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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 내아



한시, 계절의 노래(165) 


흥화사 정원 정자에 쓰다(題興化寺園亭)


  당 가도 / 김영문 選譯評 


천 집을 허물어

못 하나 파서


복숭아 오얏 심지 않고

장미 심었네


장미꽃 지고

추풍이 불면


정원 가득 가시 남는 걸

비로소 알리


破却千家作一池, 不栽桃李種薔薇. 薔薇花落秋風起, 荊棘滿庭君始知.


돈과 권력을 종교로 떠받드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비애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터전을 빼앗아 자신을 과시하기에 급급한다. 천 명이 사는 집을 허물어 자신만을 위한 관상용 연못을 만든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갑질에 전념한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 시인은 또 복숭아나 오얏을 심으면 봄에는 꽃을 감상할 수 있고, 여름에는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여긴다. 장미는 열매가 아니라 가시가 있는 꽃이다. 이 때문에 시인은 권력자들이 연못 주위 울타리에 장미를 심어 가시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화려한 꽃만 감상한다고 풍자한다. 하물며 그곳이 흥화사라는 절임에랴! 장미는 화려한 꽃만 피울 뿐 달콤한 과일은 맺지 않으며, 꽃이 지고 가을바람이 불면 가시넝쿨로 변한다는 것이다. 도리(桃李)와 장미를 철저하게 민본적 입장에서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현대의 루쉰도 장미 꽃이 아닌 가시에 주목했다. 그는 3.18참사로 자신의 제자들이 학살되자 「꽃 없는 장미(無花之薔薇)」라는 글을 썼다. 화려한 장미꽃에서 꽃은 다 추려내고 가시만 남긴 것이다. 그가 남긴 가시는 죽창보다 준엄했다. “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자리만 차고 앉아 복지부동하며 알량한 궤변으로 본질을 왜곡하지 말라. 복지부동과 보신주의도 비열한 갑질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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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 계곡


한시, 계절의 노래(153)*


산속(山中)


 당 사공도 / 김영문 選譯評 


새들은 고요한 곳에서

울기를 좋아하고


한적한 구름은 밝은 달을

시기하는 듯 하구나


세상 속 온갖 일은

내 일이 아니고


가을이 왔는데도

시 못 지어 부끄러울 뿐


凡鳥愛喧人靜處, 閑雲似妒月明時. 世間萬事非吾事, 只愧秋來未有詩.


사공도는 당나라 말기에 활동한 관료이자 시인이다. 당시 당나라는 황소(黃巢)의 난 등으로 멸망을 향해 치달려가고 있었지만 힘없는 지식인 사공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결국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휴휴정(休休亭)을 짓고 은거한 후 도가와 불가의 경전을 읽으며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애제(哀帝)가 시해되자 음식을 끊고 향년 72세로 순절했다. 『구당서(舊唐書)』에는 「文苑傳」에, 『신당서(新唐書)』에는 「탁행전(卓行傳)」에 그의 전기가 편입되어 있다. 그런데 사공도가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친 까닭은 기실 그의 시나 절개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었다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때문이다. 시를 품평하는 24가지 풍격을 4언시 형식으로 수묵 산수화처럼 풀어냈다. 풍격을 이론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형상적으로 그려낸 『이십사시품』은 이후 중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시·화(詩·畵) 비평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풍격이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발산하는 총체적 심미 스타일 혹은 미적 아우라를 가리킨다. 가령 어떤 시가 청신(淸新)하다고 할 때 그 청신함은 전체 시에서 풍겨 나오는 미적 아우라다. 이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이 아니라 인상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시를 청신하다고 했을 때 그것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풍격 비평은 무시당하여 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풍격 비평은 인상적이고 주관적인 단계를 넘어서서 작자, 작품, 독자의 소양과 감상 능력이 서로 어우러지는 고도의 미적 감상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시의 풍격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한아(閑雅)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는 새가 울고 달이 밝으므로 한적하고, 전구(轉句)와 결구(結句)는 가을을 맞아 시 짓기에 전념하고 있으므로 우아하다. 그것을 합치면 한아(閑雅)가 된다. 물론 이는 나의 느낌이다. 옛날에는 이런 느낌에 풍격 용어를 입힌 문예비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느낌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과묵한 구라와 수다스러운 구라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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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51)


