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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간강사라는 이름으로 팔자에도 없는 학생들을 훈육하는 강좌 하나를 맡기로 했던 것은 밝히기 힘든 개인의 곡절이 있었다. 그 이유야 어떠했건, 내가 맡은 교양 강좌 이름이 "한국문화재의 이해와 감상"였다. 말이 거창하지 더 간단히 학적 용어를 빌리면 문화재학 개론이었다. 하지만 이 따위 간판을 달면 누가 수강하겠는가? 


그 명칭이 어떠하건 이런 강좌가 거의 모든 대학에 있는 것으로 안다. 문화재가 붐을 이루면서, 이런 교양강좌 없는 데가 없다. 한데 문제는 교재건, 참고도서건 수강생 수준에 걸맞는 책자가 없다. 나는 애초에 그런 책이 있다 해도 추천할 생각도 없었고, 그리하여 참고도서에는 문화재청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참조라 적었다.



난 이 산하, 전 국토가 자연유산이라고 본다. 곡성 설산상성에서



시중엔 문화재학 개론이니 하는 제목을 표방한 책자가 몇 종 있고, 나아가 대중교양성을 표방한 문화재 관련 책자는 그 숫자가 조금 더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기준을 만족치는 못한다. 이런 강좌 구성을 보면 거의가 예외없이 문화재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그 분류 체계를 문화재보호법에 기초해 설명한다. 하지만 그네들에게 문화재보호법이 중요하겠는가? 나는 무엇이 문화재인가가 하등 중요치 않다고 본다. 나에게 중요하고 절박한 것은 "왜 문화재인가"다. 


그리하여 강좌 첫 시간에 '문화재를 둘러싼 총성'을 강연했다. 그것을 두고 실제 총질을 해대는 캄보디아-태국 국경 세계유산을 고리로 삼아, 독도를 둘러싼 논쟁을 문화재의 관점에서 볼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작년 한일관계의 최대 논쟁 일본 산업유산 등재 역시 총성 없는 전쟁임을 말했다. 이를 통해 나는 문화재는 저 하늘 동떨어진 천상의 궁전이 아니요 우리의 실생활임을 강조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했다.



문경 고모산성



이 강좌를 시작하기 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된 시간부터 나는 내가 생각하는 문화재 개론서 집필을 꿈꾸었다. 그 개론서는 첫째, 흥미로워야 하며 둘째, 그러면서도 철저히 학술적이어야 하며, 셋째, 그러면서도 문화재 구석구석을 망라한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 혹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한 학기 강좌를 끝내면 책자로 정리해서 내겠다고 생각했다. 


그 꿈은 거개 내 다른 꿈이 그렇듯이 열정의 상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인지 모를 "왜 문화재인가"는 꼭 집필했으면 하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 이상은 June 17, 2016, 내 페이스북 계정 '꿈이 있었다'는 제하 포스팅 전문이다. 이때 나는 해직 중이었거니와, 선문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양 강좌 하나를 출강 중이었다. 이 강좌가 나로선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다만, 시간을 빼앗기고, 무엇보다 상대평가에 질겁을 하고는 한 학기만에 그만뒀다. 


봉정사 찾은 문 대통령


이건 우리 문화재 담당 기자더러 하나 별도 기사화를 주문할까 하다가, 너 문빠냐 어쩌나 하는 말이 일각에서 나올 것이 빤해 이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제목이 말한 저 행보, 문통이 유별나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평가건대, 역사 혹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박정희와 더불어 최고를 다툴 만한 행적을 보인다. 주지하듯이 문화재 현장을 자주 찾은 역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능가할 이는 아직 없다. 그의 기나긴 재위기간을 감안한다 해도, 그는 주요 발굴현장까지 친림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한데 취임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문통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행보를 보이거니와, 언제나 우리 사회 다른 부문에 견주어 언제나 열세를 면치 못하는 문화재계에 이는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말, 사석에서 나는 자주 한다. 

문통 자서전을 보면, 역사 덕후 모습이 완연한데, 취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고백을 반신반의했으니, 정치인의 자서선이란 으레 그렇듯이 대중을 위한 이미지 포장이라는 성격을 벗어버릴 수는 없어, 역사 덕후라는 고백 역시 나는 쇼맴십 일종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며, 그래서 과연 그 바쁜 국정 일정에서 문화재 현장은 몇 번이나 찾을 것인가 못내 의뭉스레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대통령 문재인은 역사 덕후임이 분명하다. 

