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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이 지구상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다."

오늘(2012. 11. 7)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한글 현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되풀이한 말이다. 한글 과학적이 않다고는 말 안한다. 하지만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지 않은 그 무엇"과의 비교를 통해서라야만 가능하다. 과연 한글은 무엇에 견주어서 과학적이라는 말인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월인천강지곡



영어가 한글에 비해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불어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히라카나 가타까나가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한문이 비과학적이란 말인가? 조형 원리, 제자 원리가 과학적이라고? 뭐가 과학적이냐? 발음하는 기관 모양을 본뜬 것이 과학적이라더냐? 그러면 뫼 산을 모양을 본떠 山이라는 글자를 맹글어 낸 상형 한자는 과학적이 아니라더냐? 


한글이 과학적이지 않다라는 말이 아니다. 한글이 과학적인 만큼 다른 문자 체계도 다 다름 과학적이다. 없는 신화 맹글어 내지 마라. 


한글은 과학의 신화에서 빨리 끌어댕겨 내려야 한다.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한 지금까지 가장 효율적인 표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근거로 가장 수이, 그리고 가장 빨리 배운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배우기 쉽다 해서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배우기 쉬운 것과 과학은 눈꼽만큼도 상관이 없다.  그건 그냥 배우기 쉬울 뿐이다. 


소위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



문자를 배우고 익혀 그걸 읽는 것과 그런 문자로 표기한 언어 자체를 이해하는 건 전연 다른 문제다. 한글은 저 과학이라는 신화에서 벗겨내야 한다. 그래야 한글이 산다. 그런 점에서 아래와 같은 언급은 주목해도 좋다. 


한글의 창제에 대한 수많은 연구의 저변에는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 없는 과학적인 문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이 깔려있어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어떠한 연구도 용납되지 않는 것 같다. 또 우리 학계의 풍토도 한글의 위대성, 과학성, 편의성에 대한 연구라면 얼마든지 환영을 받지만 이에 반하는 연구는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비슷비슷한 연구가 반복되었고 이제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더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는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해하는 수준의 연구논문이 학회지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정광,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역락, 2012, 11쪽) 


*** 이상은 2012년 11월 7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갈무리한 것이다. 

덧붙이건대, 소위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자가 천억원을 요구하니 마니 하는 헛소리도 따지고 보면 다 이 한글 과학이라는 신화가 낳은 촌극이다. 해례본이 무슨 천억원이라더냐?

  1. 고로 2018.11.10 14:12 신고

    세종대왕이 처음만들때 몰래 만들어서 베타테스트가 부족한 바람에... 쓸만한 문자가 되는데 시간이 올래걸렸죠..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없고 글자모양이 비슷비슷해서 큰소리내어 말하지 않으면 읽기가 쉽지 않은 문자였음.. 결국 오백년이지나서야 대중화됌... 조합형 문자라 인쇄하려면 활자를 만개이상 만들어야 해서 인쇄술발전에도 도움이 안되던 문자였고.. 지금도 가독성은 낮은 문자중에 하나임..

  2. 아파트분양 2018.11.10 21:34 신고

    신화라니? 다들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 한량 taeshik.kim 2018.11.12 14:50 신고

      글쎄요. 다들 그리 말씀하시는데, 그 다들 하시는 말씀에 제가 승복을 못하네요


한자의 변천사에서 허신은 부수를 발명함으로써 제일차 혁명을 일으켰고..이어 반절을 발명함으로써 음절을 나누는 제이차 혁명을 이룩했다..가장 시대에 뒤떨어질것같은 한자도 부단히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시대변화란 말 남용하지말라..그 논리 그대로 당할날 멀지 않았다..좀 있으면 영어로 광화문 현판 달자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온다. 

한글로 해야 한다는 그 논리 그대로 뒤집으면 그것이 바로 영어 현판의 당위성을 담보한다.

우쭐대지 마라. 

