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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을 논점이라 할 수도 있고, 좀 더 거창하게는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을 겨냥한 무수한 비난 중 하나가 이 신문 저 신문 같은 내용이라 하는데, 이는 피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더 정확히는 같은 주제 같은 사안을 다룰 뿐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라, 같은 소식은 없다. 

어제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그 성과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했거니와, 이를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 했으니, 이를 발판으로 삼은 합의 내용을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공표했다. 이 사안을 두고 언론이 어찌 바라보는지, 편의상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고 평가하는 조선일보와 그 반대편 경향 한겨레 두 신문을 봐도 그 다양성을 알 만한다. 이른바 진보 계열로 현 집권세력과 정치 지향점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그 공동선언 자체에 비중을 두어, 그것이 얼마나 민족사적인 의미에서 중대성을 지니는 사건인지를 1면 전체를 털어내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 두 신문 사이에도 적지 않은 간극이 있어, 조선과 한겨레를 극단에 놓는다면, 경향은 한겨레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화면 기준 오른편에 위치한다. 

냉혹히 평가하자면, 한겨레는 지금의 청와대 혹은 집권 민주당과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 선언문 자체를 그대로 전재하면서, 더구나 그것으로써만 1면을 가득 채우고는, 그 의미를 부여하기를 "'핵·전쟁 없는 한반도' 남북 사실상 종전선언"이라 했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청와대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저 말을 지금의 집권 권력이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내지를 수 없는 형편이지만, 속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말을 속시원히 질러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에 견주어 경향신문은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나, 상대적으로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려 한다.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을 든 사진을 게재하면서, 그 아래에다가는 공동선언문 원문을 수록했으니, 그러면서도 제목으로는 "북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 명시…김정은, 서울 온다"는 제목을 뽑아, 이번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어 가지를 적출해 적기했다.   


이들 여권 성향 언론에 견주어, 지금은 야권 성향일 수밖에 없는 조선일보는 아예 대놓고 드립다까기 전법을 구사한다.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말 한 마디에 국방을 포기했다는 논리를 동원하니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고자 조선일보는 그에 대한 야권의 평, 곧 "사실상 안보 포기'"라는 말을 동원했다. 이런 그들이 보기에 저 남북공동선언은 휴지조각이나 같거나 혹은 폐기되어야 하는 약속이다. 그 공동선언문 원문을 수록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나는 본다. 

조선일보 1면 배치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환호하는 평양시민 15만명 앞에 문통과 김정은 둘이 손을 맞잡고 선 장면을 담은 사진을 수록했다는 사실이다. 언뜻 선동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겨레가 가장 강할 듯한데, 현재의 역학 구도에서 그것이 가장 강한 언론이 조선일보다. 내 보기에는 그렇다. 이런 선동성은 야권 성향일 수록 두드러지기 마련인데, 언제나 밀려난 권력 혹은 그것을 잡아야 하는 잠재 권력이 정권을 탈취하는 지름길은 선동이기 때문이다. 이에서 조선일보는 한 치 어긋남이 없어, 저 사진을 실은 이데올로기는 이를 통해 보수층을 자극하려는 데 있다고 나는 본다. 



그렇다면 저런 여러 시각들을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버무려야 하는가? 나는 외신의 시각, 한민족 일원이 아닌 세계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이번까지 세 번에 이르는 만남에서 어찌 이룩한 성과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남북한 당국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선 조선일보와 같은 시각으로 시종일관 깔아뭉개서도 더더욱 곤란하다. 한 발 떨어져서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이번에 이르기까지 진전사항들을 내가 하나하나 간평하기에는 버겁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적마다, 나는 되도록이면, 주요 외신들이 이 사태를 어찌 바라보는지를 점검하면서, 내가 분석한 그것과를 비교해 보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신이 소위 객관의 시각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다만, 한반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을 통해 내가 미쳐 보지 못한 시각들을 교정할 수도 있고, 나아가 보강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조선일보의 시각, 한겨레 경향의 시각은 모두 거부한다. 그건 내 눈깔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의 시각에서도 얻을 바가 적지 않다는 점만을 적기해 두고 싶다. 

문경 고모산성 신라 목곽고..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대로 매몰했다.