인니 대통령 부부를 창덕궁 후원으로 안내한 문 대통령


그런 면모는 이번 여름 휴가 기간 중 봉정사를 찾은 일에서 잘 드러난다고 본다. 봉정사를 포함해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 7곳이 '한국의 산사'라는 이름으로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거니와, 그 일곱 사찰 중에서 오직 봉정사를 못 가봤다 해서 이번 여름 휴가를 이용해 봉정사를 찾았으니, 답사를 좋아하는 같은 사람으로 그 심정을 나는 조금은 이해한다. 

그 직전인가 아니면 그 즈음인가 문통은 문화재계 개혁을 주문했으니, 다름 아닌 문화재 안내판 문제였다. 청와대 안에 지정 문화재 몇 건이 있는데, 개중 한 곳의 문화재 안내판을 보고는 그에서 난무하는 난수표 방불하는 각종 건축 용어를 보고는 소위 진노하면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다가 혼을 내면서 개선을 주문한 것이어니와, 그를 가까이 보필하는 비서한테 내가 물었다. "저거 진짜 문통 작품이야" 했더니 그 비서가 이르기를 "맞어. 경내 산책하시다가 안내판 보시고는 직접 자료 준비하라 지시하셨고, 그제 발표가 그렇게 해서 나온 거다"고 한다.   

근자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한했다. 그 환영식을 창덕궁에서 열었다. 이 일이 확정될 무렵, 모처에서 전화가 왔다. 이르기를 "환영식을 창덕궁 아니면 경복궁에서 하려 하는데, 앞으로 자주 그려려고 한다. 다만 문화재를 훼손하니 하는 말들이 혹 나오지 않을까 한다. 그런 쪽으로 여론이 호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으니, 그 말을 듣고는 내가 "고궁은 더 열여제껴야 한다. 그런 중요 국가행사장으로 더더욱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언제까지 문을 걸어잠글 수는 없다"고 부화뇌동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묻기를 "창덕궁은 누구 아이디어냐" 했더니, "VIP가 직접 고르셨다. 저번 인도네시아 가셨다가 그쪽 대통령이 하도 고궁을 자랑했다. 그걸 보고 우리도 우리 고궁을 그리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성돈 대한제국공사관을 찾은 문 대통령


남북 정국, 북미 정국이 정신없이 돌아간 올해 들어, 그 일환으로 문통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백악관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문통은 그곳 대한제국공사관을 둘러봤다. 그날 오전 막 개관한 이 공사관을 대통령이 돌아본 것이다. 이것이 나는 역사에 대한 성의라고 본다. 그런 성의를 문통이 직접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는 이 분야에 그런대로 오랜 기간 투신한 나로서는 작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문통이 조만간 또 다른 문화재 현장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돈다. 

최고 권력자의 문화재에 대한 이런 유별난 관심이 반드시 문화재 그 자체에 대해 좋은 효과만 내지는 않는다. 때로는 역효과를 빚기도 했음을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 역사를 통해 엿보기도 했다. 

문화재는 사회 여타 부문에 견주어 항상 홀대받는다는 피해의식이 실은 광범위하다. 그런 현실에서 최고권력자의 유별난 관심은 분명 광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 관심을 문화재계는 부디 잘 살려, 문화재 자체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흔히 국립공원으로 아는 대부분은 실은 문화재이기도 하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는데 국립공원 구역 전체 40% 정도를 문화재가 침탈한 상황이다.국립공원과 같은 환경자원은 문화재보호법상 명승 혹은 천연기념물 지정 대상이다.


명승名勝..이게 참으로 묘해서 2000년 이전까지는 전국에 걸쳐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재는 5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홍준이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한 시절에 자연유산 바람을 타고서 대대적인 영역 확장을 꾀해 지금은 백 곳을 넘었다. 이에 의해 북한산 역시 중요한 부분은 문화재보호법상 명승이기도 하다. 명승만이 아니라 국립공원 내 사찰 같은 곳은 대부분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설악산 역시 상당 구역이 국립공원이면서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며 명승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설악산은 전체가 천연기념물 171호(설악산천연보호구역)이며, 그 안에 다시 명승이 지정된 상태다.


그 구체적 내역을 보면 명승 제95호(비룡폭포 계곡 일원), 명승 제96호(토왕성 폭포), 명승 제97호(대승폭포), 명승 제98호(십이선녀탕 일원), 명승 제99호(수렴동, 구곡담 계곡 일원), 명승 제100호(울산바위), 명승 제101호(비선대와 천불동 계곡 일원), 명승 제102호(용아장성), 명승 제103호(공룡능선), 명승 제104호(내설악 만경대)가 그것들이다.


