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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가?
서울 강남 압구정역이다.


이니스프리..이 상표가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에서 유래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압구정 일대는 성형외과 천국이라 온통 그런 병원이다.


한데 오늘밤 그런 거리를 무심히 지나는데 아래 광고 문안이 눈에 박힌다.


  The Second Coming

 이 슬로건 내건 병원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짚히지 않는 게 아니다.
제2의 인생을 살게 하는 모습으로 얼굴 바까주겠다는 뜻이어니와 그것이 예수의 재림에 비견한다는 의미일 터다.

잘 정했다.

그 업주가 예이츠를 의식했는지 아니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저 제목의 가장 저명한 시가 예이츠에게 있다.

그러고 보면 압구정은 예이츠의 고장인가?
만감이 교차한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


BY WILLIAM BUTLER YEATS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5]



버드나무 흐드러진 경주 진평왕릉에서



버드나무 공원 아래서 


버드나무 공원 아래서 내 사랑과 나는 만났지요

그가 버드나무 공원을 걸었어요, 눈처런 하얀 작은 발로 말이에요 

나를 타이릅디다. 사랑을 편안히 여기라고, 이파리 나무에서 돋듯 말이예요

하지만 나는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강가 어느 들판에서 연인이랑 제가 섰는데  

늘어뜨린 내 어깨로 그가 눈처럼 하얀 손을 얹더군요 

타이르는 말이 인생을 쉽게 생각하라고, 풀이 강둑에서 자라듯 말이에요 

하지만 그때 난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지금은 눈물 범벅입니다. 



모드 곤을 향한 30년 일편단심을 기억하는 사람들한테, 자칫 이 시가 노년에 이른 예이츠의 그와 얽힌 짝사랑에 대한 회한이라 여기기 쉽겠지만, 나아가 쉽게 화자를 시인으로 치환하는 수법에 의한다면, 적어도 이 시는 젊은날 광란과도 같은 사랑을 불태우다 그 사랑과 헤어진 과거에 대한 반추라 생각하겠지만, 하나 생각할 점은 예이츠 중·후기 시 중에서 이렇게 직설적이고, 이렇게 액면 그대로 말이 이해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저 구절 어디에 어려운 말이 있으며, 소위 시적 비틀기가 있단 말인가? 저렇게 쉬운 시어와 시상을 구사한 예이츠 시는 초기시에 보이는 특징이다. 


실제 이 작품은 1889년 발간한 The Wanderings of Oisin and Other Poems에 처음 나타나거니와, 당초 제목은 "An Old Song Re-Sung(다시 부르는 옛날 노래)"였거니와. 이 시집을 1895년 재판하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꾸었다. 이 시를 짓게 된 내력을 예이츠 자신이 한 말이 있거니와, 아일랜드 슬라이고(Sligo)라는 지역 발리소데어(Ballisodare)라는 마을이 있어, 그곳에서 농사짓는 늙은 여인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썼다 한다. 당시唐詩로 말하건대, 이른바 신악부인 셈인데, 그 여인이 부르는 노래가 불완전했다고 한다. 예이츠 시 특징 중 하나가 아일랜드 전통의 재발견이거니와,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우리까이도 일삼은 그가 점점 늙어가고, 모드 곤한테 미쳐가면서, 그의 시는 난해함을 향한 항해를 거듭했으니, 사랑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나 보다. 


아무튼 예이츠가 들었다는 그 민요는 후대 연구에 의하면 The Rambling Boys of Pleasure라는 민요라 하는데,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Down by yon flowery garden my love and I we first did meet.

I took her in my arms and to her I gave kisses sweet

She bade me take life easy just as the leaves fall from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my darling did not agree. 


저 너머 꽃이 핀 들판에서 제 사랑과 제가 처음 만났어요 

저는 그를 팔로 잡고서는 감미로운 키스를 퍼부었지요 

그가 타이릅디다. 사랑을 편안히 생각하라고, 나무에서 이파리 솟듯 말이에요 

하지만 어리고 어리석은 저는 그 말이 맞다 하진 않았어요.  