내 기자 생활 26년 중 20년은 문화재와 관련 있다. 그런 문화재 생활 중에서 고고학 발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문화재라는 범주가 매우 광범위해서, 고고학 혹은 발굴이 차지하는 지위는 생각보다는 얼마되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기자들한테  유독 이 발굴이 비중이 크게 느껴지는 까닭은 모든 발굴은 news를 생산하며, 언론 혹은 기자는 이 news를 자양분으로 삼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김태식 개인으로 보아도 문화재기자 생활을 고고학으로 먹고 살았다 해도 허장성세는 아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 발굴에 종사하는 작금 한국 고고학에 나는 보다시피 언제나 비판적이다. 개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이 분야에 뛰어든 직후부터 줄기차게 한 말이 있다. 유적을 파괴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고고학도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에 경기를 일으킨 이유는 모든 발굴 현장마다 소위 자문위원이니 검토위원이니, 지도위원이니, 혹은 문화재위원이라는 자들이 현장에 나타나, 혹은 그것을 각종 자료를 통해 검토하고는 걸핏하면 토층(土層)이 궁금하다며, 저 아래 쪽엔, 그리고 저 뒤엔 무엇이 있냐를 밝혀야 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달아 모조리 파제끼게 하니, 그리하여 결국 발굴이 끝난 다음 현장엔 빈껍데기만 남고 그 존재 이유를 가능케 한 소위 유구(遺構)며, 유물(遺物)은 깡그리 걷어내는 까닭이다. 그 빈껍데기 위로는 이내 광활한 잔디밭이 들어서고, 그 한쪽 귀퉁이에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유적인지를 윽박하고 강요하는 문화재 안내판 하나 덜렁 설 뿐이다. 

천안 위례산성 백제 목곽고..역시 뜯자고 주장한 얼빠진 고고학도가 있었지만 매몰했다.


발굴은 그 동기와 목적에 따라 크게 구제발굴과 학술발굴로 나뉜다. 공사에 따른 전 단계 조치로, 근간에서는 파괴를 전제로 삼는 구제발굴이야 그 대부분이 기록만 남기는 선에서 훼멸되지만, 연구와 보존 정비를 내세운 학술발굴 현장에서도 모두가 파괴하지 못해 환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 이 땅의 고고학도와 고건축학도들이다. 물론 이를 향한 비판이 최근 거세지는 바람에 현장에 따라 유구 보존을 위한 새로운 결단이 더러 도입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자 과연 몇 명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저 토층과 혹은 구조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모조리 파제끼라고 부추기는 자들이 고고학도와 건축학도들이다. 그에 더해, 매양 하는 말이 유구는 해체하지 않고는 보고서를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모조리 파제끼고 모조리 해체하고, 모조리 거둬 버린다. 물론 아니라 강변하는 자도 있을 터이고,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또 듣자니 더러 현재의 매장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반론 일부에서는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정당할 수는 없다. 매장법? 보고서? 핑계다. 그에서도 얼마든 빠져나갈 구멍은 있으며, 귀찮아서 하지 않을 뿐이다.  

장담하거니와, 그렇게 해서 망가져 나간 히스토릭 사이트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만큼 무수하며, 내 눈 앞에서 사라져간 사이트도 천지다.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데도, 꼴난 저와 같은 완장 하나 차고는 현장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구조를 밝혀야 하니깐, 제작 방법을 구명해야 하니깐, 어떻게 쌓았는지 토층 양상을 파악해야 하니깐, 더 파야 한다고, 다 뜯어제껴야 한다고, 각종 이유를 달아 부추긴 자들이 너희다.  

경주 황복사지 발굴현장..발굴 끝나고 어떤 모습을 담아야 하는지 그랜드디자인은 서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작 발굴이 끝난 현장은 볼 것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아, 토기 쪼가리 하나까지 박박 긁어가서는 박물관 같은 데다 일부 전시하고, 나머지 99%는 수장고에 쳐박아 두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 중이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뭐하러 발굴했는가 하는 반문이 절로 나온다. 보존정비라 하지 않았는가? 무엇을 보존했느냐 너희 한국고고학도 고건축학도들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도 너희가 유적 보존을 운위할 자격이 있느냐 말이다. 잔디밭 보자고 발굴했는가? 덩그레한 안내판 하나 읽으려 발굴했던가? 박물관 유리창 너무 안치한 유물 몇 점 보려고 발굴한 게 아니지 않는가?