꿈속(夢中)


 당 사공도(司空圖) / 김영문 選譯評 


사랑하는 이 몇이나

이 세상에 남아 있나


노을 사다리 타고 올라

만났다 돌아왔네


봉래산 영주산을

길이길이 사들여서


우리 가족 함께 터 잡아

고향 산천 삼으리라


幾多親愛在人間, 上徹霞梯會却還. 須是蓬瀛長買得, 一家同占作家山. 


정말 몇 명 남지 않았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로 계산해도 헤어진 지 벌써 65년째다. 그 해에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올해 우리 나이로 66세가 된다. 그럼 그 부모의 연세는 어떻게 되나? 헤어질 때 최소한으로 잡아 20세였다 해도 무려 86세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온 최고령 어르신이 101세 할아버지이고, 그 다음이 99세 할머니다. 난리로 헤어진 자식을 만나려고 저렇듯 끈질긴 삶을 이어오신 듯하다. 어릴 때 부모와 헤어져 평생을 살아온 분들의 한이나, 본의 아니게 그런 자식을 고향에 두고 온 부모의 고통은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산가족 만남은 보고 있는 사람들 가슴조차 아리게 만든다. 인간의 하나뿐인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고, 함께 살아야 할 혈육을 헤어지게 만드는 전쟁이나 쿠데타 따위의 국가폭력은 저주받아야 마땅하고 근절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함부로 주권자의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가? 주권자를 억압하고, 학살하고, 전쟁으로 내모는 폭력적 애국을 떠벌리지 말라. 애국은 먼저 우리 가족을 지키고 우리 이웃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자발적으로 확장될 때만 나라를 지키기 위한 튼튼한 국방이 가능하다. 전쟁으로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을 위해 조속히 상설 면회소를 설치해야 한다. 만나야 할 혈육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은 어쩌면 이 시의 묘사처럼 꿈속에서의 만남이라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2~3일 만남 자체가 꿈이라고 해야 한다. 저 고령의 가족이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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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42)


정원 연간 가뭄(貞元旱歲) 


 당 마이(馬異) / 김영문 選譯評 


뜨거운 땅 염천 도성

한 치 풀도 안 남았고


온갖 시내 물이 끓어

물고기를 삶는구나


만물 불타 스러져도

구해주는 사람 없어


옛 『상서(尙書)』 세 편에

눈물을 뿌리노라


赤地炎都寸草無, 百川水沸煮蟲魚. 定應燋爛無人救, 淚落三篇古尙書.


정원(貞元)은 당나라 덕종(德宗)시대 연호다. 정원 19년(803년)에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이 모두 말라죽었다. 이 시는 바로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문학적 과장은 있지만 강물이 끓어 물고기가 삶길 정도라 했으니 얼마나 극심한 가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마지막 부분 『상서』에 눈물을 뿌린다는 구절에도 그 옛날 유명한 가뭄과 기우제에 관한 고사(故事)가 포함되어 있다. 상(商)나라 탕왕(湯王)은 건국 후 연이어 5년 동안 큰 가뭄이 들자 갖은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지냈지만 효험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상림(桑林) 들판으로 나가 장작을 높이 쌓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작더미에 올라 하늘에 간절하게 빌었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그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탕왕은 가뭄이 들자 기도를 올렸다. ‘제가 정사를 잘 조절하지 못했습니까?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습니까? 어찌하여 이처럼 심하게 비를 내려주지 않으십니까? 궁궐이 너무 화려합니까? 비빈의 청탁이 심합니까? 어찌하여 이처럼 심하게 비를 내려주지 않으십니까? 뇌물이 횡행합니까? 참소하는 자가 행세합니까? 어찌하여 이처럼 심하게 비를 내려주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자신의 허물을 질책하고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하늘에서 큰비가 쏟아져 불이 꺼지고 가뭄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본래 지금은 사라진 옛날 『상서』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상서』 현재 판본에는 기록이 없다.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나라의 리더가 백성을 위해, 인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얼마나 진정으로 자신의 심신을 다 바치느냐다. 심신을 바쳐 민심을 위로하고 나라를 구하지 못하면 노도와 같은 민심에 휩쓸려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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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13)