한데 젊은날 이 시가 실로 묘한 점은 이후 예이츠 행로가 이 민요를 매우 닮아갔다는 사실이다. 모드 곤을 향한 30년 사랑은 결국 짝사랑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민요가 말하는 맞사랑과는 결이 다르나, 한 사람을 향한 기나긴 짝사랑에 예이츠는 학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자신을 무한히 학대하면서도,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못했다. 


글쎄다. 저런 사랑을 어리석다 하겠으나, 그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WRPzb2H5V_o


https://www.youtube.com/watch?v=SyI0iKls9vw


https://www.youtube.com/watch?v=_GnVf9SqB5Q



WILLIAM BUTLER YEATS가 1916년에 낸 시집 Responsibilities and Other Poems에 수록된 아래 시. 한데 이 시가 사람을 환장케 하는 까닭은, 딱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대체 이를 통해 전하려는 그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감조차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명구 제조기다. 각종 명언이라는 명언은 다 쏟아내고 죽는 바람에 후세 시인들이 더 새로운 구절을 찾아 헤매게 했으니, 그의 이런 공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래 유례가 없던 일이다. 그는 세치 혀로 살다간 사람이다. 


술은 입술로, 사랑은 눈으로....

이것이 죽기 전에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진리라고 설파하는 그가 느닷없이 

술잔 들어 입술에 갖다 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 보면서 왜 푹 한숨을 지어야 했을까? 

그의 말대로라면, 술도 입으로 들어오고, 그 술잔 너머 저쪽에 앉은 내 사랑도 내 눈으로 들어오는데, 왜 한숨이란 말인가? 

 

이런 깨달음을 예이츠는 늙어 죽기 전에야 안다고 했다. 

너무 늙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을까? 

너무 늦게 알았다는 뒤늦은 후회일까 한탄일까?   

의뭉함이 꼬리를 문다. 


원주 거돈사지 금당터 본존불 대좌에서



A Drinking Song


BY WILLIAM BUTLER YEAT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나중에 그래 정말 그래 하며 깨닫는 건 이뿐 

그러고선 우린 늙어 죽고 말지.   

나는 술잔 들어 내 입술에 대며 

당신 바라보고선 한숨만 짓네. 


 


  1. 연건동거사 2018.12.05 14:00 신고

    당시 분위기군염

  2. 연건동거사 2018.12.05 14:00 신고

    전당시에 실릴만한 시입니다.

어떤 여자를 아느냐가 남자의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 많거니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시를 개척했다고 하는 William Butler Yeats(1865 - 1939)는 특히 더 그러해 여자 잘못 만나는 바람에 인생 조지게 된다. 21살 때인 1886년,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해 이곳 생활을 시작하면서 극작 활동에 몰입한 예이츠는 런던 정착 얼마 뒤 그의 일생에 명운을 좌우하게 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거니와, 모드 곤(Maud Gonne)이라는 키가 크고 아주 미인이며,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곤한테 홀딱 빠진 예이츠는 이후 근 30년간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곤에게는 다른 남자한테서 낳은 자식 둘이 있음을 나중에는 알았지만, 그럼에도 곤을 향한 사랑은 미친 열병 앓듯이 했으니, 하지만 곤한테 예이츠는 동지였지, 남자는 아니었다. 예이츠의 청혼까지 뿌리친 곤은 추방 생활을 하는 아일랜드 혁명가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와 결혼하고 만다. 예이츠한테 더욱 비극은 이젠 유부녀가 되었다 해서 곤을 향한 사랑이 결코 식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으니, 이제나저제나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오는 듯 했으니, 1916년 아일랜드 독립을 외치며 아일랜드 공화파들이 더블린에서 일으킨 부활절 봉기(the Easter Rising)가 엿새만에 실패하고 그에 참여한 곤의 남편 맥브라이드가 영국군에 체포되어 처형된 것이다. 