저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써, 저 풍납토성 미래마을지구 기와더미는 기어이 다 파제끼고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다며 다 들어냈으니, 보고서 쓴다고, 나아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밑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들어낸 기와가 오백 박스다. 같은 풍납토성 경당지구 우물도 꼬다리 떼어낸 토기 그득한 그대로 남겨두었어야 함에도 보고서 쓰야 한다는 이유로 그 안을 가득 채운 꼬다리 뜯은 토기 243점을 몽땅 들어내고 빈껍데기를 만들었다. 대전 월평산성 백제 목곽은 그렇게 해서 뜯어제꼈다.  

뭐 뜯어제낄 땐 참 말이 많고, 참 자신감 넘치기만 한다. 요즘 보존처리 기술도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한다. 뭐 그래? 내가 보니 이는 완전한 사기이거나 그에 가깝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전연 그것을 완벽히 보존할 수도 없고, 제아무리 보존처리 잘한다 한들, 뒤틀리기 마련이라, 이내 썩어문드러지고 만다. 월평동 목곽고가 그렇게 해서 다 망가져서, 다 뒤틀린 목재 쪼가리 몇 개 국립공주박물관 유리창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아랑곳없어,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 같아, 언제나 뜯어제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문경 고모산성 목곽 자문위원회 현장을 가서 보니, 그 우람한 5세기 신라시대 저습지 목곽을 해체한다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더라. 더 근자엔 천안 위례산성 꼭대기를 갔더니, 그에서도 백제시대 저습 목곽고가 드러나, 물으니, 어떤 자문위원이라는 자가 뜯어라 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놈이 어떤 놈이냐, 그 놈더러 해체해서 그 놈더러 저 목재 지고 내려가게 하라고 한 일도 있다. 


잔디밭 풍납토성


도대체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가? 다시 얘기하듯이 그 궁금증이란 것도, 너희가 그토록이나 구명하고자 하는 한국고대문화 구명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토층? 똥개나 줘버려라. 구조? 시궁창에나 던져버려라.  

내가 지난날을 곱씹고, 그리고 오늘을 보고 또 봐도, 문화재를 죽이는 주범은 도굴이나 개발이 아니다. 고고학적 호기심이 문화재를 죽이는 제1 원흉이다. 이는 주로 고건축학도가 주무하는 보수 현장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져, 거의 모든 보수현장이 진행 양상이 같아, 애초엔 지붕만, 천장만 손본다 했다가 기어이 다 뜯어제끼니, 뭐 말은 그럴 듯해서, 막상 뜯어보니 건물 전체 안정성에 문제가 있고, 부재가 다 썩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몽땅 해체하고 만다. 하지만 그네들이 내세우는 안정성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거개가 다 호기심 해결용이다. 구조가 궁금하다고, 그걸 처음 만든 시대가 궁금하다며, 그 증거 채집을 위한 파괴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호기심은 내가 보니 관음증에 다름 아니다. 그 궁금증을 향한 욕구는 단언커니와 그네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꼼수지 문화재 자체를 위한 충정과는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이런 놈들이 매양 하는 짓이라곤 몽땅 걷어내고 파제낀 다음 복토다. 유적 보호를 구실로 흙으로 덮어버리곤 그것이 문화재 보호라 한다. 물론 이 복토가 상징하는 정비는 고고학이나 건축학 영역을 벗어나 별도 영역이라 고고학 혹은 건축학이 간여할 수 없는 일이라 하나, 애초 그런 비극이 초래할 줄 알면서도 파제끼고 뜯어제끼는 일을 나는 계속 용납치 않으려 한다. 


아래와 관련한 언론보도는 다음을 클릭하라. 


휴전선이 가른 '태봉국 철원성' 조사 이뤄지나



오늘 평양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공동 기자회견 직후 국방부 대북정책관실에서 배포한 백 브리핑 자료다. 이를 보면 공동유해발굴 건이 들어가 있음을 본다. 



유해발굴은 현재까지는 국방부 산하 전문 조사기관이 전담했다. 이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에는 고고학도가 생각보다는 깊이 개입된 지 오래고, 실제 고고학 종사자가 많다. 다만, 이 유해발굴 역시 고고학적 조사방식을 폭넓게 도입해 고고학적 지식을 좀 더 많이 가미해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본다.  





