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223) 


추운 밤(寒夜)


[淸] 원매(袁枚) / 김영문 選譯評 


추운 밤 책 읽다가

잠조차 잊었는데


비단 이불에 재만 남고

향로에는 연기 없네


고운 사람 화가 나서

서책 빼앗으며


낭군님아 지금 한밤

몇 시인지 아시나요


寒夜讀書忘却眠, 錦衾香燼爐無煙. 美人含怒奪書去, 問郞知是幾更天. 





책 읽기에 미친 사람을 서치(書癡)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책바보’ 또는 ‘책벌레’ 정도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치(癡)’ 자 속에는 매우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멍청하다’, ‘굼뜨다’, ‘미치다’, ‘빠져들다’, ‘천진하다’, ‘병적이다’, ‘집중하다’, ‘정을 쏟다’ 등등... 책에 빠져들어 ‘치(癡)’의 상태에 이르면 이런 각종 증세를 드러낸다. 중국 현대 작가 중에서 서정 수필로 유명한 주쯔칭(朱自淸)은 결혼식 당일 혼례 시간이 됐는데도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깜짝 놀라 신랑을 찾아나섰다. 한참이나 찾은 끝에 그들은 서재에서 책 읽기에 빠져든 주쯔칭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예쁜 신부를 맞이한다는 사실도 잊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가히 애서광(愛書狂)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애서광들에게 겨울은 책 속으로 빠져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기나긴 겨울밤이야 말로 아무 거리낌 없이 깊고 넓은 책의 세계를 유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밖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말 그대로 “눈오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다(雪夜閉門讀禁書)”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당신의 눈길이 책속에만 머물러 있는 한 당신의 사랑을 갈망하는 고운님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을지 모른다. 고운님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하시려나? 당장 책을 내던지고 비단 금침 속으로 뛰어드시기를...




국립중앙박물관 주최 '대고려전' 매장을 돌다가 이 고려청자 3점을 마주하고선 무심히 지나치려 했다. 상설전시실 있는 걸 내려다봤구만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류 고려청자는 수량이 적지는 하지만, 그 폼새가 뛰어나다 해서 이런저런 자리에 자주 불려나가는가 하면, 특히 국립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품으로 빼는 일이 없는 까닭이다. 



 

 

특히 맨 왼편 소위 '동자 연적(童子硯滴)'은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하긴 저들 석 점 다 내 눈에 익기는 했다. 저 비스무리한 연적을 어디서 봤을까나는 차지하고, 그리 무심히 지나치면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어랏? 석점 모두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빌려왔네? 어쭈구리? 여튼 우리 국박은 일본이라는 사족을 못 쓰니, 뭐, 이래저래 교유도 많고, 서로 먹고 살아야 하니, 좋은 물건 빌려왔겠구나 했더랬다. 


정작 내가 주의깊게 본 것은 이 근방 어디인가 전시실 비름빡에 붙은 이규보 시였다. 천상 저 동자 연적과 같은 류 물건을 보고 읊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멋드러진 그의 시가 걸렸더라. 음, 좋군, 하고는 그것을 폰카로 찍어두었다고 조금 전 생각이 나서 그걸 찾아봤다.  





이규보(李奎報, 1169∼1241) 사후 그의 시문을 망라해 나온 문집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제13권 고율시(古律詩)가 수록한 '안중삼영(案中三詠)'은 글자 그대로는 서재에서 마주하는 세 가지 사물을 소재로 읊은 연작시다. 이 세 가지를 순서대로 보면 '소분석창포(小盆石菖蒲)'와 '녹자연적자(綠甆硯滴子)', 그리고 '죽연갑(竹硯匣)'이다. 이규보는 시에 환장해 매일매일 시를 써제꼈으니, 놀라운 점은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그 작품 대다수가 주옥을 방불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런 다작 중에서도 작품성이 특히 뛰어난 것만 고른 편집방침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수준 덜 떨어지는 작품들이야 나가 떨어졌겠지만, 그 막대한 수작秀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안중삼연'도 그렇다 할 만하니, '소분석창포(小盆石菖蒲)'는 작은 화분에 키우는 석창포라는 식물을 노래함이요, '녹자연적자(綠甆硯滴子)'는 푸른 색깔 나는 자기 연적을 제재로 삼았으며, '죽연갑(竹硯匣)'은 확실치는 않으나 벼루 보관함 같은데, 그걸 대나무로 만들었나 보다. 혹 아시는 분은 교시 바란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작품은 두 번째 '푸른 자기 연적'이다. '녹자(綠甆)'란 푸른 빛이 나는 자기를 말함이니, 말할 것도 없이 요새 청자라 부르는 기물이다. '연적자(硯滴子)'란 연(硯), 곧 벼루에 물을 따르는 도구를 말한다. 기물 중에 子를 접미사처럼 붙이는 일이 많거니와, 요새는 주전자라 하는 주자(注子)가 대표적이다. 이를 줄여 흔히 연적(硯滴)이라 하거니와, 옛날 먹 글씨를 쓸 적에는 반드시 벼루에다가 물을 부어 먹으로 갈아야 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 터이거니와, 그 물을 대는 주전자가 바로 연적이다. 