*** 이상은 November 7, 2012 at 8:01 PM 내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시대 변화에 맞추어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한글전용자들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 적이 있다. 요즘도 틈만 나면 이 주장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 논리 진짜로 조심해야 한다. 그 논리 그대로 갖다 대면, 내가 말한 저 논리, 다시 말해 시대 변화에 맞게 무슨 얼어죽을 놈의 한글이냐? 영어로 달자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 모바일 정보창고 2018.11.08 12:59 신고

    서체 자체의 기픔도 느껴야 하니까요 ^^
    한글의 대중화는 되어야 겠지만, 지금 있는 것돌이라도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

  2. 아파트담보 2018.11.08 23:55 신고

    그러게요.. 중국에 쩔쩔매는 한국모습보면 , 영어로 된 광화문도 나쁘지 않겠네요

〈교수 겸직은 김영란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현직 국민대 교수인 김병준이 총리로 지명되었다. 그는 국민대 현역교수로서 학교를 휴직하고 참여정부에서 호사를 누리다가 교수로 복귀했다. 이런 교수가 한둘이 아니다. 공직 혹은 그에 준하는 자리를 맡아 현직 교수 신분을 유지한 교수가 천지 빼까리다. 비단 이만이 아니라 상당수 교수가 교수가 본업이 아니라 알바로 여기니, 그런 세태 형성에 저 겸직 허용이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나는 교수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를 알바로 여기며 딴 짓거리에 혈안이 된 교수놈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겸직은 김영란법 정신에도 맞지 않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기회균등 차원에서도,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 교수는 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교육 가치와 연구 가치, 이 두 가지는 포기할 수 없는 교수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본다. 공직 진출은 그에 위배하는 배신 행위다. 


공직에 가거들랑 교수직 집어쳐야 하며, 그런 놈들은 당연히 대학에서는 해임해야 한다. 


*** 이상은 2016년 11월 3일, 국민대 교수 김병준이 총리에 지명되기에 즈음해 내 페이스북에 쓴 글이거니와, 과격한 표현은 고쳤다.   



〈교수 겸업, 조국이 끊어야 한다〉


이종태 선생도 같은 맥락에서 좀전에 포스팅한 글이 있다. 이는 내가 평소 계속 주장하던 바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초대 민정수석으로 서울대 법학대학원 현직 교수 조국이 현직 교수 신분을 유지한 채 민정수석이 되었다. 기자가 이를 질문하니 조국은 지금 안식년 중이라 하고, 나아가 서울대 교칙을 근거로 들면서 민정수석 재임 기간엔 휴직 신청을 할 것처럼 답변했다고 기억한다. 이 고리가 바로 폴리페서의 양산처다. 이 고리, 조국 자신이 이젠 끊어야 한다. 이는 명백히 이중취업이다.


이중취업이 아니되는 이유는 정실이 개입하는 여지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는 작금 서울대 교수이면서 민정수석이다. 서울대 교수직은 사임해야 한다. 민정수석을 비롯하는 공직이 교수의 부업일 수는 없다. 이참에 교수 공직 겸직은 확실히 뿌리를 잘라야 한다. 기자들 정계진출을 비난하지만 기자가 휴직하고서 공직으로 진출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교수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는 조국의 행보를 주시한다.


교수 겸업 금지도 적폐청산의 일환이다. 그런 점에서 이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도 기대한다. 그 고리 끊을 사람은 현재로선 조국과 문재인 두 사람이 있다. 


*** 이상은 2017년 5월 13일,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에 서울대 교수 조국이 지명되면서 내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치매(癡呆)'라 하지만, 이게 얼마전까진 '노망'이었다. 요샌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를 아예 갖다가 '디멘샤(dementia)'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싱글맘'이라지만, 이게 순한국어로는 '애딸린 과부(혹은 처녀)'다. '치매' 혹은 '싱글맘'이 선호되는 까닭은 그 반대편에 위치한 다른 표현들인 '노망'이나 '애딸린 과부(처녀)'가 주는 공격성을 상대적으로 둔화하기 때문이다. 뭐 그렇잖나? '노망' 혹은 '애딸린 과부(처녀)'라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하가 그득한데, 그에 견주어 '치매'는 어쩐지 교양 좀 있어 보이고, '싱글맘'은 모더니스틱까지 하니 말이다.  