이곳에 케이블카를 개설한다 했을 때 내가 분명히 경고한 적이 있다. 환경부를 통과해도 결국엔 문화재위원회에서 걸릴 것이라고. 이것이 최대 걸림돌이 된다고 경고했으며, 실제로 그리되었다.


이 걸림돌을 가능케 한 외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으니, 이를 밀어붙였다고 간주되는 박근혜가 개털이 되어 탄핵되자 문화재위와 문화재청에 압력을 가할 주체가 중력을 상실해 버렸다. 저런 케이블카...문화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환경부 통과가 전부인 줄 알았겠지만, 정신 제대로 박힌 문화재위라면 절대로 통과시켜 주지 아니한다.


나는 여러 번 말했듯이 주요 명산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사람이다. 그 이유를 다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아니하거니와, 그것과 관련 없이 저 계획 자체를 문화재위와 사전 조율도 없이 밀어붙인 것은 분명한 패착이었다. 문화재위가 그런 곳이다. 그런 까닭에 문화재위는 항용 욕 되바가지로 먹지만, 그것은 어쩌면 문화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에 그 순기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문화재로서의 설악산. 
이것이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하기는 두번째다. 첫번째가 1996년 무렵 세계유산 등재 때이니, 다른 근간의 이유가 많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이 개떼처럼 일어나 반대를 한 까닭에 결국은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되고 말았다.


시대가 이리 될 줄 몰랐겠지. 지금은 세계유산 못 만들어 환장한 시대인데, 그때 세계유산 만들었더라면 설악산은 지금과 또 사뭇 풍광이 달라, 다른 모든 것 다 때려치고 결국 이번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주의가 표방하는 진정한 이유, 곧 돈벌이와 이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는 따논 당상이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반대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세계유산 등재 움직임에는 속초가 벌떼처럼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양양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설악산 구역 상당수를 속초가 차지하는 까닭에 그랬던 것이며, 이번 케이블카 찬성론자가 양양에 득시글거리는 이유는 그에 따른 수혜 지역이 양양이기 때문이다.


문화재다. 
국립공원도 문화재라는 사실,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독도 역시 대한민국 문화재다. 겨울철이면 민통선으로 날아드는 몽골고원 독수리도 문화재다. 운석 역시 괜찮은 것이 떨어지는 날이면 그것 역시 문화재다. 문화재는 육상 수중 공중 어디에나, 심지어 우주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신임 문화재청장을 첫날 수행하는 문화재청 담당자는 항상 신임 청장을 모셔오면서 하늘을 나는 새를 가리키며 "새도 문화재입니다"라는 교육부터 먼저한다는 말이 있다.(이 글은 작년 오늘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아래는 2010년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공간하는 잡지 <<일본공간>> 8호에 투고한 내 논문 '한일간 문화재 반환, 우리를 반추한다' 중 말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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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우리 안의 반환 청구 문화재


이 글 첫 머리에서 필자는 경복궁 경내에 있는 異質의 석조문화재 2건을 언급했다. 그 중에서도 필자 또한 열렬히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열망한 한 사람으로서, 경복궁 경내에 선 그 복제비를 보면서 이제 5년이 흐른 지금은 그런 열정이 상당 부분 식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은 “차라리 북관대첩비를 반환받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북관대첩비가 반환되어 북한으로 돌아감으로써 이제 그것이 대표하는 제국 일본의 한국문화재 약탈을 생생히 증언하는 실물 하나가 줄어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북관대첩비가 일본에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돌아왔다는 흔적은 기록으로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 복제비를 보는 지금은 마음 한 켠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와 나란한 지광국사 현묘탑은 어떠한가? 한국전쟁의 폭격에 워낙 산산조각이 났다는 이력을 고려한다고 해도, 왜 현묘탑은 그 일란성 쌍둥이라 할 지광국사 현묘탑비와는 여전히 떨어져 있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제자리를 떠나 遊離 생활을 하는 ‘우리 안의 문화재’가 현묘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또 다른 비극이 숨어있다고 필자는 본다. 


