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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 선생 글이다. 


賦得白雲向空盡

‘백운이 하늘로 사라지다’를 제목으로


白雲生遠岫, 흰 구름이 먼 봉우리에서 생겨나

搖曳入晴空. 이리저리 흔들리며 맑은 하늘로 들어가니

乘化隨舒卷, 자연을 따라 마음대로 펴졌다가 말리고

無心任始終. 무심히 내맡겨지는 대로 생겨났다 없어지네

欲銷仍帶日, 사라지려 하다가도 태양을 가리고

將斷不因風. 바람이 없어도 절로 끊어져

勢薄飛難定, 세력이 약하니 정처 없이 날아다니고

天高色易窮. 하늘이 높으니 모습이 쉽게 바뀌네

影收元氣表, 그림자는 원기 밖으로 모이고

光滅太虛中. 빛은 태허 가운데 소멸하는구나

倘若乘龍去, 만약에 용을 타고 갈 수 있다면

還施潤物功.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공덕을 베푸리


초욱(焦郁)은 802년 경양현위(涇陽縣尉)로 있었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다. 현재 『전당시』에 시 3수가 남아있다.

* 〔심덕잠 평석〕각화의 흔적이 없으니 시첩시 가운데 명작이다.(刻畵無痕, 試帖中名作.)

서성 선생 글이다. 


이우중(李虞仲·772~836)은 자가 견지(見之)이며, 조군(趙郡·하북성 趙縣) 사람이다. 시인 이단(李端)의 아들. 806년 진사과에 급제했으며 곧 이어 박학굉사과에도 급제하여 홍문교서(弘文校書)가 되었다. 812년 태상박사가 되었으며, 821년 검남서천절도 판관이 되었다. 822년 이후 병부원외랑, 사훈랑중, 병부랑중 겸 지제고, 중서사인을 역임하고, 830년 화주(華州)자사로 출임했다. 833년에 다시 조정에 들어가 좌산기상시, 상서우승, 병부시랑, 이부시랑이 되었다. 인물됨이 간담(簡淡)하여 벼슬길이 통달했어도 뻐기지 않았다. 『신당서』「예문지」에 『이우중제집』(李虞仲制集) 4권이 저록됐지만 망일했다. 현재 시 1편 이외에 산문 18편이 『전당문』에 전한다. 『구당서』와 『신당서』 본전에 전기가 실려있다.


初日照鳳樓

새벽 해가 봉루를 비추다


旭景開宸極, 떠오르는 빛에 북극성 자리가 열리고

朝陽燭帝居. 아침 태양이 제왕의 거처를 밝혀라

斷霞生峻宇, 드높은 전각에서 끊어진 노을이 나오고

通閣麗晴虛. 연이어진 각도(閣道)에서 맑은 허공이 눈부셔라

流彩連朱檻, 흐르는 빛깔이 붉은 난간에 이어지고

騰輝照綺疎. 뛰어오르는 광휘가 성긴 창문을 비추는구나

寅賓趨陛後, 공손히 이끌어 계단 끝에 올라

羲駕奉車初. 희화(羲和)가 수레를 끌고 막 떠나려 하네

黃道龍光合, 어도(御道)에 임금의 은택과 합치되어

丹翬鳥翼舒. 붉은 햇살이 새의 깃털처럼 펼쳐지는구나

倘蒙廻一顧, 만약에 한 번 돌아보는 은혜를 입는다면

願上十煇書. 바라건대 ‘십휘’(十煇)의 글을 올리고 싶어라


* 『주례』 「춘관」에 말했다. “시침씨가 태양의 열 가지 기운을 관장하며, 요기와 상서를 관찰하고 길흉을 판별한다.” 시침은 관직 이름이고 煇(휘)은 태양 주위의 기운이다.(周禮春官: “眡祲掌十煇之法, 以觀妖祥, 辨吉凶.” 眡祲, 官名. 煇, 日旁氣數也.)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한준(韓濬)은 강동(江東, 지금의 화동 지역) 사람이다. 774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시인 이단(李端)과 사귀었다. 그밖의 사항은 미상. 현재 시 1수가 남아있다.


