 전에는 영국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학 스쿨(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덕성여대를 졸업한 2002년, 졸업식을 앞두고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는 런던대학에서 북송시대 문인화가인 왕선(王詵)의 산수화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中 저장대학 교수 임용 조민주 박사
中 저장대학 교수 임용 조민주 박사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중국의 대학에서 중국 미술사를 강의하는 한국인 조민주(35) 박사. 조 박사는 1997년 덕성여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주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으나 약 9년에 이르는 영국과 중국 유학생활을 거쳐 마침내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소재하는 중국의 저명한 저장대학 미술사 담당 교수로 정착했다. 2012.2.8 scoop@yna.co.kr
"당시 SOAS에는 중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같은 중화권 학생도 많았습니다. 그들에 비해 한국인인 저는 경쟁력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한 번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 유학을 결심하고는 영국에서 디플로마(diploma) 코스라 해서 박사과정 준비생활을 1년 더 하면서 고대 한어(漢語)와 현대 중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5년 마침내 베이징으로 간 조 교수는 이곳 베이징대학에서 다시 영국의 디플로마 과정과 비슷한 진수(進修)과정을 1년 더 밟은 뒤인 이듬해 칭화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지난해 마침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주제는 '청대(淸代) 수문지지(水文地志) 풍경화와 지도 제작과의 관계'.

조 교수는 "청나라 시대 회화 중에는 북경과 항주를 연결하는 경항운하(京杭運河) 같은 운하라든가 강물 주변을 실경산수화로 그린 그림이 제법 많으며, 이런 그림을 내가 수문지지(水文地志)라고 명명했다"면서 "지도 전문 제작자가 없던 그 시대에 화가들이 그런(지도 제작)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박사논문을 통해) 구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연과학을 동경한 그가 미술사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로 조 교수는 덕성여대 재학 시절 복수전공으로 미술사를 선택하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가 입학하자마자 마침 미술사학과에서 최성은·이송란 교수가 막 인도미술이나 불교조각, 중앙아시아 미술, 스키타이 미술과 같은 강의를 개설했는데, 이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장대학 미술사 교수로서 포부에 대해 조 교수는 "지금까지는 주로 중국 회화만 했지만 이제는 한중 문화교류사에로도 관심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면서 "그것이 결국 두 나라 사이에 놓인 문화가교를 확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2/08 06:00 송고


<미술사연구 교류에 힘쓰는 中중앙미술학원 오영민 교수>

2009년 임용…"중국학생들 한국문화 관심 고취에 보람"

"중국내 한국미술사 자료 발굴 정리에 주력하고파"


(항저우=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주상하이한국문화원(원장 김진곤)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저장대학이 16일 이 대학에서 개최한 '조선시기(1392~1910) 미술과 그 과학정신' 학술대회 참가자에는 중국 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강의하는 한국 출신 30대 젊은 여교수 2명이 포함됐다.

주최 측인 저장대학 미술사학과 조민주 교수와 더불어 오영민(吳映玟·36) 베이징 소재 중국 중앙미술학원 인문학원 미술사학과 교수가 주인공.

오 교수는 주상하이총영사관과 항저우시인민정부가 개최하는 제1회 '항저우 한국문화예술주간' 일환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 중국 원나라 말~명나라 초기 저명한 산수화가인 예찬(倪瓚)이 조선 중·후기 화단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예찬은 허균이 관심을 보인 이래 심사성과 강세황, 정선, 그리고 김정희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오영민 교수
오영민 교수

한남대 회화과 출신인 오 교수는 명·청 판화와 조선후기 회화의 관계를 탐구한 논문으로 2006년 2월 대만사범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대륙으로 넘어가 2009년 6월에는 중앙미술학원에서 조선 진경과 중국 회화를 비교한 박사학위를 땄다. 박사학위 취득과 더불어 곧바로 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가 이 대학에서 자리잡고서 국제교류재단 지원을 받아 안휘준(현 서울대 명예교수)·김리나(현 홍익대 명예교수)·정양모(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선생님 같은 저명한 우리 미술사학자들을 모셔서 특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속적인 재단 지원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지금은 SK 지원으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한국으로 보낸 대학원생은 현재 3명. 석사 과정 2명에 박사과정 1명. 이들은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미술사를 본격적으로 공부 중이다.

중국의 저명한 미술 전문대학인 중앙미술학원에 외국 미술사가 개설되기는 인도와 일본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라고 한다.

오 교수는 "다른 분야나 마찬가지로 미술사 분야에서도 중국인의 자의식이 굉장히 강하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국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미술사 연구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영민 교수
오영민 교수

하지만 중국미술을 객관화하려면 무엇보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이웃 문화권의 미술사 연구, 혹은 그것과의 비교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런 연구가 중국미술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 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는 보람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미술, 혹은 이를 고리로 하는 한국문화에 대한 중국학생들의 관심이 커진 점"을 들었다.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대학원생들도 그런 관심이 고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오 교수는 최근에는 비단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닌 다른 전공 학생이라고 해도, 한국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 2주마다 한번 한국미술사 연구 모임도 개최 중이다.

중국인과 결혼한 오 교수가 특히 주력하고자 하는 분야는 중국 내 한국미술 자료의 발굴이다.

"중국미술품이 조선으로만 일방적으로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무수한 조선의 미술품이 중국으로 건너간 것이 명백히 기록으로도 많이 남았지만 아직 그 실체를 보여줄 만한 실물 자료가 중국에서 많이 발견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내서 정리하고 소개했으면 합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4/10/16 11:35 송고

<피아차 델 포폴로 Piazza del Popolo> 


로마를 연고지로 하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 명문클럽 AS 로마가 2017-18 챔피언스리그 준준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거함 바르셀로나를 기적 같이 따돌리고 준결승에 진출하자, 그에 흥분한 AS 로마 미국인 구단주 제임스 팰로타(James Pallotta)가 로마 구심 북부 중심을 차지하는 광장인 피아차 델 포폴로(Piazza del Popolo) 분수대에 뛰어드는 쇼맨쉽을 연출했다. 