2005년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는 적지 않은 석조문화재가 있다. 개중에는 필자의 고향인 경북 김천 갈항사 터에서 실어 나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한 쌍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나머지 야외 석조물 또한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이들 석조물 앞에 반드시 있는 문화재 안내판과 그 내력을 추가로 조사해 보면, 그 대부분이 식민지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징발’해 조선총독부박물관을 빛내기 위해 긁어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왜 아직 이곳에다 눌러 놓느냐고 윽박지르는 식으로 따질 수만은 없다.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을 것이며, 나아가 그것이 박물관에 수장되고, 국가와 국민의 소유물이 됨으로써 그것이 지금처럼 보존되게끔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일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제자리를 떠난 저들 석조물을 국립박물관 뜰에다가 세워놓을 수는 없다. 저들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에 박물관 측은 “현지에서 유물을 보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흔히 댄다. 하지만 저런 논리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피식민지 국가의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반대논리와 대단히 흡사하다. 문화재를 약탈하고, 그것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논리에는 어쩌면 또 다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릴지도 모른다.

강남 세곡동 일대에 임대주택이 들어설 무렵이었다. 

재개발 예정지는 나중에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지금은 아마 아파트가 서 있을 것이다. 

한데 그 개발이 추진되는 와중에 인근 주민대표들들이 당시 문화재 담당 기자인 나를 찾아왔다.  이른바 좀 있는 사람들이다. 

그네들 이야기인즉, 세곡동 임대주택 개발 계획을 막아달란 얘기였다. 

이야기인즉, 이곳에는 문화재가 많으니 개발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 다른 곳에 알아보니,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인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함을 염려한 데서 나온 도움 요청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알기로 그네들이 그 개발을 막고자 마지막으로 찾아낸 것이 문화재였다. 

그때 내가 실감했다. 

"아, 시대가 변했다. 문화재가 방패막으로 나서는 시대가 되었구나"


비슷한 시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다 나가 떨어지고 마지막에 오직 문화재만이 남았다. 

난 문화재가 그리 힘이 있는 방패막이가 되는 줄 미쳐 몰랐다.


다시 비슷한 시기 

사대강 사업이 논란이었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방패막이 최전선에 문화재가 동원되는 장면을 목도했다.


그보다 좀 이른 시기

등록문화재가 도입된 초창기였다. 

지금은 제도도 바뀌고, 지원 방안도 좀 보강되었지만 초창기에는 그러지 않아 등록은 말 그대로 등록일 뿐이라, 소유주 꼴리는대로였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때라 등록문화재라고 하니, 예고된 그날 소유주는 포크레인 동원해서 그 건물을 부수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서해안 소금창고는 일거에 사라졌고, 명동 어느 건물도 폭삭 폭파됐다.

이 등록문화재 초창기 시대가 내가 보는 문화재에 대한 반항의 마지막 발악시기다. 

이후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 급속도로 방패막이로 나서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투자대상으로 변했다. 


여전히 문화재를 향한 저항이 만만치는 않으나 전국에 걸쳐 이곳저곳 문화재 못만들어 환장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내가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지금 문화재위에 사적 지정해달라고 올라온 건수가 300건이 넘는다고 안다.

격세지감이다. 

문화재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던 시대가 불과 엇그제인데 이제는 너도 나도 문화재 만들어달라 아우성인 시대다. 


왜인가?

문화재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그에 덩달아 조금은 제도와 지원 방안도 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설악산?

이거 세계유산 만들겠다 했더니 안된다 데모하고 지랄한게 1995년 1996년이다. 

요새는 세계유산 못만들어 환장한다.

부여 공주 익산은 세계유산되고 나서 지금 혁명이 일어났다. 

그 주변 가봐라. 

작년에 알던 그 부여 공주 익산은 선캄브리아 후기로 벌써 사라지고 없다. 

천지개벽이다.

문화재가 돈이 되는 시대다. 


나아가 문화재 지정되기만 하면 소유주는 손도 안대고 코푸는 시대가 돌입했다. 

이걸 이미 민감하게 알던 곳이 불교계가 대표하는 종교집단과 문중집단이었다. 

이들은 이미 알았다. 

문화재로 지정되기만 하면 불사 국가 돈으로 하고 문중 일 국가돈으로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자체 역시 마찬가지라. 일단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중앙정부 7, 지방정부 3 비율로 부담하되, 다시 지방정부 부담률은 광역자치단체 5, 기초자치단체 5 비율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돈 거의 안들어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잊어먹기 전에 내 시대에 일어난 문화재의 드라마틱한 변모를 기록해둔다. 

그렇다고 내가 저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거나 아니면 긍정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강릉 선교장 송림(松林)>


<기자수첩> 소나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2014/01/03 18:05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 보수 현장을 소재로 하는 사건마다 거의 늘 빠지지 않는 논리가 국수주의다. 우리 것이 마냥 최고로 좋다는 믿음이 지나쳐 우리의 문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반드시 국산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외국산에 대한 혐오로 발전하곤 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본다.