청청수중포 세 수(靑靑水中蒲三首) 중 첫째


 당 한유(韓愈) / 김영문 選譯評 


푸르고 푸른

물속 부들


그 아래

물고기 한 쌍


그대 지금 

농(隴) 땅으로 떠나면


나는 여기서

누구와 살아요


靑靑水中蒲, 下有一雙魚. 君今上隴去, 我在與誰居.


한유는 시보다 문장으로 더 유명한 학자다.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후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중당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이끌었다. 위진남북조 이래로 공허하고 화려한 변려문(騈儷文)이 유행하자 한유는 “문장으로 성현의 도를 담아야 한다(文以載道)”고 강조하며 한나라 이전의 질박하고 실질적인 고문 전통을 회복하자고 주장했다. 이 시도 그런 영향 때문인지 『시경』과 초기 오언고시의 기미가 짙게 배어 있다. 우선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는 물속에서 자라는 부들과 그 아래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한 쌍을 읊으며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경』에서 흔히 쓰는 작시 기법 흥(興)이다. 그럼 첫째 구와 둘째 구는 뒷 구절과 어떻게 연관이 될까?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부들 풀 아래에서 함께 노는 물고기 한 쌍을 부러워하며 사랑하는 연인 혹은 부부가 이별을 슬퍼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농(隴) 땅은 서북 변방인데 당시 남자들의 병역 복무처였다. 『시경』이나 악부시는 대개 당시에 유행한 민요이므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내용이 많다. 소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다. 그런데 고문운동을 추진하며 도학 전승자를 자처한 한유가 왜 이처럼 고시를 모방하여 남녀상열지사를 지었을까? 기존의 학자들은 『예기(禮記)』를 근거로 부부의 화합이 모든 예법의 바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불온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점잖은 도학자 한유가 부부의 화합을 빌미로 진정으로 남녀상열지사를 읊은 게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유가경전인 『시경』이 당시 청소년들의 연애 교과서 역할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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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12)


못가에서 절구 두 수(池上二絕) 중 둘째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아리따운 아가씨

작은 배 저어


흰 연꽃 훔쳐서

돌아가는데


자신의 자취를

감출 줄 몰라


부평초 뜬 곳에

길 하나 여네


小娃撑小艇, 偸采白莲回. 不解藏踪迹, 浮萍一道开.


한시는 의상(意象)을 중시한다. 의상은 일종의 이미지이지만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시인의 주제 의식과 사물의 형상이 일체화된 이미지다. 특히 한시 중에서도 가장 짧은 형식인 절구는 오언이 20자, 육언이 24자, 칠언이 28자로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극도로 정제된 시 형식이다. 따라서 절구는 의상 중에서도 가장 압축적인 의상을 그려낸다. 마치 스냅 사진을 찍듯이 어떤 풍경이나 대상의 가장 특징적인 장면을 포착해야 한다. 그림 같은 이미지 속에 시인이 의도하는 모든 내용을 자연스럽게 담아내야 한다. 이 시도 연꽃 꺾는 소녀의 천진무구한 모습을 스무 글자 한 컷에 매우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연꽃을 훔치는 행위는 작은 도둑질에 해당한다. 모든 도둑은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의 자취를 없앤다. 하지만 이 연꽃 도둑은 부평초가 뜬 연못에 뱃길을 냄으로써 오히려 뚜렷한 증거를 남긴다. 독자들은 그림처럼 묘사된 이 연꽃 도둑의 흔적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는다. 미워해야 할 도둑을 사랑스러운 도둑으로 바꿔놓은 백거이의 스냅 샷에는 절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잘 압축되어 있다. 어쩌면 그 아리따운 도둑이 남긴 뱃길이야말로 내 마음을 훔쳐간 사랑의 길일지도 모른다.