한데 이에서 문화재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휴전선 일대에 포진하는 역사유적 공동 조사 추진 방침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사대상지가 있을까?  


그 대목이 이 백브리핑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히 부연해 등장한다.   


비무장지대내 역사유적 공동조사・발굴

(2조 ④항)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의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조사 및 발굴과 관련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다. 

◦정부는 DMZ내 역사유적을 민족정체성 회복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민간 차원의 공동조사 및 발굴 추진 

◦남북군사당국은 이러한 남북간 문화교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조사 및 발굴 관련 지뢰제거, 출입 및

안전보장 등 군사적 보장대책을 마련

◦우선 조치로 DMZ내 ’태봉국 철원성‘ 등 발굴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남북군사당국간에 의한 군사적 보장 합의 선행 필요

∙남북군사당국간 합의를 통해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조사 및 발굴 관련 지뢰제거, 출입 및 안전보장 등 군사적 보장대책 마련

◦남북간 군사적 보장 합의를 통해 관련 당국에서 필요한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 마련

∙이는 남북 공통의 역사유적을 복원하고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 가능 


이에서 보듯이 그 구체 대상지로 궁예도성이 등장한다. 이 궁예도성을 이 문서에서는 '태봉국 철원성'으로 부른다. 물론 이렇다 해서 당장 궁예도성이 발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보다시피 이는 추진 방침을 선언한 데 지나지 않고, 더구나 지뢰지대라 조사에 앞서 무엇보다 그 제거 작업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그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는 군사분계선 처리 문제도 골치 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궁예도성이야말로 더없이 남북교류협력에서 지닌 상징성을 클 수밖에 없다. 이곳을 조사한다 함은 휴전선이 뚫림을 의미한다. 단순히 공동조사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명실상부 공동발굴조사다. 


그런 꿈과 같은 날이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엄마가 외친다.

"벤또 놓고 갔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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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76)


아미산 달 타령(峨眉山月歌)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아미산에 반달 뜬

이 가을날에


달그림자 평강강에

비쳐 흐르네


밤중에 청계 떠나

삼협 향하며


그리운 임 못 만나고

투주로 가네 


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 


너무 식상한 평어(評語)이지만 또 다시 천의무봉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다. 칠언절구는 4구 28자로 구성되는 지극히 정련된 시 형식이다. 이처럼 짧은 시에 지명이 다섯 개나 등장한다. 아미산(峨眉山), 평강강(平羌江), 청계(淸溪), 삼협(三峽), 투주(渝州)가 그것이다. 총 28자 중 12자가 지명이다. 동서고금의 어떤 시인이 시 한 수를 지으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어를 지명으로 채울까?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오히려 지명의 의미가 시에 완전히 녹아들어 시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미(峨眉)는 아미(蛾眉)와 발음이 같아 뾰죽한 산봉우리와 눈썹달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발치를 흐르는 평강강(平羌江)은 넓은 평지를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다. 아미산에 뜬 아미월(눈썹달)이 강물 속으로 비쳐들어 강과 산이 한 몸이 된다. 절묘하다. 청계(淸溪)는 맑은 물이므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사천(四川)의 풍경을 상징한다. 그 깨끗한 고을을 출발하여 험준한 삼협으로 향하는 마음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다. 고향을 처음 떠나 객지로 나갈 때 우리도 이와 같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나는 곳이 어디인가? 투주(渝州)다. 투(渝)는 마음이 변한다는 뜻이다. 땅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애틋했던 마음도 담담해지기 마련이다. 대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저 아미산에 뜬 달이 내가 탄 배 위로 끝없이 따라 오듯 나의 마음도 달님을 매개로 그리운 사람을 잊지 못한다.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평안하신가? 한가위가 다가오는 저녁, 저 하늘 위에 뜬 아미월을 한 번 올려다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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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sabu 2018.09.18 22:29 신고

    강을 따라 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영어제목은 문리버라고 하면 되것구먼요. 사진도 그렇고.

  2. yisabu 2018.09.18 22:53 신고

    지명도 다 쓰임새가 다른 듯 합니다.
    “峨眉山月”、“平羌江水” 는 경치에 빗대어 가상의 모습을
    “发清溪”、“向三峡”、“下渝州”는 실제 움직이는 방향을 나타낸 듯 하여
    다 지명인 줄 모르고 깜박 속아 넘어가게끔 시를 허허실실 꾸몄네요.