그런 극명한 보기가 단청 훼손으로 촉발한 숭례문 복구 부실논란 사건이다. 총체적 복구 부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외국산, 특히 일본산 아교나 안료 사용을 들었다. 국보 1호인 우리의 자존심 숭례문을 복구하는데 어찌 일본산을 쓸 수가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


숭례문 복원에 쓰인 목재 중에서도 기둥이나 들보처럼 덩치가 큰 주축 건축 소재인 대경목(大梗木)이 국산이 아니라 러시아산이라는 의혹에도 이런 국수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론 애초에 사용하기로 한 삼척 준경묘의 이른바 금강송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이보다 헐값이라는 러시아산을 썼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믿음을 배신한 중대 범죄 행위이며, 그에 대한 중벌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 관련해 만약에 러시아산을 썼다면 지금의 숭례문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느니, 국산 금강송은 잘 건조하면 균열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 세계 최고의 소나무이며, 러시아산을 비롯한 여타 외국산 소나무에 견주어 가장 훌륭한 건축 소재라는 주장이 나오고, 더구나 그런 말이 정답인 것처럼 통용되는 현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내에서 흔히 '금강송'으로 통하는 소나무는 동해안 일대 백두대간을 따라 자라는 육송을 지칭하는 비학술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금강송이 좋은 목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세계 최고의 목재일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 금강송은 좋은 목재 중 하나인 것이다.


그것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이 이는 러시아산 소나무만 해도 유라시아 대륙을 걸치는 그 광활한 대륙의 어느 곳에서 생산된 소나무인지에 따라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소나무가 혹여 두만강 건너편 연해주산이라면 그 소나무 역시 이른바 금강송의 일종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경주 경덕왕릉 솔숲>


그리고 설혹 러시아 다른 지역 소나무라 해서, 그리고 그 가격이 국내산 금강송보다 훨씬 싸다 해서 품질 또한 국산보다 저급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이 분야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친다. 나아가 금강송은 충분히 건조하면 건물을 세워도 갈라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적어도 고건축학자나 식물학자들에게는 비웃음을 산다.


우리 소나무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전통건축에서 그런 소나무만 썼다면 종묘와 창덕궁을 비롯해 적어도 수백 년을 버틴 전통건축물의 기둥과 들보가 곳곳에서 균열이 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금강송이라 해서 갈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산 소나무 중에서도 전문가들은‘더글러스 소나무’라 불리는 캐나다산 소나무는 건축재료로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이 소나무는 광화문 복원에도 쓰였다. 하지만 광화문에 캐나다산 소나무가 쓰였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럽다고 저 건물을 헐어내고 국산 소나무로만 채운 새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설혹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인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하자. 그것은 애초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므로 그 행위가 범죄행위가 될지언정, 그렇기에 그것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될 수가 없다.


숭례문, 광화문이 대한민국 문화유산이라는 국적이 부여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무가 국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우리가 말하는 세계유산으로 흔히 다음 세 가지를 혼용해서 마구잡이로 씁니다.


1. 세계유산 world heritage 

2. 인류무형문화유산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3.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the world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엄연히 다릅니다.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 두 가지는 각기 그들의 존재를 가능케 한 국제협약에 근거를 둡니다. 쉽게 말해 각국이 이런이런 협약을 만들고 그것을 준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그에 일정 국가 이상이 비준함으로써 발효하는 협약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 것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독일 본.



이를 다시 상론하자면, 먼저 세계유산(World Heritage)은 유엔의 전문기구 중 하나인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UNESCO)가 1972년 11월 16일 채택한 세계문화자연유산보호에관한협약(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the World Heritage Convention)에 기초를 두고 벌이는 사업입니다. 


이 협약은 1975년 12월 17일에 비준국이 20개국에 도달함으로써 마침내 실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협약에 '뛰어난 보편적 가치(the 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지닌 것들을 선정해 세계유산 리스트(world heritage list)에 등재(inscription)토록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존에 등재된 것 중에서도 보존관리가 심대한 위험에 처한 곳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the 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 세계유산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협약 정식 명칭을 보시면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라고 한 대목이 그것입니다. 유산을 두 가지 범주(categories)로 나누었는데, 그 기준은 글자 그대로입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이냐, 아니면 인간의 간섭없는 자연의 흔적이냐에 따른 것인데, 이 둘은 실은 족보가 다릅니다. 다른 족보를 하나로 엎어쳐서, 하나의 협약으로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둘은 큰 틀에서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은 비슷하나 그 세부로 들어가면 프로세스를 달리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사전 등재를 심사하는 기구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유네스코는 한국 정부 조직으로 빗대면 행정조직입니다. 각국 혹은 여러 개 국가가 한데 힘을 모아 이런이런 것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려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하면, 유네스코 자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거나, 하기 힘든 구좁니다. 왜냐? 행정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 행정부는 보통 이럴 때 외부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게 되는데, 문화재 행정에서는 문화재위원회라는 것을 두게 됩니다. 전자를 보통은 연구용역 혹은 평가용역이라 하고, 후자를 보통 심의를 부친다고 하는데, 특별한 돌발변수가 없는 한, 정부기관에서는 이들 전문가 집단 평가 결과나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를 따릅니다. 왜? 그래사 뒷말이 덜 나고, 일이 터지면 우린 그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지요. 