이는 곤 부부한테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예이츠에게는 천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매몰찬 여자는 끝끝내 예이츠를 외면하고 말거니와, 그리하여 나중엔 할 수 없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오매불망 독신으로 지낸 예이츠는 부활절 봉기 이듬해인 1917년 딴 여자 품에 안겨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니, 그의 나이 이미 52살이었다. 


다음 시는 집착이라 해야 할 이 기구한 이 남자가 스스로 털어놓는 심중 이야기다. 이미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고 노년에 이른 1926년 런던 Macmillan and Co에서 발행된 그의 《Later Poems》(86쪽)에는 이 시가 1904년 초판이 발행된 예이츠의 이전 시집 《In the Seven Woods》에 수록된 것이라 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이 1904년판 시집에는 아래 시가 보이지 않는다. 혹, 그 뒤 개정판에 추기된 것이 아닌가도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다. 



1926년 예이츠 선집에 수록된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라'



이 시는 작자인 예이츠 자신이 SWEETHEART한테 주는 교훈 혹은 훈시 형식이라, 언뜻 보면 고답적일 듯하나, 앞서 말한 저런 예이츠 인생 곡절을 조금이나마 알고 나면 심금을 때린다. 이 스위트하트가 그의 딸 Anne이라는 해설을 어딘가서 본 듯한데, 만약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시점은 그가 결혼한 1917년 이후가 될 것이지만, 이리 보면, 앞서 말한 출판 서지사항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번역에서는 딸로 보기로 한다. 객설이 길었다. 



O Do Not Love Too Long 


by William Butler Yeats (1865 - 1939) 


SWEETHEART, do not love too long:

I loved long and long,

And grew to be out of fashion

Like an old song. 


All through the years of our youth

Neither could have known

Their own thought from the other's,

We were so much at one.


But O, in a minute she changed --

O do not love too long,

Or you will grow out of fashion

Like an old song. 



아,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라 


아가야.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지어다. 

나는 오래오래 사랑했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유행에 뒤쳐지고 말았단다.  

마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말이다. 


우리가 젊은 날엔 줄곧 말이다 

그녀도 나도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랬다. 

우리는 그처럼 하나였단다.  

 

하지만, 아, 순식간에 그녀가 변하고 말았으니, 

아,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유행에 처지고 말 것이니 

마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말이다. 


나는 예이츠가 여자 잘못 만나 인생 조졌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고통이 예이츠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저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찌했을 것인가? 돌이켜 보니 나 역시 저만치는 아니었다손 쳐도, 그에 못지는 않았다고 자백해 둔다. 


대신 예이츠는 무모했으되, 나는 울렁증이 있었다고 해 둔다. 예이츠는 용감했으되, 나는 소심했다고 해 둔다. 


그럼에도 그와 내가 관통하는 한 가지는 불꽃처럼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49재를 맞아 쓴다. 



 


Macbeth Soliloquy 


마누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맥베스. 이리 독백한다. 이 역시 인구에 회자하는 구절이라, 특히 인생 무상을 논할 적에는 무한 반복을 거듭한다. 






MACBETH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from Macbeth: Act 5 Scene 5) 


언젠간 마누라도 죽었을 터. 

죽었다는 소식이 언젠가는 들려왔겠지. 

내일, 또 다른 내일, 그리고 그 다음 내일은   

매일매일 스멀스멀 이리도 느리게 움직이다 

마침내 기록된 시간 마지막까지 가는 법이지.  

게다가 우리가 지난 모든 어제는 바보들한테 등불이 되어  

칙칙한 죽음으로 이끌었지.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삶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배우와 같아  

자기한테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를 우당탕하며 안달복달하다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지. 그건 어떤 이야긴가 하니 

어떤 천치가 지껄이는 것이라, 온통 왁자지껄 소란만 있을 뿐  

아무런 뜻도 없는 그런 거란 말이지.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인지 드라마가 있어, 대사는 변함이 없으니, 음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qNDWBWFrpjM




 

  

 

     




  1. 아파트담보 2018.11.22 02:20 신고

    축하합니다. 격조높은 섹션이 또하나 탄생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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