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의 가치 이해하기 프로그램...치매를 가장 쉽게 표현하는 다른 말은 '노망'이다. 연합DB



이와는 결이 약간 다르긴 하나, '위안부(慰安婦)'라는 말은 그 자체 참으로 기분나쁜 말이거니와, 그래서 이에 대한 영어 표현을 보면 항상 "comfort woman"이라 해서 싱글 쿼터 혹은 더블 쿼터를 단다. 왜냐?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순한자어라 좀 어렵게 보여서 그 정확한 개념어가 뇌리게 잘 남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위안부'라 쓸 적에는 별 표시 없이 저리 써도 용납이 된다. 


하지만 이걸 영어로 'comfort woman'이라 하면, 영 기분 더럽다. 상대방을 기쁘게 한다는 소위 '기쁨조'를 의미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도저도 다 싫다 해서, 그리고 그 실상을 온전히 전한다 해서 새로 등장한 말이 '일본군 성노예'인데 이걸 영어로는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한데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군 성노예'라는 말을 다름 아닌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렇지 않겠는가? 성노예라고 하면, 그 이미지가 너무 원초적으로 강렬하게 와닿지 아니한가? 그때는 그래서 차라리 위안부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 개념이 지칭하는 바는 같은데, 어떤 말, 어떤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왕청나게 무게감과 이미지가 달라진다. 내가 기자 교육 받을 적에 세뇌하는 지침 중 하나가 동의어 반복을 피하라는 말이 있거니와, 예컨데 '역전앞'은 틀리니 '역전驛前'이라 쓰야 한다고 강박 윽박하곤 했으니, 아마 지금도 그러한 줄 안다. 하지만 이는 아주 틀린 생각이다. '前'과 '앞'은 다르다. 그 한자어 새김이 '앞'이라 해서 '역전앞'이 역앞앞'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발상을 해야 한다. '역전'이라 하면, 그것이 순한자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닿지 않으니, 이른바 동의어를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를 온전히 하고자 해서 나온 발상이 '역전앞'인 것이다. 


저리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어학을 모른다. 언어학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철학적으로 궁구하는 학문이며, 왜 틀리는지를 구명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리고 단군이 이 땅에 디딘 이래 '같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은 말 혹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지칭하는 개념을 표현하는 '비슷한' 말 혹은 단어가 있을 뿐이다. '앞'과 '前'은 전연 다른 말이다. 

언젠가부턴 내가 그날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패턴 중 하나로 내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 우선 '과거의 오늘'을 죽 훑어보는 버릇이 들었으니, 그러는 까닭은 괜한 회한 추억에 잠기기 위한 청승보다는 실은 그에서 혹 지금의 내가 건질 것이 없나 하는 이삭줍기 심정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내지르는 타입이라, 그때그때 생각나는 바를 그런 데다가 싸질러놓는 일이 많고, 그런 것 중에 지금 보아도 여전히 쓸 만한 곳이 아주 가끔 발견되거니와, 그것을 건져내어 다른 데다 써먹을 요량으로 되새김질을 하는 버릇이 들었다. 



한데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사진을 만난다. 촬영 혹은 게재시점을 보니 2013년 10월 30일 오늘이다. 딱 5년 전이요, 주인공은 걸그룹 미쓰A다. 뭐 A를 그룹명에 박은 까닭이야, 아마 최고가 되겠다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로대, 요새는 그 실상이 어떠한지 내가 알 길이 없으나, 저 무렵 그 멤버 중에서도 내 바로 옆 저 여식이 수지라 해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며, 이른바 '여신'으로 추앙된 무렵이었다. 내가 무에 걸그룹을 알며, 더구나 그네들 멤버가 누군지 구별하겠는가마는, 아무튼 저 수지가 그리 유명하니, 그가 저날 인터뷰를 위해 회사를 방문한다는 소문이 나자, 나 역시 그리 유명한 친구라면 기념 촬영 한장 해 두어야지 했던 것이다. 