세계유산도 이와 근간이 똑같습니다. 문화재위원회는 그것이 다루는 안건에 따라 여러 개 분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유산은 애초 이질적인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두 범주가 있기에 이에 따라 그것을 사전에 심사 평가하는 기관이 다릅니다. 이 일을 담당하는 기관을 자문기구(Advisory Bodies)라 하는데, 세계유산과 관련한 자문기구로는 크게 세 곳이 있으니, 이코모스(ICOMOS·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와 세계자연보호연맹(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그리고 이크롬(ICCROM·ㅅhe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Study of the Preservationand Restoration of Cultural Property)가 그것입니다. 


문화유산은 이코모스 몫이고, 자연유산은 IUCN 몫이며, 이크롬은 뭐랄까 그 정책 방향에 관한 철학 혹은 논리 개발 담당이랄까, 혹은 교육 담당이랄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들 세 자문기구 중 이코모스와 IUCN은 그에 대한 영어 약자인데 이크롬만은 뉠리리 짬뽕이라, 무엇의 약자인지 저는 아지 못합니다. 암튼 족보 수상한 국제기구입니다. 


2018년 12월 현재 세계유산은 1천92건인데 여러 국가에 걸친 소위 초국경(Transboundary)유산이 37건이고, 위험에 처한 유산은 54곳입니다. 요즘은 초국경 유산이 점점 많아지는 추셉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가 삭제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Dresden Elbe Valley)이 2009년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삭제되었는데, 이 당시 제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라비아 반도 오만(Oman)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Arabian Oryx Sanctuary)도 그보다 2년 전인 2007년 세계유산과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오릭스란 영양 일종입니다. 


세계유산 1천92건 중 문화유산이 845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자연유산은 고작 209건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167건은 뭐냐? 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해서 이른바 복합유산(Mixed Heritage)이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복합유산이 따로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암 것도 아니라, 복합유산은 자연유산이기도 하면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복합유산에 대해서는 사전 등재 심사를 앞서 말씀드린 이코모스와 IUCN 두 곳에서 각기 합니다. 왜? 나와바리가 달라서지요. 


그렇다면 복합유산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는데, 그 결과가 다를 때는 어찌할까요? 살아남은 쪽만 살아남습니다. 예컨대 설악산만 해도 우리는 흔히 자연유산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거기에 백담사가 있고 신흥사가 있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합쳐서 복합유산 신청을 했다 칩시다. 한데 유네스코(혹은 자문기구)에서 볼 적에 자연유산은 훌륭해서 세계유산이 될 만한데 백담사니 신흥사니 하는 문화유산은 영 아니다고 해서 그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유산만 덜커덩 등재됩니다.  