淸明日賜百僚新火

청명일에 백관에게 새 불을 하사하다


朱騎傳紅燭, 말을 탄 관리가 붉은 촛불을 전해주고

天廚賜近臣. 궁중의 주방에서 근신들에게 음식을 베푸니

火隨黃道見, 불이 어도(御道)를 따라 나타나고

煙繞白楡新. 연기가 느릅나무에 새로워라

榮曜分他室, 눈부신 빛이 여러 집으로 나누어져

恩光共此辰. 은혜의 밝음이 이 날을 함께 하여라

更調金鼎味, 다시금 청동 솥에 맛을 조화시키고

還暖玉堂人. 더불어 옥당의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구나

灼灼千門曉, 환하디 환하게 문마다 새벽이 온 듯하고

輝輝萬井春. 밝디 밝게 집마다 봄이어라

應憐螢聚者, 반디를 모아 책 읽는 이 사랑해야 하니

瞻望及東鄰. 불이 있는 동쪽 이웃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상리(常理)는 천보 연간 이전에 활동한 시인이란 사실 외에 그밖의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시 2수가 당대 천보 연간(742-755)에 이강성(李康成)이 편찬한 『옥대후집』(玉臺後集)에 실렸다.


古別離

고별리


君御狐白裘, 임자는 호백구(狐白裘)를 입고

妾居緗綺幬. 첩은 담황색 비단 휘장에 살지요

粟鈿金夾膝, 좁쌀 모양이 새겨진 황금 협슬(夾膝)

花錯玉搔頭. 꽃문양이 파여 있는 옥 비녀

離別生庭草, 이별 후에 마당에는 풀이 자라는데

征衣斷戍樓. 출정나간 후엔 수자리 소식 끊어졌어요

蠨蛸網淸曙, 갈거미가 이른 새벽에 거미줄을 치고

菡萏落紅秋. 연꽃이 붉은 가을에 시들어 떨어져요

小膽空房怯, 담이 작아 빈 방에 들어가기 겁이 나고

長眉滿鏡愁. 긴 눈썹이 거울 속 가득 수심이어요

爲傳兒女意, 여인의 뜻을 전할 뿐이니

不用遠封侯. 멀리 나가 공을 세운다 해도 바라지 않아요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觀慶雲圖

‘경운도’를 보고


   이행민(李行敏)


縑素傳休祉, 하얀 명주가 아름다운 길상을 전하여

丹靑狀慶雲. 단청으로 상서로운 구름을 그렸어라

非煙凝漠漠, 안개가 아니면서 막막히 엉겨있고

似蓋乍紛紛. 산개(傘蓋) 같으면서 갑자기 분분히 흩어지네

尙駐從龍意, 구름은 용을 따른다는 뜻을 넣었고

全舒捧日文. 해를 받드는 형상을 펼쳤구나

光從五色起, 빛은 오색 구름에서 일어나고

影向九霄分. 그림자는 구천을 향해 흩어지네

裂素留嘉瑞, 비단을 자른 화폭에 상서로움을 남겼으니

披圖賀聖君. 그림을 열어보고 성군을 축하하네

寧同窺汗漫, 광대한 하늘을 바라본 것과 같으니

方此睹氛氳. 여기에서 무성한 기운을 목도하노라


〔해설〕 ‘경운도’를 보고 지은 제화시(題畵詩)이다. 그림을 사실과 같이 여기는 고대 시인의 사유가 잘 드러났다. 제재 자체가 상서(祥瑞)를 의미하므로 밝은 정치로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이미지를 허실(虛實)이 잘 어울리게 써야 했다. 790년 진사과 시험에 제출한 시첩시로, 당시 29명이 급제했다.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나양(羅讓·767~837)은 자가 경선(景宣)이며, 월주 회계(會稽·절강 소흥시) 사람이다. 경조윤을 지낸 나향(羅珦)의 아들. 801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806년 재식겸무명어체용과(才識兼茂明於體用科)에 급제하여 함양위(咸陽尉)에 제수됐다. 809년 부친이 사망하자 여러 해 동안 상을 지키며 징초에 응하지 않았다. 나중에 회남절도사 이부(李鄜)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나중에 감찰어사, 전중시어사, 이부원외랑, 사봉랑중 등을 역임했다. 831년 급사중에서 복건관찰사로 출임하고, 다시 들어와 좌산기상시가 되다. 836년 강서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죽었다. 《신당서》에 저작 30권이 있다 했지만 나중에 망일되었다. 현존하는 작품은 시 2편, 부 3편, 대책(對策) 1편 뿐이다. 신·구《당서》에 열전이 있다.


閏月定四時

윤달로 사시를 정하다


月閏隨寒暑, 추위와 더위를 따라 윤달이 오니

疇人定職司. 역법 보는 관리가 직무를 정하였네

餘分將考日, 쌓여진 날수를 가지고 생각하고

積算自成時. 모아서 계산하니 절로 사시를 이루네

律候行宜表, 절후가 시행되며 적절히 나타나고

陰陽運不欺. 음양이 운행되며 틀리지 않아

氣薰灰琯驗, 땅의 기운이 일어 율관과 증험되고

數扐卦辭推. 시초를 손가락에 끼워 괘사를 추측하네

六歷文明序, 여섯 가지 역법으로 일월의 순서가 생기고

三年步暗移. 삼년 동안 모르는 사이 윤달이 만들어지네

當知歲功立, 응당 알아야 하니, 한 해의 수확은 

唯是奉無私. 공평무사함을 받들어서 이루어졌음을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독고수(獨孤綬)는 77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박학굉사과에도 급제하였다. 그밖의 사항은 미상. 독고수는 부(賦)와 송(頌)에 뛰어났는데, 「방순상부」(放馴象賦)는 덕종(德宗)이 격찬했다. 그의 작품은 『전당시』에 시 2수가 실려 있고, 『전당문』에 문장 24편이 전한다.