먹 가는 일....이거 고역이다. 요새는 이조차 편리를 추구해, 아예 먹물을 병에다가 담가서 판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이 먹 가는 일도 무슨 거창한 수양이 되는양 해서 지질이 똥폼을 잡았지만, 글쎄, 실상은 글을 쓰는 놈이 먹을 직접 간 일은 없고, 이 고된 일은 언제나 동자나 종놈 차지였다. 쉴 새 없이 먹을 갈아야 했으니 그 고통 말해서 무엇하랴? 더구나 그 주인이 시 쓰기에 환장한 이규보 같음에랴? 


그렇다고 종놈이 고분고분했겠는가? 사극이나 사극 영화를 보면, 으레 종놈은 주인한테 옴짝달짝 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일이 많으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라, 그것도 주인 성향에 따라 달라, 예컨대 주인이 후덕하면 종놈도 요래조래 주인을 갖고 논다. 이 고역을 피하는 고전적인 수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단 튀고 보자다. 


한데 이규보 이 시에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무척이나 정겹게 등장한다. 그러면서 그가 사용한 연적이 어떤 모양이고, 그 효능이 무엇인지도 익살스럽게 읊었으니, 이규보를 괜히 천재라 하지 않는다. 마침 이 시 일부 구절을 국립중앙박물관이 근자 개막한 '대고려전' 한 코너 비름빡에 걸쳐 놓았으니, 그것이 무척이나 재미가 있어 그 전문을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서 찾아 옮긴다. 다만, 그 번역은 내가 왕창 뜯어고쳤음을 밝힌다. 


푸른 옷 작은 아이 

흰살결 백옥 같네 

꿇은 모습 무척 공손하고

이목구비 뚜렷하네 

종일토록 게으름 없어 

물병 들곤 벼룻물 주네

난 본디 읊조림 좋아해 

시 쓴 종이 날마다 천 장  

벼루 말라 게으른 종 부르니

게으른 종 부러 귀먹은 척  

천번이나 불러 대답 없어

목이 쉬어서야 그만두네 

네가 옆에 있어 준 뒤로 

내 벼루 마를 날 없다네

네 은혜 어찌 갚을까나

고이 지녀 깨지 말아야지


幺麽一靑童。緻玉作肌理。曲膝貌甚恭。分明眉目鼻。競日無倦容。提甁供滴水。我本好吟哦。作詩日千紙。硯涸呼倦僕。倦僕佯聾耳。千喚猶不應。喉嗄乃始已。自汝在傍邊。使我硯日泚。何以報爾恩。愼持無碎棄。


이 시 일부 구절을 박물관에서 따서 걸어놓은 것이다. 덩그러니 번역만 붙이고, 그것도 일부만 싹뚝 짤라내니 영 그렇다. 이리 한 까닭이야 뭐 안봐도 야동이라, 한자 덕지덕지하고, 전문을 소개하면 관람객들이 질색한다 해서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를 통해 이규보 절창 하나를 만나고, 그것을 새기에 되었으니, 고맙고 고맙도다. 


  1. 연건동거사 2018.12.12 14:33 신고

    잘 봤습니다. 재미있군염.

인월대(隣月臺)


[高麗] 진각 혜심(眞覺慧諶)


높디높디 솟은 바위 몇길이나 되는지 

위에 선 높은 누대 하늘 끝과 닿았네

북두로 은하 물 길어 차 달이는 밤 

차 끓는 김 찬 달속 계수나무 감싸네


巖叢屹屹知幾尋, 上有高臺接天際. 斗酌星河煮夜茶, 茶煙冷鎖月中桂. 



고려의 다실茶室?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전'에서.