한데 같은 날 다른 포스팅을 보면, 그런 내 낌새를 눈치챘는지, 도착 직전, 오늘 메이컵을 안 했으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 사항이 문화부에 전달됐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간, 보통 저러다가 막상 현장 분위기 휩쓸리다 보면, 대개 사진 촬영을 에라이 모르겠다 하면서, 넘어가는 일이 많으니, 오늘도 그러리라 막상 기대한 것인데, 다행히 그리 되어, 저 엉거주춤 어정쩡 사진 한 장 달랑 건졌다. 저때 저 친구들이 어떤 일로 우리 공장을 찾았는지는 내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항용 다른 유사 사례를 견줄 적에 아마 신보 혹은 새 앨범을 발표했을 것이며, 그 홍보 일환이었을 것이다. 

저 무렵 나는 문화부 넘버2였을 것이고,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해고를 포함한 갖은 곡절을 겪고는 문화부장이 되어 같은 부서에 복귀했다. 그새 달라진 풍광 많지만, 미스에이 얘기 나온 김에 저와 관련한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말하자면, 요샌 저와 같은 홍보를 위한 언론사 방문이 요새는 거의 자최를 감췄다는 것도 개중 하나다.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 변화를 추동한 원인은 무엇인가? 

언론과 대중스타, 더욱 정확히는 언론과 연예기획사간 힘의 균형에 대대적인 역전 현상이 그새 일어나 이제는 더는 걷잡을 수가 없다. 세계를 제패 중인 방탄소년단 BTS가 하는 모양새를 보니, 이 친구들 위상이 현격히 달라져, 국내 언론은 취급도 하지 아니하고, 세계 유수의 미디어만 개려서 접촉함을 본다. 이번 월드투어를 보면 미국에서는 3대 공중파 방송을 일부러 골라 그들과 인터뷰하거나 그네들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유럽에 건너가서는 BBC와 마주앉았다. 

뿐인가? 겸상하는 상대도 이젠 대통령도 면담키 어렵게 되었다. 물론, 그네들 모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리고 청와대가 부르면 즉각 달려간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웬만한 대통령이 불러도 재네들 콧방귀도 안 뀐다. 저런 그들은 트럼프가 부르면 아니가겠는가? 당연히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아베가 부르면? 안 간다. 왜? 아베 불러 갔다간, 아마 저들은 대한민국에서 활동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정부 요청이었을 것이 뻔한데, 저들은 미국투어 중에는 UN에 서서, 그 리더 RM이라는 친구가 감동적인 영어 연설 LOVE YOURSELF를 하는 장면을 나 역시 똑똑히 목도했으니, 저들한테 어울리는 상대는 이미 유엔으로 변한 것이다. 그만큼 방탄소년단이 지닌 위상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었더래면, 그가 누릴 그 압도적인 위광을 BTS가 누리는 것이다. 

내가 미쓰에이와 기념 촬영을 할 저 무렵에 이미 미디어와 대중스타간 그 힘의 불균형이 압도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무렵이다. 저때 이미 웬간한 대중스타는 언론사에서 인터뷰 등을 위한 각종 명목으로 불러도 이미 콧방귀도 끼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도 용케 미쓰에이와 그 여신이라는 수지가 그래도 우리 공장을 온 까닭으로 나는 저들의 주된 활동무대가 국내요, 무엇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공장 가요 담당 이은정 기자가 지닌 녹록치 않은 위상을 꼽는다. 이미 대중스타가 미디어에 대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구가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는 이제는 더는 거스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 전, 그러니깐 얼추 잡으면 지금으로부터 얼추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까진 힘의 우위가 압도적으로 언론에 있었다. 그에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중스타에 대해 언론이 지닌 힘의 크기는 더욱 증대하는 그래프 곡선 변화를 보인다.  시대가 대중소비사회로 진화할수록 대중스타와 그들을 거느린 연예기획사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들 기획사를 아직은 재벌이라 부르기는 힘들겠지만, 국내를 호령하는 연예기획사는 그들이 곧 세계를 주름잡는 연예기획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무심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고 나는 본다. 