나는 언제나 말하기를 좋은 논문 쓰고 싶거덜랑 논문을 읽지 말라고 한다. 논문 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항용 말하기를 남들 논문 읽고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라 하며, 실제 무수한 교육현장, 특히 석·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 그 교육 내용을 볼짝시면, 남들이 써제낀 논문 읽기와 그것을 토대로 삼은 논문 발표가 무한반복한다.  




말하거니와,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한다 해서 좋은 논문 나오는 법 결코 없다. 내 열 손가락 다 지져도 좋다. 이런 공부 혹은 교육 방법을 탈피하지 못하니 매양 논문이라는 것들을 보면, 남들 무슨 얘기했다 잔뜩 나열 정리하고는 그에 대한 비판이랍시며, 자기 말 한두 마디 보태고는 그걸 논문이랍시며 제출하곤 한다. 논문이 논문을 쓴다는 말은 이렇게 해서 언제나 적어도 국내 학계에서는 정당하다. 그런 까닭에 그리 제출된 논문을 볼짝시면 제아무리 뛰어난 논문이라 해도, 그 전체 중 음미할 만한 곳은 10%도 되지 않는다. 걸러내고 나면 남은 대목이 없다.


좋은 글, 좋은 논문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다. 그 첫마디부터 마지막말까지 단 한 마디도 버릴 것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목이 아프도록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네 글쓰기 논문쓰기를 보면 같은 영화를 무한 반복하는 영화전문채널 OCN이다. 언제나 성탄절을 장식하는 《나홀로 집에》다. 그것도 같은 말 무한 반복이라, 국문초록과 영문초록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이 같은 말이요, 국문초록과 서문과 결론과 요약이 같은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잘쓴 글이란 이 네 가지가 모두 달라야 한다. 그 요지는 같다 해도, 그 표현이 달라야 하고, 그 전거가 달라야 하고, 그 문체가 달라야 한다. 논리 전개도 달라야 한다. A라는 주제에 대해 이전 어떤 선행 연구자가 B라고 말하고, C가 D라고 말하고, E가 F라고 말했는데 나는 G라고 생각한다는 논리 전개 구조를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논문을 읽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에 얽매여서는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언론계 속어를 빌리건대 우라까이에 지나지 않는다. 선행연구성과를 제대로 검토한 다음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표출해야 한다는 주입은 제 아무리 그 글이 훌륭해도 언제나 선행 연구자 따라지를 양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선생이라는 자들도 개중 소위 열린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하지만, 이 말이 언뜻 보면 훌륭하기 짝이 없는 듯하지만, 그 속내를 따져보고, 실제로 요구하는 글쓰기 스타일은 물론이요, 그 논리 전개 구조도 자기 연구를 토대로 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한계를 그 선생이 인정하느냐 하면, 나는 이렇게 해서 받아들이는 선생을 태어나서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언제나 선행연구성과를 제대로 음미해야 자기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리 해서는 결코 새로운 목소리는 나올 수 없고 가지치기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생은 학생을 구속하고 차꼬에 가둘 뿐이다.  이는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를 갈파한 말을 빌린다면 영원한 플라톤 각주달기에 지나지 않는다. 각주를 쓸 것인가 새로운 원전을 쓸 것인가, 이제 그것을 글 쓰는 이는 결단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이 없어 각주나 쓰겠는가? 

  1. yisabu 2018.09.19 13:36 신고

    이 글은 에세이 꼭지 아래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2. 한량 taeshik.kim 2018.09.19 19:31 신고

    그래야겠군요



한시, 계절의 노래(175) 