세계유산을 한 곳 이상 보유한 국가는 167개국입니다. 요새 등재 추세를 보면, 세계유산을 한 곳도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우선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계유산도 사업입니다. 더구나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유네스코로서는 가장 성공한 사업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이 더욱 번창하려면 나와바리를 늘려야겠지요? 좀 더 많은 나라에 팔아먹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인류무형문화유산 사업 역시 국제협약를 존재 기반으로 삼습니다. 유네스코는 2003년 10월 17일, 제32차 총회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the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는 2006년 4월 20일 마침내 비준국 30개국에 도달하자 마침내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세계유산협약 효력 비준국가가 20개국인 데 비해 무형유산협약은 30개국 점이 다른 듯합니다.) 협약 명칭 그대로 멸실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채택한 제도입니다. 이 사업은 뒤에서 곧바로 얘기할 세계기록유산어 현재 그런 것처럼, 애초에는 유네스코가 벌이는 자체 프로그램이었다가 나중에 덩치를 키워 국제협약을 기반으로 삼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이런 국제협약이 아니라 유네스코 자체로 벌이는 사업입니다. 유네스코 사무국이 우리도 이런 거 하나 해 보자 해서 만들어낸 사업입니다. 그러니 위상을 비교하면 전자 두 가지가 올림픽인데 견주어 기록유산사업은 전국체전입니다. 엄연히 권위와 권능은 다르지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에 해당하는 영어 표기 'Memory of the World'를 우리는 '세계기록유산'이라 옮기지만, 실은 정확한 번역은 '세계의 기억'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세계기억공정(世界记忆工程)'이라 옮기고, 일본은 '유네스코기억유산(ユネスコ記憶遺産)'이라 번역합니다. 이는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벌이는 프로그램이지요. 등재 대상은 ▲ 한 국가를 초월해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 ▲ 역사적 중요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 세계사 또는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한 지역, 인물, 주제에 대한 정보를 지닌 자료 ▲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되면서 뛰어난 미적 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 등입니다. 이밖에도 완성도 또는 완전성에 있어 탁월한 자료, 독특하거나 희귀한 자료에 해당하면 등재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기록유산 등재 유산 유형은 광범위합니다. 필사본, 도서 등 글자 형태의 기록이 담긴 자료와 그림, 프린트, 지도, 음악악보 등 비문자 기록 자료는 물론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가 해당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사업 중에서 가장 성공작이라는 세계유산 사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유네스코 사업은 벌이는 주체에 따라 기구 자체가 벌이는 사업과 회원국들이 약속한 협약에 따라 벌이는 사업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협약사업인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자체 사업입니다. 이런 자체 사업에 유네스코는 ○○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붙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유산에 비해서는 그 명성이나 지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유산 사업은 1992년에 시작됐습니다. 실무는 유네스코 일반정보사업국 산하에 이 사업 수행을 위해 설치된 국제자문위원회(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IAC)에서 맡게 됩니다. 이 자문위에는 사서, 법률전문가, 교육학자, 저술가, 문서관리 전문가 등 30여 명이 활동 중입니다. 이에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위원 14명이서 쏙딱쏙닥하며 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게 됩니다. 회의는 통상 2년마다 각국을 돌아가며 개최합니다.  


그렇다면 유네스코는 왜 이런 사업을 벌이게 되었을까요?


세계유산은 동산문화재와 부동산문화재 중에서도 부동산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것을 자연유산(natural heritage)과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것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동산 문화재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어찌해야 하느냐?  



인류무형문화유산 한산모시짜기



그렇게 해서 바로 별도 국제협약을 만들어낸 것이 무형유산입니다. 무형유산은 잘 아시겠지만 서구 유럽에서는 없던 개념입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태동한 개념이지요. 실제 이를 성사케 한 원동력이 된 국가가 바로 한국과 일본입니다.


자, 부동산도 됐고 무형도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이 두 가지로 커버가 될까요? 안 됩니다. 덩치가 큰 다른 하나가 빠졌으니 부동산에 대비되는 동산 문화재를 유네스코가 방치하는 결과를 빚은 겁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동산문화재도 우리 유네스코가 어떻게든 먹어보자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세계기록유산입니다. 


하지만 세계기록유산을 국제협약으로 만들려고 하니, 시일이 걸리고 여러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국제협약으로 나중에 가건 말건, 이건 일단 급한대로 유네스코 자체 사업으로 해보자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기록유산사업입니다.


이 세 가지를 보면 유네스코가 접근하는 문화재 확장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세계유산을 통해 종래의 유산이라고 하는 가장 구찌가 큰 것을 선점했고, 그러다 보니 무형이 빠져서 이것도 먹자 해서 인류무형유산을 만들어내고,  또 그러다 보니 언제건 옮겨다닐 수 있는 문화재가 빠지니 그 그물망을 치자 해서 세계기록유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형태가 더 나올 지 모릅니다.


우선 세계기록유산을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문화유산처럼 별도 국제협약을 만들어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한때 논의되기도 했다고 들은 듯도 없으니,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금의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동산문화재 중 document라는 특성이 농후해 문자 자료 혹은 영상이나 동영상 같은 기록성이 짙은 문화유산에 집중되는 바람에 그에서 벗어난 동산문화재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도 유발하게 됩니다. 예컨대 우리네 같은 경우 '신라인의 미소'로 알려진 신라와당 같은 것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에 주목한 새로운 사업이 펼쳐지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상은 과거 내 정리자료를 기반으로 삼되, 그 정확성과 상세함을 보강하는데는 문화재청 세계유산팀 김지홍 사무관과 이곳 출신 임경희 현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도움이 많았음을 밝힌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오류 등은 전적으로 내 책임에 귀속한다. 향후 계속 보완을 약속한다.) 