하긴 방탄소년단을 거느린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요새 관련 기사를 보면 툭하면 주식 자산 가치가 몇 조입네 한다. 현대자동차는 주가 혹은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는 모양인데, 그리하여 조선업 재판이 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급격히 높아지는데 그 빅히트는 고공행진을 거듭 중이다. 

이젠 그 어떤 대중스타도 언론사로 찾아오지 않는다. 언론사가, 기자가 애걸복걸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내가 수지를 보려면 이젠 공연장을 찾아가야 한다. 것도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암표 사서 가야 한다. 

더 냉혹히 말하자면, 문화부장이라 해서 이젠 하나도 재미가 없다. 저런 기분 내려거든 10년전, 혹은 20년전 부장질을 해야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청승을 떨어본다. 시대 변화를 못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느 구악, 구습 기자의 회한이라 해 두자. 

서태지와 아이들...개중에 존재감이 가장 없다고 했어야 할 양현석이 저런 인물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1. 아파트분양 2018.10.30 08:48 신고

    그때는 여신이 되기 전이였겠죠. 바지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분이 이젠 수지가 맞아서 상전벽해를 이루었군요.

종래 제국주의라면 총칼과 가톨릭 신부 혹은 개신교 목사를 앞세운 침략과 약탈이 무기였다면 지금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제국주의를 제창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우리는 인정하기 못내 싫을지 모르나 과거 제국주의 팽창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물관으로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무척이나 높다. 루브르 브리티시 뮤지엄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 피식민을 경험한 국가 박물관은 거의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국 문화의 영광을 포장하기 마련인데 그런 까닭에 내셔널리즘 색채가 유난히 짙거니와 이를 웅변하는 곳이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그리고 중국의 모든 박물관이다. 


도쿄국립박물관



동경국립박물관 부속 건물 중엔 동양관이 있다. 말이 동양관이지 아시안 갤러리만 표방하지 않아 이곳엔 이집트실이 있다. 동양관이니 중국실 인도실 중앙아시아실 그리고 한국실도 있다. 한데 이중에서 가장 초라하고 가장 볼품없는 곳이 한국실이다. 전시품은 초라하기 짝이 없어 도자기만 해도 요강단지 같은 유물에 유기그릇 몇 점이 전부다. 이런 곳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유물이 반드시 들어가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말한 내셔널리즘 경계 정신과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유독 한국실만 왜 이 꼴이 벌어지는가는 생각할 대목이 있다. 저네들이라고 저 따위 유물만 전시하고 싶겠는가? 실제 저보다 훨씬 뽀대나는 유물이 적지 않음에도 전시품 꼬라지를 보면 화딱지가 난다. 왜 저런가?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의 중국실



뽀대 나는 유물 전시하기가 무섭게 약탈문화재 환수를 외치는 자들이 들이닥쳐 내놓으라 겁박하기 일쑤다.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전시 저들이라고 할 맛이 나겠는가? 이런 논란에 휘말린 유물들이 슬그머니 다 전시장에서 사라졌다. 나는 기왕 한국실이 존재하는 한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 중 뽀대나는 것들 골라 정기적으로 대여해 교체전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져오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는 우리 생각을 개조해야 한다. 과거의 약탈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 역시 우리것만 자랑하는 나찌즘에서 탈피해 우리가 자랑하는 것만큼의 문화가 다른 지역에도 있었음을 대한민국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일본고대문화...우리가 다 준 것으로 알고, 또 그리 선전하나 실상과는 전연 딴판이다. 죠몽 야요이 도기 봐라. 고분시대 유물 봐라. 황남대총 부럽지 않은 유물들이다. 불교? 백제에서 줬다고? 그걸로 저들이 구가한 불교문화 설명 못 한다. 


저 정수를 제대로 맛보게 해야 한다. 비단 일본 중국 뿐이랴? 새로운 제국주의는 박물관을 개혁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 국립박물관 부억데기로 전락한 아시아관은 세계 문명관으로 독립해야 한다. 우리가 빌려주고 우리가 대여해야 한다. 거죽데기 몇개 갖다 놓고는 이게 일본 문화요 중국문화요 인도 문화라는 사기 그만 쳐야 한다. 