천문산 바라보며(望天門山)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천문산이 중간에 끊겨

초강이 열리니


벽옥 강물 동류하다

북쪽으로 감아도네


양쪽 강안 푸른 산이

마주한 채 튀어나오자


외로운 돛 한 조각

태양 곁에서 다가오네


天門中斷楚江開, 碧水東流至北回. 兩岸靑山相對出, 孤帆一片日邊來.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곳곳의 강산을 유람해보면 강이 산을 꿰뚫고, 산이 강을 건너는 곳이 허다함을 알 수 있다. 천고의 세월은 강과 산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말 그대로 아름다운 ‘강산’을 빚어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성립하듯,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한다. 한계를 돌파한 곳에서 새로운 천지가 열리는 법이다. 강과 산의 변증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중국 장강(長江)이다. 배를 타고 장강삼협(長江三峽)을 흘러가보면 눈앞을 압도해오는 강산의 천변만화에 말문이 막힌다. 그저 감탄사만 내뱉을 수 있을 따름이다. 삼협에 속하지는 않지만 천문산도 장강의 그런 명소 중 하나다.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塗縣) 남서쪽에 자리한 천문산은 장강이 비스듬히 북류하면서 단애를 만든 곳이다. 동쪽에는 박망산(博望山)이, 서쪽에는 양산(梁山)이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이 만든 관문처럼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이백은 배를 타고 그곳을 지나며 눈앞에 다가오는 장관을 신속하게 포착했다. 저 멀리서 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이 서서히 다가오자 벽옥색 강물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감아 도는 눈앞에 문득 거대한 바위 산이 박두하듯 나타나고, 그 사이로 태양이 비치는 수평선에서는 외로운 돛단배가 천천히 흘러온다. 장엄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도도한 강물 위에서 작은 돛단배는 늘 외롭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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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sabu 2018.09.17 23:53 신고

    천문산이란게 미국으로 치면 Delaware Water Gap 국립공원 같은 곳인가 보군요. 거기서도 카누 대여하면 태양을 등지고 강물따라 내려올 수 있습니다. 역시 이태백!

경주 서악동 고분군과 서악동 삼층석탑



한시, 계절의 노래(174) 


가을비 탄식 10수 중(秋雨歎十解) 아홉째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안개인 듯 먼지인 듯

있는 듯 없는 듯


순식간에 짙어졌다

다시 또 듬성듬성


구월 새벽 맑은 서리

홀연히 망각하고


이월 초 몽몽한 날씨

그대로 불러오네


似霧如塵有却無, 須臾密密復疏疏. 忽忘九月淸霜曉, 喚作濛濛二月初.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안개도 아니고 이슬비도 아닌 비를 ‘는개’라고 한다. 는개는 온 천지를 몽몽하게 덮으면서 사람의 마음까지 적신다. 가을인데도 마치 봄처럼 느껴져 저 강변 어디 촉촉한 버드나무엔 연초록 새싹이 돋을 듯하다. 도종환의 「가을비」가 떠오른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가슴 저리다. 하지만 그가 장관이 되기 전에는 절창으로 다가오던 이 시가, 지금은 시적 여운이 반감 되는 느낌이다. 오세영의 가을비는 섬뜩하다. “후두둑/ 관에 못질하는 가을비 소리” 무서워라! 그럼 가을에 내리는 는개비는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일까? 가슴 떨리는 가을이다. 가을비에 젖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추녀(秋女), 추남(秋男)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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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건동거사 2018.09.17 22:39 신고

    忽忘九月淸霜曉, 喚作濛濛二月初

    이 구절 해석이 좀 막연하고 잘 와닿지 않네요.

  2. 연건동거사 2018.09.17 23:02 신고

    이렇게 해석이 까다로운 구절은 작자의 개인적 경험이 투사된 절창일것이라고 막연히짐작하는데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 아쉬울 뿐입니다.

김천 봉곡사



한시, 계절의 노래(173) 


초가을 비가 개다(初秋雨晴)


 송 주숙진 / 김영문 選譯評 


비 갠 후 시원한 바람

더위를 거둬가자


뜰앞 오동 잎잎마다

초가을 알리네


뜬 구름 황혼 좇아

모두 떠나자


누각 모서리 초생달이

옥 갈고린양 걸려 있네


雨後風凉暑氣收, 庭梧葉葉報初秋. 浮雲盡逐黃昏去, 樓角新蟾掛玉鉤. 


