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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4대 왕이다. 재위기간은 서기 128∼166년. 기루왕 아들이다. 재위기간 북한산성을 쌓았으며 신라와 충돌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제23(백제본기 제1) 개루왕 조 : 개루왕(蓋婁王)은 기루왕 아들이다. 성품이 공순하고 행실이 올발랐다. 기루가 재위 52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4년(131) 여름 4월에 왕이 한산(漢山)에서 사냥했다. 5년(132) 봄 2월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쌓았다.10년(137) 가을 8월 경자에 형혹(熒惑)이 남두(南斗)를 범(犯)했다. 28년(155) 봄 정월 그믐 병신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에 신라 아찬(阿) 길선(吉宣)이 반란을 도모하다가 일이 탄로나 도망해 왔다. 신라 왕이 글을 보내 그를 (돌려달라) 청했으나 보내지 않았다. 신라 왕이 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왔으나 여러 성이 성벽을 굳게 하여 지키기만 하고 나가 싸우지 않으니 신라 군사들은 군량이 떨어져 돌아갔다. 논하여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에 거복(=僕)이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계문자(季文子)가 말했다. “자기 임금에게 예절이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섬기기를 마치 효자가 부모를 봉양함과 같이 하고, 자기 임금에게 무례한 자를 보면 그를 죽이기를 마치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과 같이 한다. 거복을 보니 착한 데다 뜻을 두지 않고 흉한 짓[凶德]만 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를 쫓아 버려야 한다.” 지금 길선도 간악한 역적인 데 백제 왕이 받아들여 숨겼으니 이는 「역적을 비호하여 숨기는[掩賊爲藏] 것이라고 하겠다. 이로 말미암아 이웃 나라와의 화호를 잃고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시달리게 하였으니 심히 밝지 못하였다. 39년(166)에 왕이 죽었다.

삼국사기 권제48 (열전 제8) 도미 :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호적에 편입[編戶]된 하찮은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예뻤으며 또한 절조있는 행실을 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더불어 말하기를 “대저 부인의 덕은 비록 지조를 지킴을 앞세우지만 만약 그윽하고 어두우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유혹하면 능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하니, 대답하였다.“무릇 사람의 정이란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왕이 이를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도미에게 일을 시켜 잡아두고는 한 명의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거짓으로 왕의 의복을 입고 말을 타고 밤에 그 집에 가게 하였다. 사람을 시켜 왕이 오셨다고 먼저 알렸다.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나는 오래 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도미와 내기를 걸어서 이겼다. 내일 너를 들여 궁인(宮人)으로 삼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네 몸은 내것이다.”드디어 난행을 하려 하자 부인이 말하였다.“국왕께서는 헛말을 하지 않으실 것이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으리요!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에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오겠습니다.”물러나 계집 종을 번거롭게 치장시켜 바쳤다. 왕이 후에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도미를 왕을 속인 죄로 처벌하여 두 눈알을 빼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웠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음행을 하고자 하니, 부인이 말하였다.“지금 낭군을 이미 잃었으니 홀로 남은 이 한 몸을 스스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왕을 모시는 일이라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월경 중이라서 온 몸이 더러우니 청컨대 다음 날 목욕을 하고 오겠습니다.”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부인이 곧바로 도망쳐 강어귀에 갔으나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니 문득 외로운 배가 물결을 따라 이르렀으므로 이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다달아 남편을 만났는데 아직 죽지 않았었다. 풀뿌리를 캐 씹어 먹으며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山) 아래에 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다. 옷과 음식을 구걸하며 구차히 살아 나그네로 일생을 마쳤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4대 개루왕(蓋婁王)은 기루(己婁)의 아들이다. 무진년(128)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제23(백제본기 제1) 초고왕 즉위년 : 초고왕(肖古王)<소고(素古)라고도 한다>은 개루왕(蓋婁王) 아들이다. 개루가 재위 3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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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1대 개로왕(蓋鹵王, 재위 455〜475)을 일컫는 다른 칭호. 이보다 앞선 백제 선조왕으로 제4대 개루왕(蓋婁王, 재위 128~166)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근(近)'은 이 선대 개루왕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접두사로 생각된다. 큰(大)을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고, 글자 그대로 가깝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 즉위년 : 개로왕(蓋鹵王)<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한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삼국사기 권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 21년(475) : 이에 도림은 거짓으로 죄를 짓고 도망하여 온 것 같이 하여 백제로 들어왔다. 이 때에 백제 왕 근개루(近蓋婁)가 바둑과 장기[博]를 좋아하였다. ..(중략)...이에 도림이 도망쳐 돌아와서 보고하니 장수왕이 기뻐하여 [백제를] 치려고 군사를 장수[帥臣]에게 내주었다. 근개루(近蓋婁)가 이를 듣고 아들 문주(文周)에게 말했다.

☞개로왕(蓋鹵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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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도미 열전 :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호적에 편입[編戶]된 하찮은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예뻤으며 또한 절조있는 행실을 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더불어 말하기를 “대저 부인의 덕은 비록 지조를 지킴을 앞세우지만 만약 그윽하고 어두우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유혹하면 능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하니, 대답하였다.“무릇 사람의 정이란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왕이 이를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도미에게 일을 시켜 잡아두고는 한 명의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거짓으로 왕의 의복을 입고 말을 타고 밤에 그 집에 가게 하였다. 사람을 시켜 왕이 오셨다고 먼저 알렸다.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나는 오래 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도미와 내기를 걸어서 이겼다. 내일 너를 들여 궁인(宮人)으로 삼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네 몸은 내것이다.”드디어 난행을 하려 하자 부인이 말하였다.“국왕께서는 헛말을 하지 않으실 것이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으리요!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에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오겠습니다.”물러나 계집 종을 번거롭게 치장시켜 바쳤다. 왕이 후에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도미를 왕을 속인 죄로 처벌하여 두 눈알을 빼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웠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음행을 하고자 하니, 부인이 말하였다.“지금 낭군을 이미 잃었으니 홀로 남은 이 한 몸을 스스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왕을 모시는 일이라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월경 중이라서 온 몸이 더러우니 청컨대 다음 날 목욕을 하고 오겠습니다.”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부인이 곧바로 도망쳐 강어귀에 갔으나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니 문득 외로운 배가 물결을 따라 이르렀으므로 이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다달아 남편을 만났는데 아직 죽지 않았었다. 풀뿌리를 캐 씹어 먹으며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山) 아래에 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다. 옷과 음식을 구걸하며 구차히 살아 나그네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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