인월대가 어딘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그 의미를 미루어 달[月]과 인접[隣]하는 곳에 세운 누각이라 했으니, 아마도 제법 높은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세운 건축물 아닌가 한다. 혹 그 실체를 아는 분은 가르침 구한다. 이 시 첫 두 구절 '巖叢屹屹知幾尋, 上有高臺接天際'는 제목도 그렇고, 그 묘사하는 내용으로 보건대 인월대라는 누각을 묘사한 것이어니와, 이로써 보건대 인월대는 바위산 꼭대기에 세웠다. 


이런 곳에서 어느날 밤 혜심은 차를 달였나 보다. 마침 밤하늘엔 보름달 가까운 달이 휘영청 뜬 모양이다. 달에는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불사약을 찧는다 했거니와, 이런 풍경은 보름달 가까운 때가 성립가능한 까닭이다. 초승달이나 그믐달에 무슨 옥토끼나 계수나무가 보이겠는가? 


이 시 압권은 3, 4구이거니와, 차를 끓이는데 부은 물을 작자는 북두로 길어온 은하수라 했다. 북두란 곧 북두칠성이니, 그 모양이 흡사 자루 달린 바가지, 곧 국자다. 이 북두칠성으로 은하를 흐르는 물을 퍼왔다 했으니 말이다. 은하銀河는 글자 그대로는 은빛 큰강물이거나, 별무리가 길게 늘어선 모양을 따라 이리 묘사한다. 


그렇게 물에다가 찻잎을 넣고 차를 끓이는데 김이 모락모락한다. 그 김이 마침 달을 가린 모양이다. 달은 이글거리는 해에 견주어 항용 그것을 온도로 묘사할 때는 冷 혹은 寒으로 본다. 그 찬 기운을 응축한 달에 뜨거운 찻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맺힌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이 시는 분명 선시禪詩에 속한다. 


이 시는 1993년 동국대학교출판부에서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소장 필사본(筆寫本)을 저본으로 편찬한 《한국불교전서》 제6책 소수所收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 수록되었다.  


그렇다면 혜심은 누구인가? 그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혜심'이라는 항목 아래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178년(명종 8)∼1234년(고종 21). 고려 후기의 승려. 성은 최씨(崔氏).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법명은 혜심(慧諶). 전라남도 나주 출신. 아버지는 완(琬)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어,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면서 수선사의 교세를 확장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하기를 원하였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1201년(신종 4)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나, 다음해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힘써 정진하였으며, 지눌은 혜심의 재능을 아꼈다. 


1210년 지눌이 입적(入寂)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開堂)하였다. 1212년 강종(康宗)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그가 『심요(心要)』를 지어 올렸고, 당시 문하시중 최우(崔瑀)는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다. 고종(高宗)은 왕위에 올라 혜심에게 선사(禪師)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단속사(斷俗寺) 주지로 명하였다. 1234년 6월 26일에 문인들을 불러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한 뒤 입적하였다. 나이 56세, 법랍 32세였다. 


문인에는 몽여(夢如)·진훈(眞訓)·각운(覺雲)·마곡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0권, 『심요』 1편,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 1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2권, 『금강경찬(金剛經贊)』 1권, 『선문강요(禪門綱要)』 1권이 있다. 


고종은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浮屠)의 이름을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 사액(賜額)하였다. 부도는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이규보(李奎報)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남도 강진군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각각 세워졌다. 현재 비문은 잔비(殘碑)만이 전해 오고 있으며,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조선금석총람』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동문선(東文選)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조선총독부,1919)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 이능화 ,신문관,1918)

집필(김위석,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개막한 '대고려전' 중 한 코너가 고려시대 차문화 섹션이라, 개중 한 구석에 고려인들이 사용한 다기茶器를 비롯한 차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했거니와, 마침 그 벽면에 저 시가 걸려있어 인용해 본다. 번역은 내가 나름대로 다시 했다. 

한시, 계절의 노래(222)

눈을 마주하고(對雪)

[唐] 고변(高駢) /  김영문 選譯評

육각형 눈꽃 날려
문 안으로 들어올 때

청죽이 옥 가지로
변하는 걸 바라보네

이 순간 기쁜 맘에
높은 누대 올라 보니

인간 세상 온갖 험로
모두 희게 덮여 있네

六出飛花入戶時, 坐看靑竹變瓊枝. 如今好上高樓望, 蓋盡人間惡路岐.