주숙진은 남송 시단에서 이청조(李淸照)와 쌍벽을 이루는 여성 시인이다. 대략 이청조보다 50여 년 늦게 태어나 맑고 애절한 시풍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시를 모르는 저속한 벼슬아치에게 시집가서 불화하다가 우울증이 겹쳐 마흔 중반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호수에 뛰어들어 자결했다고도 한다. 그의 사(詞) 「생사자(生査子)·정월대보름(元夕)」에 나오는 “버드나무 꼭대기에 달 떠오를 때, 황혼 뒤 만나자 기약했다네(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라는 시구는 가정을 가진 여성이 남몰래 밀회를 즐기는 내용이어서 당시 뿐만 아니라 이후 수많은 전통 지식인의 지탄과 매도의 대상이었다. 주숙진이 세상을 떠난 후 친정 부모는 그의 불행한 삶이 뛰어난 문재(文才) 때문이라 여기고 그의 시고(詩稿)를 모두 불태웠으나 이미 항간에 전해진 작품이 워낙 많아서 지금까지도 그의 『단장시집(斷腸詩集)』과 『단장사(斷腸詞)』가 전해오고 있다. 이 시는 비 갠 후 초가을 황혼 무렵 갈고리처럼 예쁘게 걸린 초생달을 읊은 시다. 맑은 바람에 우수수 흔들리는 오동잎 소리는 마침내 우수의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BGM이다. 이제 온 천지에 가을 음악 첫 소절이 깔리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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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설산 일대 풍경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하지만 이 구절이 들어간 애국가 가사와 곡조가 등장할 적에 한반도 삼천리는 화려한 강산과는 거리가 전연 멀어, 온통 천둥벌거숭이였으니, 그리하여 매양 비가 조금만 내려도 곳곳은 사태(沙汰)로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고, 그것이 초래한 매몰에 인적·물적 희생이 다대했다. 사태는 강바닥 상승을 부르기 마련이라, 그만큼 물난리에 고통이 더 컸던 것이다. 김동인이 말한 '붉은산'이 그 무렵을 우뚝히 증언하는 말이었다. 그랬다. 내가 기억하는 70년대 온 산하가 그렇게 붉었으니, 산허리는 곳곳이 여드름 자국 잔뜩한 곰보 같았다. 


70년대를 회고하는 사람들한테 익숙한 다른 우리 주변 풍경에 백사장(白沙場)이 있다. 당장 내 고향 김천만 해도,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감천이라는 지류가 있어, 그것이 관통하는 김천 시내 그 강안에는 드넓은 백사장이 발달해, 소장이 섰는가 하면, 오일장에 즈음해서는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으니, 그 시대 최고 씨름꾼 김성률은 바로 이런 김천이 낳은 스포츠스타였다. 


낭만으로 점철하는 그 백사장. 하지만 단군조선 이래 우리 산하가 줄곧 이런 백사장이 펼쳐질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곧 산림파괴가 준 선물이었으니, 직접으로는 헐벗을 대로 헐벗은 산에서 빗물에 씻긴 모래 사태가 준 환경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정겨운 고향 운운하며 백사장을 오버랩할지 모르나, 백사장은 홍수를 부르는 직접 동인이었다. 한강 역시 그러해, 지금이야 전두환 정권 최대 치적으로 꼽는 한강 치수사업이 마침내 성공하면서, 한강에 의한 직접 범람이 요새는 먼나라 얘기로 변해버렸지만,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걸핏하면 범람을 일삼았으니, 그 범람이 부른 선물이 바로 드넓은 한강 백사장이었다. 


80년대 중반 김천 아포의 한 백사장



애국가 얘기 나온 김에, 나로서는 참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구절로 그 가사가 첨절하거니와, 당장 저 '화려강산'은 차치하고라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 했지만, 애국가 등장 무렵 남산에 소나무가 있기라도 했는지 적이 의뭉스럽다. 지금의 서울 시내 중심을 걸터앉은 남산 중에서도 한쪽 구역에 아름드리에 가까운 소나무 군락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애국가에 맞춘 남산 경관 조성 사업 일환으로 나중에 심고 가꾼 모습이다. 더불어 지금이야말로 온산이 수목으로 울창하니, 진짜로 애국가가 말한 금수강산이다. 


다만, 그 수식어 '삼천리'는 반토막이라, 휴전선을 건너면 전연 딴판인 경관이 펼쳐지니, 저 북녘 온국토는 우리가 70년대까지 익숙한 그 풍경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남북협력 사업이 본격화하거니와, 그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철도건설과 산림 녹화라는 사실은 삼림이 얼마나 중요한 당면 사업인지를 역설한다. 당장 내일 개막하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편에 우리 정부 수행단으로 산림청장이 들어간 이유다. 