藏珠於淵

옥을 연못에 감추다


至道歸淳朴, 최고의 도는 순박함으로 돌아가는 것

明珠被棄捐. 보옥을 주웠다 해도 버려야 하리라

失眞來照乘, 진솔함을 잃으면 수레를 비추는 보옥에 불과하지만

成性却沈泉. 천성을 이루면 오히려 샘물 속에 잠긴다네

不是靈蛇吐, 뱀이 수후(隋侯)에게 물어준 게 아니라

猶疑合浦旋. 합포(合浦)로 진주가 돌아온 것과 같으니

岸傍隨月落, 강가 언덕에 달과 함께 떨어지고

波底共星懸. 파도 아래 별과 함께 걸렸어라

致遠終無脛, 발이 없어도 결국은 멀리 가고

懷貪遂息肩. 가지고 있지 않아도 결국 탐욕을 품는다네

欲知恭儉德, 근검의 덕을 알려고 한다면 

所寶在唯賢. 주옥이 아닌 현능한 사람을 보배로 여겨야 하리


제목 藏珠於淵(장주어연)은 획득한 옥을 원래의 연못으로 돌려보내다는 뜻. 『장자』「천지」(天地)에 나오는 말이다.


〔해설〕 『장자』의 사상을 시화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은 황금을 얻어도 산에 묻어두고 옥을 얻어도 연못에 숨겨두니, 재화로 이익을 구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若然者, 藏金於山, 藏珠於淵, 不利貨財, 不近貴富.) 사람들의 욕망이 결집하는 보옥을 통해 이를 버림으로써 순박함에 이를 수 있다는 철학을 형상화하였다. 말미에서 재물이 아닌 현능한 인재를 제시함으로써 『장자』의 본뜻에서 유리되었지만, 다른 한편 한사(寒士)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였다.

이 역시 서성 선생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가져왔다. 


우윤궁(于尹躬)은 于允躬이라고도 쓴다. 경조 만년(萬年·서안시) 사람으로 부친 우소(于邵)도 문명이 있었다. 대력 연간(766~779)에 진사과에 급제한 후, 807년 중서사인에 올랐고, 811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811년 5월 동생 죄에 연좌되어 양주자사(洋州刺史)로 폄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현재 시 1수가 전한다.


南至日太史登臺書雲物

동짓날 태사국 관리가 대에 올라 경물을 기록하다


至日行時令, 동지에 월령을 시행하니

登臺約禮文. 대에 올라 예식을 거행하여라

官稱伯趙氏, 관직은 백조씨(伯趙氏)라 칭하고

色辨五方雲. 색으로 오방의 구름을 분별하네

晝漏聽初發, 낮의 물시계가 막 시작하는 걸 듣고

陽光望漸分. 태양의 빛이 점점 옮겨가는 걸 보네

司天爲歲備, 천문을 관장하여 풍년을 준비하여

持簡出人群. 문서를 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구나

惠愛周微物, 혜택이 미물에게도 두루 미치어

生靈荷聖君. 모든 생령들이 어진 군주의 은혜를 입어라

長當有嘉瑞, 응당 오래도록 아름답고 상서로워

鬱鬱復紛紛. 구름의 기운이 진하고 또 분분하여라


이 시 역시 시첩시네요. 시첩시는 보통 계절의 운행이나 전아한 이미지, 나라의 태평과 관련된 제목을 쓰더군요.

서성 선생 페이스북 포스팅을 업어왔다. 원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약간 손을 대고, 명백한 오타는 바로잡았다. 나아가 간혹 내가 새로 보강한 대목도 있다.  