눈이 내리면 대개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눈을 처음 보는 아이들조차 즐거워한다. 왜 즐거워할까? 거의 육십 평생을 살아왔지만 잘 모르겠다. 빙하시대의 어떤 기억이 인류의 유전자 속에 남이 있는 것일까? 비보다 가볍고 포근한 느낌 때문일까? 차별 없이 펼쳐지는 드넓고 흰 천지에서 안온함과 평등함을 감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이유가 작용하는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눈이 내리면 하늘과 땅이 모두 온통 하안 빛깔로 덮인다. 눈 자체에는 아무 특징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눈송이가 모두 보석 같은 육각형임을 알 수 있다. 육각형 안의 결정은 조금씩 다르다. 어릴 때 눈송이의 육각형을 발견하고 매우 신기해한 기억이 난다. 이 때문에 한문으로는 눈을 ‘육출(六出)’이라고도 부른다. 천지를 뒤덮은 하얀 눈 세상은 이렇듯 조그만 보석 육각형이 이뤄낸 거대한 기적이다. 인간 세상의 험한 갈림길과 견디기 힘든 고통은 잠시나마 보석 육각형 아래 감춰진다. 우리는 하얀 눈 세상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소중한 평안이다. 

*** 이 시 저자 고변은 최치원 고용주요 오야붕이라, 종교 관점에선 격렬한 도교 신도다. 그래서 단약, 마약 많이 고아 드셨다.(김태식補) 


한시, 계절의 노래(221)


유십구에게 묻다(問劉十九) 


[唐]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새로 빚은 술거품은

초록빛 개미


조그만 화로는

붉은빛 진흙


저녁 되어 흰 눈이

내리려는데


더불어 술 한 잔

마실 수 있소


綠蟻新醅酒, 紅泥小火爐. 晚來天欲雪, 能飮一杯無. 


나는 술을 귀로 가장 먼저 느꼈다. 어릴 때 시골집에선 농주(農酒)나 제주(祭酒)로 쓰기 위해 흔히 술을 담갔다. 안방 아랫목 따뜻한 곳에 술 단지를 묻어두면 며칠 후 뽀글뽀글 술 괴는 소리가 들렸다. 귀로 술을 느낀 후에는 코로 술 향기가 전해져 왔다. 막걸리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아부지께서는 술을 거를 때까지 며칠을 참지 못하시고 작은 바가지로 자주 단지 속 술을 떠서 드시곤 했다. 술이 괼 때 술 단지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거품이 뽀글거리는 가운데 술찌끼가 떠다니는 것이 흡사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오늘같이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날 붉은 숯 화로를 둘러싸고 아랫목 술 단지에서 금방 걸러낸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길고 긴 겨울도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보낼 수 있을 터이다. 거기에 오랜 벗과 마주 앉아 두런두런 정담을 나눌 수 있으면 이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지금 나의 서재는 사각형 아파트에 있다. 숯 화로는 고사하고 전기장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술 단지 꿈을 꾸는 내 서재 창밖 겨울 하늘에선 한 바탕 눈발이라도 휘날릴 태세다.

  1. NeoTrois 2018.12.07 21:10 신고

    한파가 오니 술이 더 땡기는 것같군요. ㅎㅎ
    술 괴는 소리도 있었군요~~

  2. 먹탱이 2018.12.08 18:57 신고

    술맛과 인생맛을 몰라서 마시진 않지만 귀로 술을 첨 접했단 말씀이 참 낭만적이네요. 티비에서 전통주를 빚을 때 뽁뽁~ 뽀보복~하며 내는 소리를 들어 봤거든요. 비록 아파트 서재이나 사진 속 풍경에 님을 넣어두고 늘 여유있길요~~~^^

  3. 연건동거사 2018.12.12 09:56 신고

    헐 샘이나 제가 어렸을때는 집에서 술 담그는거 금지였는데!!! 아마도 밀주였던듯 ㅋㅋ

한시, 계절의 노래(220)






찬 비[寒雨] 


[宋] 범성대(范成大) / 김영문 選譯評 


무슨 일로 겨울날

비가 창을 때리는가


밤에는 두둑두둑

새벽에는 주룩주룩


만약에 하늘 가득

흰 눈으로 변한다면


외로운 뜸배 타고

저녁 강에 낚시 하리


何事冬來雨打窗, 夜聲滴滴曉聲淙. 若爲化作漫天雪, 徑上孤篷釣晚江.