*** 이상은 3년 전 오늘, 2015년 10월 22일, 내 페이스북 계정 포스팅으로, 그 무렵 나는 도쿄에 있었다. 

저에서 말한 환수운동 말이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말에 고려건국 1100주년 맞아 대고려전 준비하면서 일본이 소장한 고려 관련 유물을 대여하려 했더니, 한국정부가 반환을 보증해야 한다는 문서를 요청해서 난항을 겪는 중이다. 대마도에서 한국 도둑놈들이 강탈한 문화재를 한국정부가 반환하지 않는 데다, 걸핏하면 약탈해간 것이니 내놓으라 겁박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1. 연건동거사 2018.10.22 16:38 신고

    좋은 말씀입니다.

  2. 아파트담보 2018.10.22 20:20 신고

    일본 중국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앞을 다투어 자기 유물을 내놓는 것과 비교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유사한 현상이나 한국관이 초라한 이유는 반환이나 왜곡보다는 막상 내놓을게 없거나, 한국 정부의 상대적 무관심, 무감각 때문이 아닐까 싶던데 말이죠.


우리 공장 어느 중년은 출근길 매일 이 모습이라, 살피니 아마도 집으로 배달하는 중앙일보를 들고는 공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담배 한 대 꼬나 물고는 죽죽 훑어간다. 출근 시간이 겹치는 날이 많아, 어제도 저 장면 조우하고는 힐끗힐끗 쳐다보며 "문화면 좀 먼저 봅시다" 해서 십초만에 후다닥 제목만 보고 치웠다.


이 모습 찍으니 멋쩍게 웃으며 하는 말이 "이거 올리지 마소" 하는데, "아시잖소 내 사전에 초상권은 없으니 고소하건 말건 맘대로 하소" 하고 파안대소하는데, 찍은 장면 다른 사람이 씩 보더니, "와 멋있구만. 이건 발행해야 해" 라고 맞짱구 치는 게 아닌가? 그에 격발하고 힘을 받아 이걸 자료로 구워 삶아 내 하고픈 말을 하니, 저 희생에 복이 있을진저. 


이젠 뉴스를 저런 식으로 소비하진 않거니와, 지하철에서 신문 보는 승객 멸종한지 오래라, 나아가 그를 통한 소비 행태만 해도 당장 그 첫 소비자 중 한 그룹에 속하는 나같은 기뤠기만 해도 요새는 신문 한통 보는데 오분이면 족하다. 


휙휙 넘기며 제목만 보고는 던져버리니 개중 어떤 것으로 우리가 다루진 않았으되 다룰 가치가 있는 듯 보이는 기사 역시 제목과 그 본문 한두줄만 보고 만다. 이런 식으로 조간 신문 기준 그 여덟종인가 아홉종 독파하는데 삼십분이면 너끈하거니와, 그 무수한 뉴스가 지금 이 시대 소비되는 패턴 그 한 단면이다.

내가 항용 말하거니와 신문과 방송의 퇴조가 결코 뉴스의 퇴조와 동일할 수 없어 외려 그 반비례 현상이 극심하거니와 종래 뉴스 시장을 독점한 저 두 미디어 행태가 파괴함으로써 뉴스시장은 까꾸로 폭발적 신장세를 거듭해 지금은 초동급부도 이른바 뉴스를 소비하는 당당 주체로 거듭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날 박근혜와 최순실은 저들 초등생이 씹는 껌이 되었거니와, 단군조선이래 뉴스시장 활황이 이토록 팽창한 시대는 없었다.

대학의 위기, 교수의 위기, 학과의 위기를 그 학문의 위기와 등치하는 사기극이 불과 얼마 전까지 횡행하고 그 여진이 여직 남아있긴 하나, 난 언제나 저 외침이 사기행각에 다름없다 질타했다. 인문학이 이리도 융성한 시대는 르네상스에도 없었고, 영정조 문예부흥기도 비할 바 아니며, 건륭성세도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 교수, 그리고 학과의 삼두마차가 구축한 그 강고한 카르텔이 해체함으로써 진정한 인문학 홍수 범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 잊어서는 안 된다. 