한시, 계절의 노래(101)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당 이상은(李商隱) / 김영문 選譯評 


저녁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 몰아 낙유원에

올라가네


석양은 무한히

아름다우나


다만 황혼이

가까워오네


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낙유원은 중국 당나라 장안성(長安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던 유명 관광지다. 한나라 때 조성되었고 그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아 도성 남녀가 즐겨 찾는 산보 코스였다. 우리 서울로 치면 딱 남산에 해당한다. 만당(晩唐) 대표 시인 이상은은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를 타고 이 유서 깊은 전망대에 올랐다. 지는 해는 마지막 햇살로 서편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였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낙유원에 올랐지만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오히려 황혼의 비애에 젖는다. 붉게 물든 황혼이 지나면 캄캄한 암흑이 다가온다. 암흑은 죽음이나 멸망을 비유한다. 이상은은 대체로 45세 무렵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예감한 것이 아니다. 그럼 이 시에서 드러나는 비애감은 무엇일까? 불우하게 말단 관직을 전전하며 청춘을 허비한 자신에 대해 슬픔을 느꼈을 수 있다. 또 장엄한 대자연을 마주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허무감일 수도 있다. 이뿐일까?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는 “망국의 음악은 슬프고도 시름 겨워서, 그 백성이 곤궁하다(亡國之音哀以思, 其民困)”고 했다. 이상은이 세상을 떠난 후 겨우 50년만에 당나라는 멸망한다. 이상은의 시에는 만당의 비애롭고 유미적인 기풍이 배어 있다. 시인은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지만 그 감정에는 시대의 풍상과 기미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시인이 시대의 풍향계란 말은 이상은에게도 잘 들어맞는다 할 수 있다.



한시, 계절의 노래(95)


임호정(臨湖亭)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


정자 마루에서

술동이 마주하니


사방 호수에

연꽃이 피네


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 當軒對尊酒, 四面芙蓉開.


왕유는 성당(盛唐) 산수전원파의 대표 시인이다. 그는 개원(開元) 말년 망천(輞川)에 은거하여 그곳 산수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았다. 그곳의 삶을 읊은 시가 그의 대표작 『망천집(輞川集)』 20수다. 앞에서 읽어본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채(鹿柴)」도 『망천집』 20수에 들어 있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했는데, 이 평가에 가장 걸맞은 시집이 바로 『망천집』이다. 이 시를 포함하여 그의 『망천집』을 읽어보면 산수화 같은 풍경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융화된 아주 작은 인물이 등장한다. 산수화 용어로 이런 인물을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한다. 산수를 즐기는 주인이면서 산수의 일부로 녹아든 손님이다. 산수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는 주체이지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또 그는 광활한 우주의 일부로 고독한 존재이나 우주의 모든 생명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사유의 각자(覺者)이기도 하다. 그가 좋은 벗을 맞아 술잔을 기울이므로 사방 연못 위에 연꽃이 피는 게 당연하다. 굴원이 벌써 노래했듯 연꽃은 군자의 꽃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정경교융(情景交融),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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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90)


시로 지은 게송(詩偈) 열 번째(其十)

 당 방온(龐蘊) / 김영문 選譯評 


일념으로 마음

청정해지니


곳곳마다 연꽃

활짝 피누나


한송이 꽃 모두

하나의 정토


하나의 정토에는

한 분의 여래


一念心淸淨, 處處蓮花開. 一華一淨土, 一土一如來.