지금의 북한, 70년대 이전까지의 남한 산하, 다시 말해 백사장과 민둥산이 대표하는 그 경관은 흔적을 추적하면, 대체로 17세기 중반 이래 조선의 산림이 급격하게 황폐화하면서 생성된 것임을 짐작한다. 그 이전에는 그런 대로 산림이 우거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불과 60~70년대 이전만 해도 화전(火田)이 광범위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풍광과는 사뭇 달랐음이 틀림없다.


부여 능산리 절터



경관...랜스케입landscape은 자명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요 인위가 개입한 결과물임을 나는 여러 번 말했거니와, 이런 간단한 이해를만 있어도, 우리가 쉽게 말하는 자연(自然)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나 하는지, 나는 무척이나 회의적이다. 인위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자연은 어쩌면 매우 폭력적이다. 그 폭력을 다스리고자 하는 인간의 간섭 행위를 인위라 한다면, 경관이란 자연히 주어지는 그 무엇도 있겠지만, 한반도에서 그 자연은 어쩌면 단군조선 이래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허상인지도 모른다. 그에 따라 그만큼 자연과 인위가 빚어내는 교향곡인 경관의 중요성이 새삼 중요해진다고 나는 본다. 


이런 경관으로 나는 우리 대표 고도들인 경주와 부여, 그리고 공주 세 곳을 들어 비교하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주가 여타 두 고도와 확연히 다른 점은 전자가 비교적 평화로운 왕권 교체 속에서 전 왕조 유산이 비교적 온전하게 살아남은데 견주어 후자 두 고도는 전자에 거점을 둔 왕조에 궤멸에 가까운 막대한 훼손을 보았다. 신라는 무력으로 백제를 정벌한 까닭에 그것을 멸할 무렵에 제1 수도 사비 부여와 제2 도읍 웅진 공주를 초토화했다. 그것이 멀리는 비슷한 고도임에도 작금에 이르는 왕청난 랜스케입 차이로 빚어지는 한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초의 자산 차이와 관계없이 고도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인위의 개입이 얼마나 경주되었는가는 두 지역 왕도의 랜스케입까지 왕청나게 갈라놓았다. 물론 공주와 부여에 이런 인위가 개입되지 않았다 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시대가 국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오늘날 우리한테 익숙한 경주를 만드는 바탕이요 남상이었다. 


경주 대릉원



공주를 보라. 공산성에 올라 내려다보는 공주 시내에서 백제 고도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 유산을 대표한다는 무령왕릉도 규모가 코딱지인 데다, 동시대 신라무덤과는 달리 산중턱을 까고 들어가 무덤방을 만들고 이렇다 할 봉분 시설을 마련하지 않는 데다 철문까지 꽝꽝 닫아놓아 적어도 외양으로는 볼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무령왕릉 개방을 줄곧 주장하기도 한다. 


부여는 정림사지, 더욱 정확히는 그 석탑이 아니면 백제라고 느낄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여타 낙화암이며, 능산리고분이며, 부여나성을 들기도 하겠지만, 휑뎅그레한 기분은 씻을 길 없다. 


그런 공주와 부여가 최근 들어 급변하는 중이다. 공주의 경우 주로 제민천 일대 도시재생산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이 사업을 따라 도시 면모가 바뀌는 중이다. 부여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와 맞물려 이미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읍내에서는 전봇대가 사라졌으며, 곳곳에서 백제 고도 맛을 내는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물론 그 내용 하나하나가 논란이 될 수도 있고 실제 그렇기도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점은 경관은 인위가 개입한 결과이지, 결코 소위 자연 그대로 놔두어서는 주어질 수가 없다. 나는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연이 오직 숭고하기만 하다는 소위 원초론적 환경보호주의에 찬동하지 않는다. 민둥산을 없애고 수풀을 만들었듯이, 강바닥을 준설하고 둔치를 건설함으로써 백사장을 없앰으로써 범람을 퇴출했듯이, 그런 적극적인 인위가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공주 석장리박물관



랜스케입, 혹은 그 일환으로서의 고도는 내가 만드는 것이지 마른 하늘 제우스가 각중에 내리는 벼락은 아니다. 


  1. 2018.09.17 15:2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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