단판 경기인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홈앤드어웨이로 승자를 가리는 이번 대결에서 로마는 1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1-4로 대패를 당해 패색이 짙었다. 홈 경기에서 네 골차 이상으로 이기거나, 아니면 3-0으로 이기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양팀간 소위 객관적 전력을 볼 적에 AS 로마가 바르셀로나의 벽을 넘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홈 경기에서 AS 로마는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3-0으로 이겼다. 이로써 두 경기 합산 4-4 동률을 이뤘지만, 원정경기 다득점 승자승 원칙에 따라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한 골을 넣은 AS 로마가 극적인 준결승행을 확정한 것이다. 


과거 세계 클럽 축구를 압도한 세리아 A는 근자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버티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든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에도 순위가 뒤지고, 프랑스 리그앙과 포르투갈 Superliga에도 바짝 쫓기는 신세다. 비록 유벤투스가 고군분투하지만, 이제는 변방 취급받는 것도 엄혹한 현실이다. 


<피아차 델 포폴로 Piazza del Popolo> 


이런 세리아A에서도 AS 로마는 2017-18년 리그가 막바지로 치닫는 13일 현재 순위가 4위에 지나지 않는다. 유벤투스와 SSC 나폴리가 각각 승점 81점과 77점으로 저 위로 달아난 데다, 프랜차이즈 라이벌 라치오와는 승점(60점)은 같으나, 골득실에서 밀린 상태다. 


그런 AS 로마가 거함 바르셀로나를 격침했으니 이 얼마나 아니 기쁘겠는가? 내가 그 자리 있지는 않았지만, 이날 로마 시내는 승리를 축하하는 자동차 경적 소리로 난리가 났을 것이라, 구단주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피아차 델 포폴로(Piazza del Popolo) 오벨리스크>


기쁨에 겨워 로마 시민들이 지켜보며 환호하는 가운데 분수대로 뛰어들었다. 아래 링크가 그가 분수대에 뛰어드는 장면을 누군가 촬영한 것이다.  


https://www.cbssports.com/soccer/news/barcelona-champions-league-upset-made-romas-american-owner-jump-into-a-fountain-resulting-in-a-fine/


아래 첨부지도에서 확인하면 뚜렷이 드러나겠지만 델 포폴로 광장은 로마 시내 북쪽 중앙이라, 하늘에서 그 위치를 견주건대 북극성과 같아 이를 중심으로 로마 시내 곳곳으로 통하는 도로가 방사선으로 퍼져 나간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ED%8F%AC%ED%8F%B4%EB%A1%9C+%EA%B4%91%EC%9E%A5/@41.9039599,12.4760075,15z/data=!4m5!3m4!1s0x132f60f8e5e81687:0x43ee9ffffdce4350!8m2!3d41.9107038!4d12.4763579


<피아차 델 포폴로(Piazza del Popolo) 분수대> 


그가 뛰어들었다는 분수대가 어딘가 궁금해 그 동영상을 토대로 하고, 내가 지난해 촬영한 포폴로 광장 사진들로 대조했더니 바로 아래 사진이 첨부하는 분수대였다. 아쉽게도 분수대만을 세부촬영한 장면은 없고 광장 전경을 담은 사진 중 분수대 부분만을 떼어 확대한 것이다. 



저 네 귀퉁이 분수대 중 한 군데를 AS 로마 구단주가 뛰어든 것이다. 이 일로 구단주는 벌금 $600을 부과받게 되었다는데....껌값 아니겠는가? 나 같았으면 아주 발가벗고 말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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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encounter Islamic architectures in Seoul sometimes
Here is the Embassy of the Sultanate of Oman Republic of Korea-Seoul

<lilac> 


The Waste Land

  in 1922 by T. S. Eliot (1888–1965) 


I.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5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Summer sur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10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Bin gar keine Russin, stamm’ aus Litauen, echt deutsch. 

And when we were children, staying at the archduke’s, 

My cousin’s, he took me out on a sled, 

And I was frightened. He said, Marie, 15

Marie, hold on tight. And down we went. 

In the mountains, there you feel free. 

I read, much of the night, and go south in the winter.


<하필....>


황무지 

1922년 T. S. Eliot (1888–1965) 


I.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깨어나게 하고, 

회한과 욕망을 뒤섞이게 하며, 

잠든 뿌리는 봄비로 일깨우네. 

겨울은 우릴 따뜻하게 했지. 

대지는 망각의 눈에 덮이고 

작은 생명은 메마른 뿌리줄기가 먹여살렸지. 

여름은 우릴 놀라게 했어. 

슈타른베르게르 호수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왔으니 말이야. 우린 회랑에서 멈추고는 

볕이 나는 곳으로 나아가 호프가르텐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는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어

Bin gar keine Russin, stamm’ aus Litauen, echt deutsch.

그러고 말이야 우리가 어릴 적 대공(大公) 댁에, 

내 사촌집에 머물 때면, 그가 나를 썰매에 태워 데리고 나가면 

나는 놀라곤 했단 말이야. 그가 말했지. 마리야, 

마리야, 꽉 잡으렴. 그러곤 우린 아래로 달려갔어, 

산들 사이로, 우린 그곳에서 자유로웠지. 

난 그날밤 태반은 독서를 했어, 그리곤 겨울엔 남쪽으로 갔어.




요저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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