두원영(杜元穎·769-833)은 경조(京兆) 두릉(杜陵·서안시) 사람이다. 800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806년에는 박학굉사과에 급제했으며, 816년 무재이등과(茂才異等科)에 급제했다. 젊어서부터 절도부에서 두 번 징초(徵招)받았다. 817년 좌습유에서 시작해 태상박사, 우보궐을 거쳐 820년 중서사인에 올랐다. 821년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가 823년 검남서천절도사로 출임(出任)했다. 당시 황제 경종(敬宗)이 사치하자 두원영은 적극적으로 진기한 물건을 색출하고, 심지어 군량까지 헐어 상납했기에 백성과 병사들 원망을 샀다. 829년 성도(成都)가 남조(南詔)한테 침략당해 크게 피폐해지니, 그 책임을 물어 순주사마(循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4년 후 폄적지에서 죽었다. 두원영은 백거이, 한유와 창화(唱和)하기도 했으며, 특히 율시에 뛰어나 백거이가 ‘시가율수’(詩家律手)라 칭하기도 했다. 『신당서』에 『오제』(五題) 1권, 『원화변방략』(元和辨謗略) 10권, 『헌종실록』 40권 등이 있다고 했지만, 이들은 나중에 모두 산일(散逸)해 전하지 않는다. 현재 남은 시문이라 해 봐야  《전당시》에 시 1수, 《전당문》에 문장 4편, 《당문습유》에 문장 1편이 있을 뿐이다. 신·구당서에 그의 전기가 있다. 아래는 《全唐詩》 권제464에 수록됐다. 


玉水記方流

옥은 꺾어져 흐르는 강물 아래서 나온다


重泉生美玉, 깊은 물에서 옥이 나오니

積水異常流. 강물의 흐름이 보통과 달라라

如見淸堪賞, 맑아서 완상할 만하니

因知寶在幽. 주옥이 깊은 곳에 있음을 알겠어라

斗廻虹氣見, 북두성이 돌아가니 무지개 기운이 드러나고

磬折紫光浮. 경쇠처럼 꺾어지니 자줏빛이 떠오르네

中矩諧明德, 직각자와 맞으니 밝은 덕과 어울리고

同方叶至柔. 네모꼴과 어울려 부드러움이 조화되어

類圭才有角, 규옥의 종류는 모서리처럼 재주를 드러내지만

寫月讓成鉤. 달과 같은 주옥은 갈고리처럼 겸양을 이룬다네

異寶雖無脛, 기이한 보옥이 다리가 없지만

逢時願俯收. 때를 만났으니 거두어지기를 바라노라


〔해설〕 보옥과 명주 생산을 둘러싼 고대 관념을 시화했다. 강물이 직각으로 꺾어지면 그 아래에서 각이 진 옥이 나오고, 강물이 굽이돌면 그 아래서 둥근 명주가 나온다 했다. 시는 이를 천지 기운과 사람 품성과 연관해 보옥의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800년에 진사과에 출제된 시제로, 같은 해 급제한 백거이 시도 남았으니 다음과 같다. 


良璞含章久,寒泉徹底幽。

矩浮光灩灩,方折浪悠悠。

淩亂波紋異,縈回水性柔。

似風搖淺瀨,疑月落清流。

潛潁應傍達,藏真豈上浮。

玉人如不見,淪棄即千秋。



나주목사 내아



한시, 계절의 노래(165) 


흥화사 정원 정자에 쓰다(題興化寺園亭)


  당 가도 / 김영문 選譯評 


천 집을 허물어

못 하나 파서


복숭아 오얏 심지 않고

장미 심었네


장미꽃 지고

추풍이 불면


정원 가득 가시 남는 걸

비로소 알리


破却千家作一池, 不栽桃李種薔薇. 薔薇花落秋風起, 荊棘滿庭君始知.


돈과 권력을 종교로 떠받드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비애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터전을 빼앗아 자신을 과시하기에 급급한다. 천 명이 사는 집을 허물어 자신만을 위한 관상용 연못을 만든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갑질에 전념한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 시인은 또 복숭아나 오얏을 심으면 봄에는 꽃을 감상할 수 있고, 여름에는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여긴다. 장미는 열매가 아니라 가시가 있는 꽃이다. 이 때문에 시인은 권력자들이 연못 주위 울타리에 장미를 심어 가시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화려한 꽃만 감상한다고 풍자한다. 하물며 그곳이 흥화사라는 절임에랴! 장미는 화려한 꽃만 피울 뿐 달콤한 과일은 맺지 않으며, 꽃이 지고 가을바람이 불면 가시넝쿨로 변한다는 것이다. 도리(桃李)와 장미를 철저하게 민본적 입장에서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현대의 루쉰도 장미 꽃이 아닌 가시에 주목했다. 그는 3.18참사로 자신의 제자들이 학살되자 「꽃 없는 장미(無花之薔薇)」라는 글을 썼다. 화려한 장미꽃에서 꽃은 다 추려내고 가시만 남긴 것이다. 그가 남긴 가시는 죽창보다 준엄했다. “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자리만 차고 앉아 복지부동하며 알량한 궤변으로 본질을 왜곡하지 말라. 복지부동과 보신주의도 비열한 갑질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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