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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 제국주의라면 총칼과 가톨릭 신부 혹은 개신교 목사를 앞세운 침략과 약탈이 무기였다면 지금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제국주의를 제창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우리는 인정하기 못내 싫을지 모르나 과거 제국주의 팽창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물관으로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무척이나 높다. 루브르 브리티시 뮤지엄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 피식민을 경험한 국가 박물관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국 문화의 영광을 포장하기 마련인데 그런 까닭에 내셔널리즘 색채가 유난히 짙거니와 이를 웅변하는 곳이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그리고 중국의 모든 박물관이다. 


도쿄국립박물관



동경국립박물관 부속 건물 중엔 동양관이 있다. 말이 동양관이지 아시안 갤러리만 표방하지 않아 이곳엔 이집트실이 있다. 동양관이니 중국실 인도실 중앙아시아실 그리고 한국실도 있다. 한데 이중에서 가장 초라하고 가장 볼품없는 곳이 한국실이다. 전시품은 초라하기 짝이 없어 도자기만 해도 요강단지 같은 유물에 유기그릇 몇 점이 전부다. 이런 곳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유물이 반드시 들어가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말한 내셔널리즘 경계 정신과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유독 한국실만 왜 이 꼴이 벌어지는가는 생각할 대목이 있다. 저네들이라고 저 따위 유물만 전시하고 싶겠는가? 실제 저보다 훨씬 뽀대나는 유물이 적지 않음에도 전시품 꼬라지를 보면 화딱지가 난다. 왜 저런가?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의 중국실



뽀대 나는 유물 전시하기가 무섭게 약탈문화재 환수를 외치는 자들이 들이닥쳐 내놓으라 겁박하기 일쑤다.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전시 저들이라고 할 맛이 나겠는가? 이런 논란에 휘말린 유물들이 슬그머니 다 전시장에서 사라졌다. 나는 기왕 한국실이 존재하는 한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 중 뽀대나는 것들 골라 정기적으로 대여해 교체전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져오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는 우리 생각을 개조해야 한다. 과거의 약탈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 역시 우리것만 자랑하는 나찌즘에서 탈피해 우리가 자랑하는 것만큼의 문화가 다른 지역에도 있었음을 대한민국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일본고대문화...우리가 다 준 것으로 알고, 또 그리 선전하나 실상과는 전연 딴판이다. 죠몽 야요이 도기 봐라. 고분시대 유물 봐라. 황남대총 부럽지 않은 유물들이다. 불교? 백제에서 줬다고? 그걸로 저들이 구가한 불교문화 설명 못 한다. 


저 정수를 제대로 맛보게 해야 한다. 비단 일본 중국 뿐이랴? 새로운 제국주의는 박물관을 개혁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 국립박물관 부억데기로 전락한 아시아관은 세계 문명관으로 독립해야 한다. 우리가 빌려주고 우리가 대여해야 한다. 거죽데기 몇개 갖다 놓고는 이게 일본 문화요 중국문화요 인도 문화라는 사기 그만 쳐야 한다. 


*** 이상은 3년 전 오늘, 2015년 10월 22일, 내 페이스북 계정 포스팅으로, 그 무렵 나는 도쿄에 있었다. 

저에서 말한 환수운동 말이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말에 고려건국 1100주년 맞아 대고려전 준비하면서 일본이 소장한 고려 관련 유물을 대여하려 했더니, 한국정부가 반환을 보증해야 한다는 문서를 요청해서 난항을 겪는 중이다. 대마도에서 한국 도둑놈들이 강탈한 문화재를 한국정부가 반환하지 않는 데다, 걸핏하면 약탈해간 것이니 내놓으라 겁박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1. 연건동거사 2018.10.22 16:38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2. 아파트담보 2018.10.22 20:20 신고

    일본 중국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앞을 다투어 자기 유물을 내놓는 것과 비교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유사한 현상이나 한국관이 초라한 이유는 반환이나 왜곡보다는 막상 내놓을게 없거나, 한국 정부의 상대적 무관심, 무감각 때문이 아닐까 싶던데 말이죠.

내친 김에 이것도 하나 연장한다. 

대학박물관은 작금 고사 직전이며 실제 많은 대학 현장에서 박물관은 죽었다. 

어느 대학은 올들어 아예 문을 닫았다 한다. 

대학박물관을 살릴 길은 없는가?

종래 4년대 종합대학 개설 기준에는 박물관이 포함되어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난망인 시대가 되었다.

박물관이 죽었다는 말은 박물관이 살았었다는 말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박물관은 어떻게 살았다는 진단을 전제로 이 대학 박물관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박물관이 산 이유는 제반 경비를 자체 조달했고, 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 수익기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유명한 사례는 서울대박물관이다. 

이 서울대박물관이 내 기억으로는 80년대까지 굵직한 발굴현장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수익이 엄청났다. 

그때는 회계처리가 개판인 시절이라, 발굴비가 기관이 아니라 교수 개인 통장으로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집행이 어떻게 되는지는 감사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다. 

물론 모든 경비가 그리 처리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80년대인가 아니면 90년대 초반인가 언제 서울대 산하 기관별 수익구조 통계를 낸 적이 있는데 박물관이 몇 손가락 안에 꼽힌 적이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시절까지 고고학 관련 전공을 개설하고 발굴을 한 상당수 대학의

박물관이 이러했을 것이다. 

호시절이었다. 

물론 그 호시절은 대학 당국과 몇몇 대학교수놈들 얘기였고, 그에 수많은 희생이 따랐으니, 주로 조교와 대학원생, 그리고 학부생들의 눈물겨운 무료 노력 봉사라는 피를 대가로 한 것이었다. 

그 혜택이 학생들한테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노역을 시킨 것이다. 

이는 일제 강제징용보다 더 참혹했다. 

일제 강제징용은 임금이라도 지불했고(물론 태평양전쟁말기에는 하지 않은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보험까지 들었으니, 그런 혜택이 전연 없는 한국의 발굴현장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박물관이 산 시대는 이때였다.

나는 대학박물관을 섣불리 살리겠다 해서 저 시대로 돌아가는 그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 하긴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시대다.

그렇다면 대학박물관을 살려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왜? 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박물관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만이 난무하지, 왜 살려야 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why라는 물음에서 언제나 how가 출발해야 한다.

(투비 컨디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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