신문을 보지않을지언정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 시대는 단군조선 이래 없었다.

그러니 울지 마라.

아참...사진 속 주인공은 연합뉴스 디지털융합본부 부본부장 최재영 국장이며, 사진은 연출이 아님을 밝힌다.  


  1. 아파트담보 2018.10.19 21:49 신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무협 작가, 김용은 사실 소설가라기보다는 언론인이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홍콩에서 「명보」라는 신문을 창간했죠. 그리고는 신문을 많이 팔기 위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는 「영웅문」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세 연작이 바로 「명보」에 연재된 소설들입니다.「명보」는 지금 홍콩에서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이 곧 파시즘인 증좌는 무수하나, 


민족정기民族正氣


만한 교의도 없다. 이만치 사형률 백프로를 자랑하는 단두대는 없다.

October 13, 2014 by TS Kim 



붙인다. 


민족정기가 독재 파쇼의 구호라는 사실, 그 반대편에서도 내세우는 민족정기. 

하지만 내가 늘 말하듯이 민족은 지고지순한 인류보편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이며 배제다. 

민족을 절대가치로 내세운 그 어떤 논리도, 운동도 나는 동참할 생각 없다.

그것을 잣대로 하는 그 어떤 과거청산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1. 아파트담보 2018.10.13 15:05 신고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 지리산 천왕봉을 신고합니다.

  2. 한량 taeshik.kim 2018.10.14 16:54 신고

    지리산도 있네요

근자 어떤 자리에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전보가 예정된 유병하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만났더니, 새삼스레 명함 한 장 달라면서 이르기를, "최근에 나온 책자들 좀 보내주겠다"고 한다. 며칠 뒤, 저들 책자 4종이 우편물에 묻어왔다. 뜯어보니 지난 8~9월 두 달간 경주 지역에서 열린 신라 및 박물관 방재 시스템 관련 학술대회 발표집이었다. 주최별로 보니 국립경주박물관이 주최한 것으로는 '6세기 신라 석비石碑의 세계' 한 종이 있고, 나머지는 유관 기관들이 개최한 것들이었다. 

지진방재 심포지엄이야 워낙 분야가 달라 논외로 치고, 이른바 정통 역사학, 정통 신라사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이 관여했을 법한 학술대회 발표집을 죽 훑어봤다. 저런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소식과 그 내용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듣기도 했고, 접하기도 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저들 학술대회는 국민 세금, 시민 세금이 재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해 주최측과 발표진에는 공공성을 우리가 요구하는 가장 주된 근거가 된다. 더 간단히 말한다. 발표진 혹은 토론진이야 지들 지적재산권 운운하며,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눠주는 자리라 생각할 지 모르나, 국민 세금 혹은 시민 세금 먹고 하는 발표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표진과 토론진을 훑어봤다. 예상한 대로였다. 각기 다른 기관이, 각기 시기를 달리하며 개최한 학술대회 세 곳에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겹치기 출연이다. 등장 맥락 역시 실로 다양해서 기조강연을 했는가 하면, 개별 발표 토론진에도 들어갔고, 종합토론 좌장에도 이름을 올린다. 더 놀라운 점은 시계추를 30년 전,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똑같은 사태가 벌어져 저 이름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저 이름, 30여년 전부터 신라사 관련 학술대회에 빠지지 않는다. 

더 놀라운 점은 그 30년 혹은 40년간, 신라를 바라보는 논조 자체가 단 한 군데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초지일관이라, 매양 그 소리가 그 소리라, LP판 틀어놓은 듯해서, 매양 그 말이 그 말이라 늘어진 카셋 테입으로 듣는 철 지난 유행가 같다. 무한 자기 표절을 일삼는 자들의 7080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것만 같다. 뭐 장고야 총질 일삼다 한동안 은퇴했다가 복귀하기나 해서 그 복귀가 반갑기야했지, 저들은 지난 수십년 간 단 한 순간도 은퇴를 모르는 영원한 현역이다.  