이 시가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을 모티브로 삼고 있음은 마지막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유종원의 「강설」 마지막 구절이 바로 “혼자서 추운 강의 눈을 낚는다(獨釣寒江雪)”이다. 대자연과 마주한 인간의 절대 고독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추운 강의 낚시질은 조옹(釣翁)의 선택에 의한 의도적 행위이므로 주체적으로 고독과 마주선 인간의 경건함과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이후 이 시의 ‘독조한강(獨釣寒江)’ 또는 ‘한강독조(寒江獨釣)’라는 이미지는 수묵화의 독립된 화제(畫題)로 정형화되어 수많은 명품으로 예술화되었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송대 마원(馬遠)의 『한강독조도』와 명대 주단(朱端)의 『한강독조도』도 동일한 주제를 그린 명품이다. 마원의 그림에는 아예 도롱이와 삿갓도 갖추지 않은 늙은이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낚시에 집중하고 있다. 늙은이를 실은 낚싯배 외에는 모두 망망한 허공이다. 주단의 그림은 마원의 그림보다 사실적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흰 눈이 가득 덮인 소나무가 늘어져 있고, 그 소나무 끝에는 고드름이 강을 향해 매달려 있다. 그리고 고드름 아래에는 도롱이를 입고 삿갓 쓴 늙은이가 뜸배 끝에 앉아 추운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일반인은 보통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낚시를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필 눈 오는 날 차가운 강으로 나가 고독 속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낚을까? 강태공처럼 천하를 낚을까? 아니면 엄자릉(嚴子陵)처럼 고절(高節)을 낚을까? 원말(元末) 명초(明初) 당숙(唐肅)은 “고기를 실은 게 아니라 시만 싣고 돌아온다(不載魚歸只載詩)”라 했다. 모두 나름대로 세속을 벗어난 정답을 제시했지만, 내가 보기엔 이들의 정답도 모두 세속 티끌에 얽매인 듯하다. 눈을 낚는 늙은이 앞에 천하니 고절이니 시 따위가 대관절 무슨 대수일까?

한시, 계절의 노래(219)



요서성 조양을 관통하는 대릉하.



강설(江雪)  


[唐] 유종원(柳宗元) / 김영문 選譯評 


즈믄 산에 나는 새

끊어지고


만 갈래 길 사람 자취

사라졌다


외로운 배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


혼자서 차가운 강

눈을 낚는다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이 한 수 시만으로도 유종원은 시인으로 불림에 부족함이 없다. 동서고금 시 작품 중에 대자연 속 인간의 절대고독을 이처럼 절실하게 노래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운율에서 그러하다. 이 시는 언뜻 오언절구처럼 보이지만 오언고시로 불러야 정확하다. 오언고시 중에서도 그 형식이 매우 독특하다. 이 작품은 짝수 구 끝에 측성으로 운을 달았을 뿐더러 첫째 구에까지 운을 달았다.(절구는 대개 평성으로 운을 단다) 이는 칠언시의 압운 법칙에 따른 것이므로 훨씬 강화된 라임 스타일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그 압운도 측성 중에서 입성을 운용하고 있다. ‘絶(절)’, ‘滅(멸)’, ‘雪(설)’이 바로 입성에 속한다. 이 운자들이 지금 우리 발음으로는 ‘ㄹ’ 받침이지만 중국 고대음에서는 ‘t’ 받침에 속한다. 현대 베이징어에는 입성이 사라졌으므로 대략 ‘t’ 받침을 붙여서 표기해보면 ‘juet(쥍)’, ‘miet(몥)’, ‘xuet(쉩)’으로 발음된다. 이는 그야말로 “촉급하게 끝닫는 소리”다. 이 시의 압운이 얼마나 인간의 격절감을 강화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운자가 드러내는 의미 즉 “나는 새 끊어지고(絶)”, “사람 자취 사라져서(滅)”, “강 위에 눈만 내리는(雪)” 풍경은 말 그대로 ‘절멸(絶滅)’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차가운 강에서 낚시하는 늙은이가 과연 고기를 잡는 것일까? 혼자 차가운 강에서 눈을 낚는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도롱이와 삿갓 위에는 여전히 끝도 없이 눈이 내린다.

한시, 계절의 노래(218)


진주 말 위에서 짓다[眞州馬上作] 


[宋] 왕안석(王安石) / 김영문 選譯評 





주린 말 따라서

한낮에 길 가는데


모래 바람 눈에 들어

봉사 될 듯 괴로워라


마음이 피로하여

몸 또한 지쳐감에


이 신세 가련하다

세상에서 뭔 일하랴?


身隨饑馬日中行, 眼入風沙困欲盲. 心氣已勞形亦弊, 自憐於世欲何營.