 

2015.7.10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약간 손질했다. 


- 세계유산 삭제 드레스덴 엘베계곡을 덧붙여 논함-

역사유산으로 먹고 사는 애들, 예컨대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도 여전히 세계유산 신규 등재에 열을 올립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접근하는 가장 큰 이유, 관광을 접목한 지역경제 활성화와는 전연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서구유럽이라고 해서 그런 곳이 없겠습니까만은, 이번에 등재된 터키 에페수스만 해도 세계유산이 되건 말건, 이미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곳입니다. 예컨대 루브르박물관을 프랑스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고 치죠. 프랑스가 왜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겠습니까?

관광?

그거 아니라도 미어터지는데???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 같은 데는 접근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통한 역사도시 이미지 확보와 그를 통한 관광객 끌어들이기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도 이런 목적에서 추진했으며, 실제 경주 양동마을은 등재 이전과 이후는 천지개벽입니다.


이 차이점은 세계유산 등재 현장을 가 보시면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네 세계유산지역은 우선 그 입구에 이곳이 세계유산임을 요란스럽게 선전하는 광고판으로 넘쳐나고, 그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하지만 서유럽 세계유산 현장 가 보세요. 이곳이 세계유산임을 광고하는 안내판은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숨어 있습니다. 아주 없는 곳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구 세계는 세계유산을 등재하는 가장 큰 목적이 그 유산의 보존 관리 체계 확립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는 피상적인 관찰이라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목적이 관광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이 2009년에 엘베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건설 문제로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습니다. 이 일을 국내에서는 무슨 대사건이 되는양 침소봉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세운상가 개발했다가는 종묘가 세계유산에서 삭제된다...이건 큰 일이요 국제 망신이다는 논리로 공격을 해대지요. 


하지만 드레스덴 현지에서는 아무도 세계유산 삭제를 굴욕이라거나 치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삭제 과정에서 찬반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네들한테는 교량 건설이 더 중요했습니다. 실제 이 교량이란 것도 기존 세계유산 경관에 전연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외려 도시활성화 차원에서 드레스덴에는 이 교량이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어찌되었는가?


드레스덴 관광객은 세계유산 등재 때보다 삭제 이후에 외려 늘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입니다. 세계유산을 등재하는 목적과 효과는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자료 찾아보다가 남한산성 수어장대를 보니 행정구역이 경기도 광주시다. 한데 아무도 광주의 문화재라고 인식하지 않으니, 이 무슨 조화옹인가? 


자료들을 보면 남한산성은 경기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쳤으되 이중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라 한다. 한데도 남한산성이라면 그냥 남한산성이지 이를 광주의 문화유산으로 보는 통념이 없다. 더구나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는 관할 다툼 혹은 행정 편의를 위해 저들 3개 시가 몽창 그 관리권을 경기도로 이관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니, 붕뜬 것이다. 이것이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순기능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화유산은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더불어 그 혜택은 지역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근자에 저 관리권 이관 협정을 반발하는 분위기가 해당 지자체에서 이는 것으로 안다. 

자연의 수순이라고 나는 본다.


덧붙이건대 관리권을 이양했지만, 실지로 그 관리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경기문화재단 산하 남한산성사업단(정확한 명칭은 생략).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민간이 관리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경기도의 패착이다. 


지금은 그런 대로 억압된 단계지만, 이건 분명히 법적인 문제를 유발한다. 행정력이 없는 민간 재단 산하 기관이 어찌 저들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문화유산은 붕괴해서도, 썩어 문드러져서도 안 된다는 강박은 청산해야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아프고 병원에 가듯이, 그리고 종국에는 치매도 앓고 다른 중병도 앓다가 어느날 하직을 고하듯이 문화유산 또한 그러해야 한다. 무너진다고, 썩어문드러진다고 관리 이따위로 하느냐 하는 윽박이 고발이라는 이름으로 통용하는 사회, 저급하기만 하다. 


성벽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배불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놔두자. 무너져서는 아니 된다는 강박에서 독버섯이 자란다. 그걸로 장사하는 인간들이 문화재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발호하기 마련이다. 다 사기꾼들이다.


성벽은 무너져서는 아니 된다는 강박은 결국 무너져서는 아니되는 성곽으로의 둔갑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니, 이렇게 해서 결국 보존정비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패악이 저절러지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21세기 성곽이다.


문화재도 죽을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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