비단 그뿐인가? 신라사학계 원로 혹은 중진이라 분류되는 나머지 者들도 하등 다를 바 없어, 매양 그 소리가 그 소리만 하는 자들이다. 물론 그런 점을 고려해 주최측에서는 이른바 신진으로 분류될 만한 이들을 끼워넣어 팔기도 하며, 개중 그런 발표에서 더러 경청할 구석이 있기는 하거니와, 저들 발표 중에서도 그런 눈길 끌 만한 것으로 한둘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매양 하는 말이 신구 조화를 이루어 신라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니 마는 소리를 곁들이기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반으로 보아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학계 소위 신진이니 혹은 그 중진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들이 발표 혹은 토론을 통해 표출한 견해들이란 것을 훑어봐도, 이런 발표 이런 토론에 왜 내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한반복 재생하는 그런 소리, 나는 이젠 치를 떤다. 더더구나 그런 발표 토론들에서 나는 공공성을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년의 신라사 연구는 금서룡今西龍과 말송보화末松保和의 무한 재생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금서룡이 A라 하고, 말송보화가 B라고 했던 것을 C 혹은 D라고 주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소위 문제의식이라 해서, 새로워진 것은 암것도 없고, 연구지평이라 해서, 食문화를 끌어들였다 해서 그 지평이 넓어졌는지 모르나, so what이라는 물음에는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다. 뭐 신라 사람들이 김치를 먹은 사실이 밝혀진다 한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새로운 금석문이 발견되면 무엇하겠는가?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지들이 보고 배운 바로 그것으로써, 그 새로움을 시종일관해서 그 시각으로써 재단하고 끌어대는데 이리해서 무슨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겠는가? 

물이 고이면 썩는 법이다. 그 썩은 물에서 풀이 자라났다. 녹조라는 풀이. 




《실록》이랑 《대장경》 분량이 얼추 비슷하다고 안다. 이거 뭐 통독하기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맘 먹으면 1년 안에 통독은 한다. 글자수 계산해서, 하루에 얼마 읽어 몇 년 걸린다느니 하는 말들 이 분야 전업적 연구자들이 매양 하는 소리지만, 다 개소리다. 


《사기》 《한서》 이래 《명사》 《청사》에 이르기까지 《24사(二十四史)》 혹은 《25사(二十五史)》? 이 역시 생각보단 그리 많은 시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번역본 기준이다. 한문 원전은 시간이 엄청 잡아먹고, 더구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독하고 넘어가는 대목이 무수하지만 번역본이라면 다르다. 


그 방대한 《자치통감》? 권중달 역본 30권 완독하는데 두 달이 채 안 걸렸다. 번역한다고 권 선생이 십년은 더 걸렸겠지만, 두 달만에 해치운다. 저들이 생각보다 그리 거창하지 않다. 막상 읽어보면 암 것도 아니다. 손대기가 겁이 날 뿐이지, 막상 손대면 암것도 아니어서 술술 넘어간다. 

 

정작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기겁한 텍스트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였다. 이건 다른 무엇보다, 그 복잡한 러시아 이름 때문이었는데, 정식 이름과 애칭이 따로 있고, 성과 이름 구별이 쉽지 않으며, 그런 까닭에 등장인물 계보가 언제나 헷갈려서, 누가 아비이고 누가 아들이며 딸인지 알 수도 없는 일이 허다하며, 그 등장인물이 500명을 상회하는 데다, 심지어 개까지 애칭이 있고, 정식 이름이 따로 있으며, 그런 개까지 독백을 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단 하나 분명한 점은 번역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번역의 정확성 여부는 언제나 논란거리지만, 그럼에도 소위 괜찮은 번역본만 있으면, 그 텍스트 소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더구나 그것을 발판으로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올 발판을 마련하며, 나아가 나 자신이 그것을 교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런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이들, 예컨대 한국고전번역원이며, 세종대왕기념사업회며, 권중달 선생 같은 이는 길이길이 칭송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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