왕안석은 송나라 신종(神宗) 때 대 개혁가다. 중국 현대 유명한 정치가 장제스(蔣介石)는 역대 탄복할 만한 정치가로 진한(秦漢) 이전에는 주공(周公)을 꼽았고, 진한 이후로는 오직 왕안석을 들었다. 왕안석은 안일과 부패에 젖어 쇠락해가던 북송을 개혁하기 위해 실로 경천동지할 만한 신법(新法)을 시행했다. 애초에 신종(神宗)은 유능한 지방관이었던 왕안석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개혁의 전권을 맡겼다. 하지만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보수파들의 벌떼 같은 반대와 공격으로 개혁의 길은 점점 막히게 되었고 결국 신종 사후에는 태황태후 고씨(高氏)가 수렴청정에 나서면서 구태의연한 옛 제도로 복귀하고 말았다. 이후 철종(哲宗)이 재위 15년 만에 죽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에 이르면 송나라는 여진족 금나라에 황제가 잡혀가고 일부 왕족만 장강 남쪽으로 도망가서 겨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개혁을 외면하고 기득권에 집착한 대가는 이처럼 막대하다. 당시 왕안석은 눈도 뜨기 어려운 황사 속에서 주리고 여윈 말을 타고 가며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역사를 보라. 그것을 외면한 대가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1. 연건동거사 2018.12.02 21:38 신고

    흠...

    구법당과 신법당을 단순히 개혁과 수구의 구도로 볼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한량 taeshik.kim 2018.12.02 22:03 신고

      간단합니다. 왕안석 이야기할 땐 안석이 칭찬하고, 사마광이 이야기할 땐 사마광 칭송하면 됩니다

첫눈[新雪]


[高麗] 이숭인(李崇仁·1347~1392) 





아득한 세밑 하늘 

첫눈 산천 두루 덮었네

새들은 산속 나무둥지 잃고 

스님은 바위에서 샘물 찾네

주린 까마귀 들녘서 끼욱끼욱 

언 버드나무 시냇가에 누웠네

어느 곳이 인가인지  

먼 숲에서 흰연기 오르네 


蒼茫歲暮天, 新雪遍山川. 鳥失山中木, 儈尋石上泉. 飢烏啼野外, 凍柳臥溪邊. 何處人家在, 遠林生白煙. 


이숭인 문집인 《도은집陶隱集》 권 제2에 수록됐다. 어느 해인가 내린 첫눈이 폭설이었던 듯, 하지만 이것이 실경은 아니라고 나는 본다. 마치 그림 보고 썼거나, 탁상에서 안출한 인상이 짙다. 


이 시와 아주 흡사한 전대 시편이 있으니 중국 당대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서울로 가는 도중 눈을 만나[赴京途中遇雪]'라는 제하 작품이거니와, 다음과 같다. 


迢遞秦京道,蒼茫歲暮天。窮陰連晦朔,積雪滿山川。

落雁迷沙渚,飢烏集野田。客愁空佇立,不見有人煙。


이를 보면, 도은의 저 첫눈은 실상 표절임을 안다. 따라서 이 그림이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시가 아님은 명백하다. 


울진 죽변항



말린 고기가 강을 건너가며 우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이미 늦었네 

편지 써서 방어랑 연어한테 부치니

부디 출입에 조심하고 경계하시게 


枯魚過河泣,何時悔復及。作書與魴鱮,相教慎出入。


오언고시五言古詩 형태이며, 한대漢代 악부시樂府詩 중 하나로 우언시寓言詩다. 작자는 알 수 없고, 제작시점은 동한東漢시대로 본다.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잡곡가사雜曲歌辭로 분류했다. 제목이 없지만 이런 경우 흔히 하는 수법대로 그 첫 구절 '枯魚過河泣'을 따다가 그대로 후세에 제목을 삼는다. 


발상은 실로 간단해서 어부한테 잡혀서 건어물 신세가 된 물고기가 살아 물길을 맘대로 유영하는 다른 종류 물고기한테 편지를 부쳐 잡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어쩐지 장자莊子 냄새도 짙게 난다. 


해설과 번역은 서성 역주, 《양한시집兩漢詩集》, 보고사, 2007, 120쪽을 참조했다.  

  1. 세아이멋진아빠 2018.11.26 14:19 신고

    ㅋㅋ 잼있는 시네요 ~~~
    말린물고기가 편지를 보내다니 ㅋㅋㅋ

  2. 한량 taeshik.kim 2018.11.26 18:32 신고

    착불이라 수령 안했단 말도 있슴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