화엄(華嚴)의 세계는 찬란하다. 만발한 온갖 꽃이 광대무변한 이 세계를 장엄하게 수놓는다. 분별과 대립이 사라진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다. 부처님의 지혜가 가득 차 있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찬란한 불성을 꽃피운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 잎새 하나에도 모두 신성한 불성이 깃들어 있다. 연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뿌리를 연결하고 기맥을 잇듯이 이 모든 사물은 무한한 인과 관계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다. “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다.” 우리 모두는 한 송이 연꽃이고, 그 연꽃은 보이지 않는 뿌리로 연결된 우리다. 부처의 성품을 지닌 개인은 하나의 정토이며 그 정토를 주관하는 개인은 한 분의 여래다. 화엄의 세계는 개인과 우리가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극락정토다. 만해대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83) 


양주사(凉州詞) 


 당 왕지환(王之涣) / 김영문 選譯評 


황하는 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오르고


한 조각 외로운 성

만 길 산에 우뚝 섰네


오랑캐 피리 하필이면

「버들 노래」로 슬퍼하나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도 못하는데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


당시(唐詩) 중에서 변방의 애환, 고통, 고독, 용기, 기상 등을 읊은 시를 변새시(邊塞詩)라고 한다. 왕지환(王之渙), 왕창령(王昌齡), 고적(高適), 잠참(岑參) 등이 이 시파에 속한다. 이 시를 읽으면 우선 첫 구절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황하가 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첫 구절과 방향이 정 반대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는 것을(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왕지환은 방향을 바꿔 “황하가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간다”고 표현함으로써 구름과 땅이 맞닿은 변방 광야의 까마득한 공간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곳에 외로운 성이 작은 조각처럼 만 길 산 위에 우뚝 서 있다. 문득 저 멀리 오랑캐 땅에서는 이별을 슬퍼하는 악곡 「절양류가(折楊柳歌)」가 피리 소리에 실려 끊어질 듯 말 듯 귓전에 스쳐온다. 「절량류가」는 버드나무를 꺾어 이별한다는 내용의 민요다. 류(柳: 버드나무)의 발음이 류(留: 머물게 하다)와 통하므로 떠나는 사람을 잡고 싶다는 비유로 쓰인다. 특히 봄철에 버드나무를 꺾어 변방으로 떠나는 사람을 안타깝게 배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각적 황량함에 청각적 애절함이 보태짐으로써 변새의 고독과 향수는 뼛속까지 스며든다. 이 때 견딜 수 없는 병졸 하나가 투덜거린다. “절마들은 버들도 안자라는 곳에서, 와 시도 때도 없이 「버들 노래(折楊柳歌)」만 불어대노?” 오랑캐 땅에는 왜 버드나무가 자라지 않을까? 그곳은 멀고, 높고, 험하고, 황막하여 봄바람조차 옥문관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버들 노래」를 들은 병졸들은 틀림없이 고향 우물가의 초록빛 수양버들과 그리운 가족 그리고 고운 임을 떠올릴 터이다.

  1. 연건동거사 2018.06.20 22:45 신고

    중국은 변새시를 쓰면서도 결국 서역을 유지했지요. 그 흐름이 지금 중국사람들의 정신세계에도 면면히 흐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변새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변경을 지키는 긴장감을 사실적인 기풍으로 노래한 시도 제법 있더군요.
    먼 변경에서 수자리를 살다가 죽어간 민중의 고통만이 변새시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2. 연건동거사 2018.06.20 23:01 신고

    결국 변새를 누군가 지키면서 고생해야 할 때라면 누군가 고생을 해야 하는거에요. 그래야 후손이 살길이 열리는것이고..

    그곳에서 고생한 사람들을 노래하는 변새시라는것도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만, 이를 단순히 민중에 대한 학대로만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3. 연건동거사 2018.06.20 23:09 신고

    君不見, 走馬川行雪海邊,平沙莽莽黃入天。
    輪台九月風夜吼,一川碎石大如斗,隨風滿地石亂走。
    匈奴草黃馬正肥,金山西見煙塵飛,漢家大將西出師。
    將軍金甲夜不脫,半夜軍行戈相撥,風頭如刀面如割。
    馬毛帶雪汗氣蒸,五花連錢旋作冰,幕中草檄硯水凝。
    虜騎聞之應膽懾,料知短兵不敢接,軍師西門佇獻捷。

    제가 최고로치는 변새시입니다..
    긴장감에 터질듯 하죠..

    走馬川行奉送封大夫出師西征》 作者:岑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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